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10명 중 9명이 '상사님'
'우월 지위' 사업주·대표도 30%
피해자 70%는 '괴롭힘'도 당해
[경향신문]
직장 내 성희롱 10건 중 9건은 수직적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70%는 성희롱과 함께 직장 내 다른 괴롭힘도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민간 공익단체인 직장갑질119는 31일 ‘직장인 성희롱, 괴롭힘 실태 보고서’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의 89.0%(324건)가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우위에 있는 위계 관계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권력관계의 최정점에 있는 사업주나 대표이사가 가해자인 사례도 29.4%(107건)에 달했다. 이 보고서는 2017년 11월~2020년 10월 신원이 특정된 e메일 제보 1만101건 중 자세한 피해 내용이 확인되는 364건을 분석한 결과다.
성희롱 피해자 10명 중 7명(68.7%·250건)은 직장 내 다른 괴롭힘도 함께 겪었다고 증언했다. 한 피해자는 “새로 온 상사는 강제로 돈 상납을 요구하고, 수당도 마음대로 주고, 본인 집안일도 시켰다. 여직원들에게 ‘내가 술집을 차리면 치마 입고 서빙을 하라’ 등의 성희롱적 발언도 일상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저는 술을 못 마시는데 술을 안 마시면 상사가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하거나 자취방까지 스토킹을 하는 일이 추가로 일어났다. 직장 내에서 신고했지만 회사에서는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성희롱 행위자는 폭언, 폭행, 감시, 사생활 침해, 사적 업무 지시 등 여타 괴롭힘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직장 내 성희롱은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형태 중 하나”라고 밝혔다.
직장 내 성희롱을 겪었지만 직장이나 노동청, 수사기관 등에 신고하지 않은 비율이 62.6%(228건)에 달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한 피해자가 불리한 처우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유명무실하다. 직장갑질119가 수사기관 등에 성희롱을 신고한 136건을 분석한 결과 되레 피해자가 징계, 해고, 따돌림 등 불이익을 받은 경우가 58.5%에 달했다. 사업주가 신고 사실을 묵인하거나 방치하는 등 조치 의무를 하지 않은 사례도 41.5%를 차지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은 우월한 지위를 악용하는 행위자 문제이자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회사와 이를 방치하는 행정당국의 문제”라며 “성희롱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해 권력남용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용자는 성희롱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사용자가 위임하는 권력남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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