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의 강화일기] 시골 우체국 풍경

한겨레 2021. 1. 3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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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 ㅣ 그래픽노블 작가

강화 온수리에서 점심을 먹고 우체국에 들렀다. 10분이면 되겠지 싶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택배를 보내는 사람들로 붐볐다. 번호표를 뽑고 외국으로 보낼 책을 포장했다. 이엠에스(EMS) 종이에 국내 주소를 영어로 쓴다. 옛 주소와 새 주소를 다 적는다. 길다. 주소를 칸에 맞추어 쓰는 것에 실패한다. 이번엔 영문 철자를 다닥다닥 붙여 쓴다. 두 번째엔 성공이다. 주소 쓰고 포장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 내 차례가 지나 버렸다.

우체국 직원 앞에 선 할머니는 더디다. 직원이 물었다. “안에 든 게 뭐예요?” 할머니가 대답했다. “별거 아니야. 뭐 액젓하고 참기름 그런 거….” 직원이 말했다. “할머니, 이거 캐나다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몰라요.” “얼마나?” “보통 때보다 더 오래 걸려요.” “그래도 보내. 제일 빨리 가는 걸로. 코로나 때문에 우리 딸한테 김치도 못 보내고 에휴….” 직원이 대답했다. “할머니, 30만원 나왔어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내 엄마가 떠올랐다. 20년 전 내가 파리에 살 때다. 어느 겨울, 엄마는 김장을 했다고 파리까지 김치를 보냈다. 며칠 안으로 도착한다던 김치는 일주일하고 하루가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우체국에 문의해서 간신히 찾아온 김치 상자는 국물이 터져 너덜너덜했다. 김치는 몇 겹의 비닐에 싸여 스티로폼 상자에 담겼고 다시 우체국 상자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것을 세관에서 검사하려고 일부러 칼로 찢었는지 찢은 자국이 있었다. 배송 가격을 보니 60만원 가까이 되는 금액이었다. 세상에!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은 이럴 때 쓰지 싶었다. 김치가 아니라 금치였다.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신경이 예민한 엄마는 밤에 한숨도 못 잤으리라.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서 무거운 김치 박스를 끌고 새벽같이 우체국으로 갔을 터다. 우체국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추위에 떨며 기다리다가 우체국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들어갔으리라. 그러고는 말했으리라. 온수리 우체국에서 만난 할머니처럼. “제일 빨리 가는 걸로 부쳐주쇼이.” 나에게 김치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며 혹시나 딸에게 안 갈까 봐 밤잠을 설쳤으리라. 김치를 받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뭐 하러 보냈어!” 그냥 잘 먹겠다고 하면 될 것을, 내 못된 언어가 입에서 쏟아지기도 전에 나는 후회했다. “이딴 거 보내지 마.” 엄마가 힘들까 봐 하는 내 걱정은 왜 늘 삐딱하게 표현되는지 자신에게 짜증이 나면서도 늘 반복하고 늘 후회한다. 엄마는 내 전화에 “김치 받았당게 인자 한숨 놨다, 잠 푹 자겄네” 했다.

멀리 사는 자식을 걱정하는 노모들의 모습은 닮았다. 캐나다에는 이주 한인이 많으니 액젓과 참기름쯤은 쉽게 구할 수 있으리라. 할머니는 딸이 사는 그 동네에는 생강도 마늘도 양파도 없는 줄 아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자식이 굶을까 봐, 자식에게 먹이고 싶어, 있는 것 없는 것 바리바리 싸서 보낸다.

도장리 면사무소 앞에는 온수리 우체국보다 작은 우체국이 있다. 온수리보다는 한적해 이 우체국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도장리 우체국에 가는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까미 때문이다. 까미는 개다. 우체국 건너편에 있는 슈퍼의 할머니가 주인이다. 지난봄에 까만 강아지가 그곳에 왔다. 강아지는 도로변에 매여 있었다. 목줄이 짧아서 잘 움직이지도 못했다. 도로로 엄청나게 큰 공사 트럭들이 줄을 지어 땅을 흔들며 덜컹거리고 질주했다. 강아지는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었다. 강아지는 이름이 없었다. 나는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 까미.” 까미는 내 손 냄새를 맡았다.

날이 추워져도 까미는 여전히 밖에 있었다. 까미가 들어가라고 놓아둔 개집은 너무 작았다. 나는 예전에 당근이가 쓰던 예쁜 분홍색 개집을 닦아서 까미에게 주려고 가져갔다. 나는 할머니를 설득해서 까미를 도로에서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할머니는 낡은 스웨터를 가져와 까미의 새집에 깔아주었다. 겨울비가 내리던 날 우체국 가는 길에 까미를 보러 슈퍼에 들렸다. 까미는 밖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라고 해도 들어가지 않았다.

영하 20도. 눈발이 칼바람에 얼굴을 때렸다. 도장리 우체국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슈퍼 할머니가 까미의 집을 다시 옮긴 모양이다. 바람이 덜 가는 이웃집 담장 아래 밭 한 귀퉁이에, 분홍색 까미의 집이 보였다. 그 위로는 비나 눈이 조금 덜 들이치라고 나무판으로 가려놓았다. 까미는 집 안에 들어가 눈 오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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