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의 '몫'] '산업기능요원'이라는 풍경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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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업기능요원이었다.
저자는 부산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현장실습생과 산업기능요원이라는 신분으로 3년7개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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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의 ‘몫’]
조기현 ㅣ 작가
나는 산업기능요원이었다. 산업기능요원은 산업현장에서 군 복무를 대체하는 제도다. 소집 해제된 지 6년이 지났다. 여전히 내게 그때의 시간은 마구 뒤섞여 있는 서류 뭉치 같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르는 분노와 수치심, 억울함과 부끄러움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공장에서 나는 군인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예외적인 존재였다. 군대 대신 사회에 남아 돈도 벌고 혜택받는 거라는 소리를 맨날 들었다. 그런 말은 장시간 고강도 저임금 노동을 해도 정당하다는 기제로 작동했다.
공장에서 보고 겪었던 착취나 폭력들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피해자이면서 방관자이고 가해자였다는 생각에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렇다고 고통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일머리를 잘 굴려서 문제를 해결해나갔던 성취감, 외국인 노동자들과 나누었던 유대감, 하루 목표량을 달성했다는 보람이 피곤한 일과를 버티는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산업기능요원이라는 말만 떠올라도 억하심정부터 든다. 그 시간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다.
그런 고민이 책 한권을 쥐게 했다. 허태준의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이다. 저자는 부산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현장실습생과 산업기능요원이라는 신분으로 3년7개월을 보냈다. 그 시간을 오롯이 책에 담았다.
“누군가 산업기능요원 시절에 대해 물어보면, 나 또한 ‘나쁘지 않았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하던 업무도 마음에 들었고, 사회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 심각한 사건·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피해를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진실은 아니었다. 설명하기 복잡해 넘겨버린 사연들이 지나간 시간 사이사이 어두운 낯빛으로 남아 있었다.”
출처도 불분명한 선배들의 폭언을 맞닥뜨리기도 했고, 퇴사나 이직이 쉽지 않은 산업기능요원이라는 이유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친구도 있었다. 산업기능요원 실태조사를 위해 병무청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 폭력 유무를 묻는 질문에 산업기능요원들이 침묵하자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담담하게 써 내려간 사례들 사이사이에 지난날의 내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그의 글은 현장실습생과 산업기능요원의 열악한 실태를 보고하기 위해 전진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리번거리면서 무엇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의 두리번거림 속에는 일을 습득해나갈 때 누구나 겪을 법한 마음이 드러나고, 일하고 뒷정리를 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며 나쁜 노동 조건 속에 일하는 경우가 많아 낯선 일을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는 헤아림도 보인다.
무엇보다 그가 공장에서 진심으로 사과를 나누는 모습이 부러웠다. 산업현장은 늘 험한 말과 행동이 오고 가지만, 그 뒤에 얻은 상처를 낫게 할 진심 어린 사과는 전무한 곳이다. 상처가 나도 다시 눈앞에 있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노동하면 되니까, 애초에 감정은 쓸데없는 곳이니까. 그러나 그는 후배에게 화를 낸 것을 반성하며 사과하고, 그에게 부당한 부탁을 했던 선배의 울음 섞인 사과를 받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 진심으로 주고받은 사과가 얼마나 있었나 되짚어본다. 그곳에서 얻은 상처는 수도 없이 많은데, 사과를 나눴던 적은 단 한번뿐이었다.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는 풍경이 우리에게 기만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투쟁, 성취 그리고 사건들”을 가리는 커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태준 작가는 현장실습생과 산업기능요원이라는 커튼 뒤의 감춰질지도 모를 삶의 결을 매만진다. 이제야 나도 산업기능요원이라는 커튼을 걷고 삶을 찬찬히 매만져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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