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진보 개혁' 완수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반 진보적 의제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취임 열흘 동안 25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환경, 인종, 노동, 세금 문제에서 예상보다 과감하고 진보적인 접근법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공화당의 반발을 넘어서고 민주당 중도성향 의원들을 설득하며 진보적 입법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바이든의 네 가지 의제 : 환경·인종차별·최저임금·증세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사흘간 30개에 달하는 행정조치에 서명하는 광폭 행보를 보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같은 기간 행정조치 5개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개를 발행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취임 첫날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일자리 논란에도 불구하고 ‘키스톤 XL 파이프 라인’ 건설 허가를 결국 취소했다. 연방정부 소유 공유지에서 석유·가스 신규 채굴도 중단시키며 버락 오바마 정부 때보다 과감한 환경정책 청사진을 내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5년까지 발전소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1100만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자에게 8년에 걸쳐 시민권을 주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은 이민법 개정안도 내놨다. 불법 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 제도인 ‘다카(DACA)’도 강화하기로 했다. 그간 논란이 됐던 ‘불법 체류자’(illegal alien)라는 용어도 비시민권자(noncitizen)로 바꿨다. 트럼프 정부의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조치를 취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6일 “제도적 인종주의에 맞설 때가 됐다”면서 주택도시개발부에 인종차별적인 주택정책을 시정하라고 지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 범죄가 늘었다면서 법무부에 관련 범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지난해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으로 번진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새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7.25달러인 전국 최저임금을 2025년까지 15달러로 100% 이상 인상하는 법안도 추진 중이다. 코로나19 경기부양책에 최저임금 인상 법안을 포함시킨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단행한 부자감세도 일부 되돌리기로 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법인세 최고세율은 현행 21%에서 28%로 올리기로 했다. 연 40만달러(약 4억3000만원) 넘게 버는 1%의 초고소득자에 대한 과세율을 39.6%까지 인상하겠다고 했다.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민주당의 중심은 수년 동안 왼쪽으로 이동했으며 바이든도 당과 함께 왼쪽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가 폐지를 선언한 건강보험 정책인 ‘오바마케어’도 되살렸다. 오는 2월부터 5월까지 저소득층이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에 추가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트럼피즘 탄생시킨 과거 실패 반성
바이든 대통령이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36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의회 내 타협을 중시해온 ‘중도주의자’로 꼽혀왔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도 타협을 중시해온 바이든 대통령을 “신뢰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22일 “민주당의 중심은 수년 동안 왼쪽으로 이동했으며 바이든 대통령도 당과 함께 왼쪽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당내 진보 진영은 바이든 대통령을 왼쪽으로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대선 경선에서 탈락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공동 대선 의제를 마련하는 등 당내 진보진영을 끌어안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6년 대선 때처럼 비백인과 젊은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진보 진영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이다. 진보 코커스 의장인 프라밀라 자야팔 민주당 하원의원은 바이든 정부 출범 당시 “할 일이 많다. 이제 시작하자”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민주당 내 세력 결집 요인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정부를 탄생시킨 오바마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위기의식도 보인다. 일례로 오바마 정부는 2013년 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등록 이주자들에 대한 추방을 강화했다. 포린폴리시는 21일 “오바마 정부의 실패한 이민 개혁이 트럼프주의를 일으켰다”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멕시코 이민자들을 마약상, 범죄자, 강간범이라고 비난하며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민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대담한 도박은 미국의 미래에 관한 것이자, 미국이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에 대한 대리 싸움”이라고 했다. 여론지형도 불리하지 않다. 퓨리서치센터의 지난해 6월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 지지자 57%를 포함해 미국인의 75%는 미등록 이주자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미국에 체류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다.
■입법 개혁까지 산 넘어 산
바이든 대통령의 진보적 의제가 제도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각종 행정조치들은 외교 마찰이나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캐나다 앨버타주는 바이든 정부의 키스톤 파이프라인 건설 중단 조치를 두고 20일 법적 소송을 검토하겠다고 예고했다. 텍사스주 연방법원도 26일 이민자 추방을 100일간 유예하기로 한 새 행정조치에 제동을 걸었다.
의회의 동의를 얻어 진보적 의제들을 입법화하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제다. 공화당의 반대을 넘어야 하는 것은 물론 당내 중도성향 의원들도 설득해야 한다. 상원 의석분포가 50대 50인 상황에서 민주당 중도성향 의원 중 한 사람만 반대해도 입법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공화당 미치 맥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20일 바이든 정부의 행정 조치들을 두고 “바이든 정부는 첫날 잘못된 방향으로 몇 가지 큰 걸음을 내디뎠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극좌파에게 대선의 빚을 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중도성향 의원 일부도 ‘바이든 의제’에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상원에서 일부 민주당 의원이 부자 증세와 법인세 인상안에 대한 이탈 움직임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민법 개정안도 원안으로는 의회를 통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결국 입법 개혁을 추진하려면 온건한 내용의 타협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의 성향상 진보적 정책 추진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정부가 진보의 핵심 의제인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 정책을 수용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며 “바이든의 프로그램이 야심차기는 하지만, 그가 하려는 일에 급진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정부의 개혁 입법 성공 가능성을 판단할 첫 시험대는 최저임금 15달러 인상 법안의 통과 여부다. 샌더스 의원은 법안 통과를 위해 예산조정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고, 미국 풀뿌리 단체인 ‘루츠액션’(roots action)도 공화당과 타협하지 말라는 내용의 ‘허니문은 없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 최소 11명의 상원의원들이 더 완만한 인상을 요구하며 제출된 법안에 대해 동의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30일 전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경기부양안을 ‘초당적 합의’로 통과시키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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