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로 기후재앙 일깨운 과학계 거인, 크뤼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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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존층 파괴의 원인을 밝혀내고,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을 널리 퍼뜨린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J. Crutzen) 박사가 숨을 거두었다.
독일 막스플랑크화학연구소는 수년간 투병해온 그가 지난 28일 독일 마인츠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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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환경 위기에 대한 전세계 경각심 높여
오존층 파괴 원인 밝혀 노벨화학상 수상
오존층 파괴의 원인을 밝혀내고,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을 널리 퍼뜨린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J. Crutzen) 박사가 숨을 거두었다. 향년 87.
독일 막스플랑크화학연구소는 수년간 투병해온 그가 지난 28일 독일 마인츠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 연구소에서 1980부터 2000년까지 20년간 대기화학팀을 이끌었다.
1933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나치 점령 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처음엔 과학자가 아닌 엔지니어로 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그의 부모는 그를 대학 대신 기술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학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에 진학해 기상학을 전공했다. 이후 수십년 동안 대기 오염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그는 오존층의 파괴 원인을 밝혀낸 공로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1970년 토양 미생물에서 분출되는 질소산화물이 성층권의 오존 농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 바탕이 돼, 이에 영감을 얻은 미국의 화학자 마리오 몰리나, 셔우드 롤런드가 1974년 에어컨, 냉장고의 냉매로 쓰이는 염화불화탄소(CFC)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걸 확인했다. 이들의 발견은 1987년 오존층 파괴물질 제조와 사용 금지를 선언한 몬트리올의정서의 주춧돌이 됐다. 이들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스웨덴왕립과학원은 “세명의 연구자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지구 환경 문제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크뤼천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노벨상보다 2000년 그가 주창한 인류세(Anthropocene) 개념이었다. 그는 2000년 ‘국제지구권생물권연구(IGBP)’ 뉴스레터 기고문에서 지질 및 생태에 끼치는 인류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현재의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부르자고 주장했다. 인류세란 용어를 그가 처음 쓴 건 아니었지만, 그의 주장 이후 인류세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그는 인류세의 시작 시기를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발명(1784년)되고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대기중 농도가 증가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으로 제안했다. 이후 그를 포함한 12개국 과학자 26명은 2015년 인류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20세기 중반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인류 최초의 핵 실험이 실시된 1945년 7월16일을 인류세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히기 위해 상층 대기에 황 입자를 대량 방출해 기온을 낮추는 과감한 지구공학 해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핵겨울 개념도 개발…서울대서 석좌교수 일하기도
`핵겨울'이라는 개념도 그한테서 시작됐다. 그는 1982년 학제간 영문 학술지 `앰비오'(AMBIO)에 발표한 ` 핵전쟁 이후의 대기 : 정오의 황혼'(The Atmosphere after a Nuclear War: Twilight at Noon)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핵전쟁이 야기할 기후재앙을 경고했다. 그는 핵전쟁이 일어나면 도시와 산림, 농경지, 석유 및 가스전으로 불이 번져가면서 엄청난 연기가 대기로 날아가 햇빛을 차단하고, 이것이 지구 표면을 냉각시켜 전 세계 농업생산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다음해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을 비롯한 과학자 5명이 학술지 `사이언스'에 `핵겨울'(Nuclear Winter)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는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핵겨울 아이디어는 나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정치적 관점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수학과 물리학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던 그는 1958년 핀란드인 여성과 결혼한 뒤 스웨덴으로 건너가 스톡홀름대학에 진학, 기상학을 전공하며 1973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영국 옥스퍼드대와 국립대기연구센터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한 뒤 독일 막스플랑크화학연구소에 들어가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서울대 자연과학대 지구환경과학부 초빙석좌교수로 한국에서 활동한 적도 있다.
그와 함께 핵겨울 논문을 공동집필한 그의 제자 존 버크스는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이메일에서 "파울 크뤼천은 적어도 수백명의 멘토였고 전 세계 과학자 수천명의 경력 쌓기를 도와줬다"며 "그는 훌륭한 과학자일 뿐 아니라, 내가 이제껏 알고 지낸 사람 중 가장 배려심 있고 인자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내와 딸 둘, 손자 셋이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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