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잔인하고 대담해진 '동물 잔혹사'.. 처벌은 솜방망이 [뉴스 인사이드]
신체 자르고, 불태우고, 살해하고..
고양이·개 등 학대 5년간 3배 증가
'동물판 n번방'도 등장.. 수법 공유
경찰은 안 잡나, 못 잡나
현장 조사 없이 '두루뭉술' 수사 마무리
검찰처분받은 3398명 중 구속기소 2명뿐
각 지자체 '동물전담 특사경' 도입해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고어전문방’의 한 대화 참여자가 “고양이는 맛이 어떤가요?”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이 채팅방에선 동물을 유인해 학대하고 살해하는 수법을 공유했다. 피투성이인 고양이가 화살에 맞은 모습, 두개골만 남은 동물의 사체, 좁은 포획 틀에 갇혀 겁에 질린 고양이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물의 사진과 영상물이 그대로 노출됐다.
이른바 ‘동물판 n번방’으로 불리는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한 청원인은 지난 7일 ‘고양이를 잔혹하게 학대하는 단체 오픈 카카오톡방을 수사하고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은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끌어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학대 사진 또는 영상물을 전시·전달·상영하거나 인터넷에 게재하는 건 불법이다. 경찰은 이 채팅방 참여자를 찾아내고자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고어전문방 참여자들의 신원을 특정하기 위해 카카오톡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앞서 한 시민단체는 동물보호법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채팅방 참여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수법은 더 잔인해지고 있다. 지난 4일 충북 옥천에서는 50대 한 남성이 차량에 개를 묶어 5㎞를 끌고 다녔다. 결국 이 개는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거뒀다. 지난달 28일 경북 포항에서는 성인 2명이 쥐불놀이를 하듯 목줄을 잡고 강아지를 공중에서 2~3바퀴 돌리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면서 공분을 샀다. 이들은 경찰에 “강아지가 귀여워 아무 생각 없이 재미로 했다”고 말했다. 이 강아지는 사유재산으로 인정돼 다시 주인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포항의 한 대학에선 길고양이 연쇄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범행은 잔인하고 대담했다. 가해자는 앞발이 절단되고 덫에 걸린 고양이 사체를 보란 듯 대학 곳곳에서 걸어뒀다. 하지만 가해자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
동물을 학대하는 영상은 별다른 제재 없이 SNS에 게시되고 있다. 지난달 한 유튜버는 자신의 채널에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영상을 네 차례에 걸쳐 올렸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 굶주림, 질병 등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게을리하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한다. 끔찍한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해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게 될 때마다 처벌 조항을 강화하는 쪽으로 동물보호법 개정이 이뤄졌다. 오는 2월12일부터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하지만 동물학대는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 추세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동물학대 검찰 처분은 2016년 339건, 2017년 509건, 2018년 601건, 2019년 1070건, 지난해 1~10월 879건으로 집계됐다.
5년간 검찰 처분을 받은 3398명 중 절반 이상인 1741명(51.2%)은 불기소 처분됐다. 정식 재판이 아닌 약식명령을 받은 사람은 1081명(31.8%)에 달했다. 정식 재판으로 넘겨진 93명(2.8%) 중 구속기소는 단 2명(0.1%)에 불과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관계자는 “동물학대 사건은 검찰로 가기 전 경찰 단계에서 내사 종결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사체 부검과 폐쇄회로(CC)TV, 블랙박스 영상 등 필수 증거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데다 재판부의 솜방망이 처벌에 동물학대를 무겁게 느끼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더 이상, 손 놓을 수 없다… ‘동물전담 특사경’ 도입해야
최근 동물자유연대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이 발간한 판례집인 ‘동물학대 판례평석’을 살펴보면 불기소 처분된 동물학대 사례가 언급된다. 이들 단체는 수사기관이 동물학대 사건에서 현장 조사 없이 가해자에게 유리한 주변인 진술만 듣고 수사를 마무리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 동물보호단체가 2016년 대학 수의과에서 유기견을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한 혐의로 이 대학 총장과 수의과대 주임교수 등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관련자 모두를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권유림 변호사는 “유기동물을 실험에 이용했다는 수의대생들의 진술이 있었는데도 수사기관은 의혹을 객관적인 방법으로 검증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피의자 말만 듣고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동물 대상 범죄에 전문성을 띤 동물전담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지방자치단체에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사경은 관할 검사장이 지명하는 일반직 공무원이 특정 직무 범위 내에서 단속과 조사, 사건을 직접 검찰에 송치할 수 있는 제도다. 경기도는 2018년 민생사법경찰단 내에 ‘동물학대전담팀’을 꾸렸다. 그러나 다른 지자체는 동물전담 특사경을 두고 있지 않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학대 정황이 있는데도 동물학대를 고발하는 사람이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며 “초기 수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수집된 증거에 의해 처벌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는 동물전담 특사경 도입을 앞당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물을 학대하는 이들에 대해 전문가들은 만일의 경우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타깃으로 할 것이라는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
29일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동물이란 존재가 생명체이며 인간도 넓은 의미에서 동물의 범주로 포함한다”면서 “동물에 대한 정신·육체적인 괴롭힘과 가혹한 경험이 쌓이게 되면 사람에게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인 이진숙 인천경찰청 경위는 “범죄자들과 면담할 때 동물을 학대한 적이 있느냐란 기본적인 문항이 있다”며 “동물을 키워봤는지, 당시 어떠했는지 등으로 이런 내용들은 사람과도 연관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동물학대를 사람에 대한 폭력이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 증상이라고 정리했다.
치매를 이유로 끔찍한 동물학대에 너무 쉽게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라고 말한 동물자유연대 서미진 선임 활동가는 “고무줄로 묶어 놓는 게 장난이었으며 죽지 않았으니 학대가 아니라고 주장하던 학대자의 모습을 볼 때 기소유예의 처분은 납득할 수 없다”면서 “지금이라도 사회적으로 경각심이 생겨나도록 사법부가 강력한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 교수는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추가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동물학대와 관련해 수위 높은 처벌이 요구된다. 죄의식을 못 느끼면서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성 등의 심리적 압박감조차 덜하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인천=배소영·강승훈 기자, 전국종합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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