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첫날 품절된 99만원짜리 토토로 후드티, 누가 사갔나

김소연 2021. 1. 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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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로에베·구찌에몽..애니메이션 협업 늘리는 명품
코로나19 침체 속 '아시아·젊은 소비자' 집중 공략
갤러리아백화점이 8일 연 스페인 브랜드 로에베의 토토로 한정 상품 팝업스토어. 행사는 31일까지 진행된다. 로에베 제공

40대 직장인 홍은정(가명)씨는 24일 스페인 패션 브랜드 로에베의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협업 제품 출시 소식을 접하고 백화점에 문의 전화를 걸었다가 깜짝 놀랐다. 구매하려던 후드 티셔츠가 판매가 시작된 8일 품절된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홍씨는 "자주 찾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캐릭터가 새겨진 제품이라 구입하고 싶었다"면서 "한정 판매 제품의 희소성에 끌리기도 했지만 가격대가 높아서 설마 31일까지 판매되는 제품이 첫날 모두 팔릴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명품으로 불리는 고가 패션 브랜드들이 잇따라 만화 캐릭터와 손잡으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주로 1990년대 전후로 인기를 얻은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 미키 마우스, 이웃집 토토로 등이 주인공으로, 해당 시대에 성장한 젊은 소비자들과 감정적 유대 형성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에 소비자들도 화답하고 있다. 8일부터 갤러리아백화점 팝업스토어(임시매장)에서 판매되는 로에베 '이웃집 토토로' 캡슐 컬렉션(소규모로 발표하는 컬렉션) 제품 중 마쿠로쿠로스케(dust bunnies) 캐릭터가 새겨진 후드 티셔츠(99만원)와 퍼즐백(310만~380만원), 토토로가 그려진 스웨터(250만원)와 해먹백(270만~370만원)은 판매 첫날 동났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캔버스 된 '럭셔리'

가수 송민호가 로에베 '이웃집 토토로' 캡슐 컬렉션 후드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송민호 인스타그램 캡처·로에베 제공

만화 캐릭터와 협업을 늘리는 패션 업계의 흐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확산과 함께 브랜드 가치를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극진한 고객 서비스 등에만 가두지 않는 명품업계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지친 소비자들에게 향수를 제공하는 감성적 접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패션 감각이 있는 어른이 된다는 게 내면에 있는 아이가 침묵한다는 뜻은 아니다"며 "이를 잘 아는 브랜드들은 이 감정의 끈을 잡아당길 줄 안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 시장조사업체 따쉐컨설팅의 레미 블랑샤르 컨설턴트는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은 빠른 입소문 효과가 있다"고 패션매체 보그 비즈니스에 밝혔다.

로에베에 앞서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는 이달 초 일본 인기 캐릭터 도라에몽 협업 제품과 미키 마우스를 주제로 한 제품을 선보였다. 발렌시아가는 캐릭터를 제품에 새기는 데 그치지 않고 헬로키티 캐릭터의 얼굴 모양 그대로 가방 형태를 잡은 헬로키티 탑 핸들백을 내놓기도 했다.

프랑스 브랜드 롱샴은 지난해 가을 포켓몬스터 협업 제품을 론칭했고,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는 2019년 말 다가올 쥐띠해를 기념해 만화 '톰과 제리'를 프린트한 제품을 출시했다.

이처럼 만화 캐릭터 적용이 저가 아이템뿐 아니라 명품 브랜드로까지 번지면서 고가 시장과 저가 시장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경향도 보인다.

명품시장에 정통한 투자회사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 애널리스트는 미키 마우스 협업 제품 등을 예로 들어 "구찌가 명품시장에서 해낸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티셔츠와 운동화, 후드 티셔츠 등 '스트리트패션' 아이템을 하루 아침에 럭셔리 제품군으로 확장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젊은 소비자에게 중요한 '문화적 신뢰' 구축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의 '도라에몽' 협업 제품. 구찌 홈페이지 캡처

무엇보다 명품 업계가 캐릭터 상품을 선보이는 이유는 젊은 잠재 고객을 잡기 위해서다. 블랑샤르 따쉐컨설팅 컨설턴트는 '이웃집 토토로' 로에베 제품과 구찌 도라에몽 제품에 대해 "중국 SNS 웨이보·위챗에서 반응이 뜨겁다"며 "구매자 중에는 두 브랜드의 기존 팬이 아닌 소비자가 많다"고 전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2019년까지 명품 시장의 39%를 차지했던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비중은 2026년 61%로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BCG는 "브랜드들에게는 이제 구매 순간에 대한 분석보다 소비자들과 감정적 관계를 형성하는 브랜드 서사가 중요해졌다"며 "문화적 신뢰 구축이 필수"라고 진단했다. 최근 명품 업계가 MZ세대의 주된 문화 플랫폼인 게임을 활용한 마케팅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명품 업계의 아시아 시장 위상이 높아지면서 용(龍) 문양을 활용하는 등의 동양적 디자인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는 "2020년 전 세계 명품 매출은 23%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중국 최대 온라인쇼핑몰 '티몰' 데이터 분석 결과 같은 기간 중국의 명품 매출은 48% 증가한 536억달러(약 60조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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