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미오픽] "정치인들이 봐야 할" KBS 다큐 수작 '코로노믹스'

김도연 기자 2021. 1. 3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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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노믹스 연출 이송은 KBS PD "정부는 국민을 적극 돌봐야 한다"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지난 1~3일 연속 방송한 KBS 1TV 다큐멘터리 '코로노믹스'는 코로나19 이후 '새 질서'를 다룬다. 전염병으로 드러난 새 질서는 길게 쭉 뻗은 전망 좋은 길이 아니다. 취약 계층이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는 불안과 혼돈의 길이다. KBS 코로노믹스는 전 세계 팬데믹 속 누가 고통받고 있는지 분명하게 조명하며 코로나19 시대 국가·정부 역할이 무엇인지 차분히 전달한다.

카메라는 전 세계 곳곳을 비춘다. 브라질 상파울루 최대 빈민촌 '빌라 프루덴치 파벨라'는 대부분 실업 상태다. 프랑스에서는 봉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스웨덴·미국·독일 등 선진국들도 경제 위기와 불평등으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누구나 알듯,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폐업 위기에 몰린 여행사 대표 조성진씨(55)는 사무실 한 편에서 생선회를 떠 팔기 시작했다. 그는 “수입이 줄어든 게 아니라 수입이 '삭제'된 상태”라고 말했다.

코로노믹스는 단편적 외신으로만 접했던 전 세계 팬데믹 상황을 고스란히 안방에 전달한 뒤,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제레미 리프킨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 자크 아탈리 경제학자 등 세계적 석학 입을 빌려 거듭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연출을 맡은 이송은 KBS PD 이야기를 지난 25일 서면으로 들었다.

▲ 지난 1~3일 연속 방송한 KBS 1TV 다큐멘터리 '코로노믹스'는 코로나19 이후 '새 질서'를 다룬다. 코로노믹스는 전 세계 불평등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KBS 제공.

- 코로노믹스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전 세계를 주목했다. 취재는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특파원들 협업이 있었나? 제작진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뤄졌나?

“국경이 사실상 봉쇄된 상태에서 취재가 쉽지 않았다. 해외 상황은 단편적 외신들만 있었고 이를 직접 가서 취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코로나와 관련한 외신을 매일 정리했다. 외신을 정리하다보니 해외 상황들이 눈에 들어왔고 현지 취재가 가능한 프로덕션을 섭외했다. PD 특파원이 나가 있는 지역도 있었지만 해외 취재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들이 겪는 업무 강도도 상당했다. 전에 같이 일했던 현지 코디, 해외 프로덕션에 메일을 넣고 상황을 체크했다. 해외의 봉쇄 상태는 국내보다 휠씬 심한 상태였다. 이동 제한까지 발동한 지역도 있었다. 2021년 1월 방송 시점을 생각하며 시의성을 주려고도 노력했다. 이 때문에 취재 기간 막바지에 해외취재가 이뤄졌다.”

- 취재 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였나?

“지난해 9월부터 취재를 준비했다. 매년 선보이는 신년기획이지만 올해 준비는 예전과 달랐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걷고 있는 전 세계 팬데믹 상황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상황도 처음에는 뚜렷하지 않았다. 총 3개월 동안 3명의 PD와 3명의 작가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12월이 되니 한국 상황도 변하기 시작했다. 3차 대유행으로 취재했던 내용에 변화가 필요했다. 이번 다큐는 미리 준비해놓은 것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쓰이는 세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심정으로 취재했다.”

- 코로나 시대 국가와 정부 역할은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주목했으면 했나?

“2020년 키워드를 상기해보면 '영끌'이라는 단어가 맨 앞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언론은 국민들이 매일 빚을 내서 집과 주식을 산다고 이야기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임대료를 내기 위해, 직원들 월급을 지급하기 위해 코로나19 상황에 빚을 내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그들이 빚을 갚을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빚을 정부가 져야 할 것 아닌가라는 논리가 떠올랐다. 이미 전 세계에선 '헬리콥터 머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금을 부으며 경기부양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경기부양을 하고 있다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자, 자영업자들이 견딜 만한 수준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서로 상대 당만 바라보고 정치하고 있으니 국민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했다. 당신들이 바라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굴 바라보고 정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 제작진이 바라본 각국 재정 정책과 불평등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 어떻게 달라졌나?

“코로나19 이전에도 세상은 불공평했다. 그것도 아주 불평등했다. 코로나19는 불평등 속도를 가속화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각 나라가 국민과 서로 협의한 컨센서스에 주목했다. 실제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에서는 기존 사회보장제 틀 안에서 모든 지원이 가능했다. 특별회계를 편성한다든가 합의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새로운 틀거리가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해 사회보장제가 마련돼 있지 않은 나라들은 우왕좌왕했다. 모든 나라 지도자들이 '준전시 상황'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 상황에 대처한다지만 사회적 합의가 없는 곳에선 정치적 결단들이 논란을 낳고 있었다.”

▲ 지난 1~3일 연속 방송한 KBS 1TV 다큐멘터리 '코로노믹스'에서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폐업 위기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사진=KBS 제공.

- 현재 정치권도 이익공유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영업손실보상제 등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는가? 이 논의에 기획재정부의 보수·수동적 입장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전 세계 상황에 비춰보면 재정적자를 우려하는 우리정부 고민 방향은 맞는다고 판단하는지?

“지금이라도 코로나19 지원 방향에 적극 행보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원방법에 관한 새로운 형태가 없었다. '대출지원', '폐업지원' 등 결국 국민들이 빚에 올라서는 지원만 있었을 뿐이다. 실제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해롭다는 연구 발표가 최근 나오고 있다. 즉 불평등을 해소해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재정적자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파산하고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보다 국가가 어려워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로 협동조합과 같은 우리사회 공동체의 역할을 꼽기도 했다. 소수 대기업 중심의 수출경제가 핵심인 국내 체제에서 이 같은 대안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보는지?

“방송에서도 프랑스 철학자 아탈리가 말했지만 '이기적이기 위해서 이타적이어야 한다.' 본인이 살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이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불평등에 신음하는 이유는 호혜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취재하면서 만났던 유흥업소 운영자도 본인이 힘들지만 방역을 위해 문을 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누군가가 이 방식을 어기게 되면 모두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발생한 '마스크거부 운동', '봉쇄조치 반대 운동' 등은 부정적인 자유의 표현이다. 진정 자유롭게 살려면 협동해야 한다. 제3부 핵심 주제로 삼은 것이 바로 새로운 질서이다. 코로나19는 어떻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지 고민을 던져줬다. 그동안 눈치 보고 하지 못했던 여러 실험을 통해 더불어사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 제작 과정 중 인상 깊은 장면이나 대목이 있다면? 취재 에피소드가 있는지?

“국내에서 섭외가 정말 어려웠다. 사실 취재에 응한다고 해서 당장 본인이 처한 상황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한 음식업 사장님을 취재했을 때 그의 가게가 힘들어지는 과정을 두 달간 지켜봤다. 방법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모이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장사가 잘되길 바라겠는가?' 누군가는 이번 기회에 자영업자들 사이 옥석이 가려질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자영업자 비율은 25%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임금노동자에서 탈락한 많은 이들이 늦은 나이에 자영업에 뛰어든다. 우리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제공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망치는 것을 보면서 무력감까지 느끼게 됐다. 이제 그들에게 우리사회가 진심 어린 손을 내밀어야 한다.”

▲ 지난 1~3일 연속 방송한 KBS 1TV 다큐멘터리 '코로노믹스'는 코로나19로 재확인한 전 세계 불평등의 민낯과 그에 대한 시민 저항을 담았다. 사진=KBS 제공.

- 수많은 정책 당국자와 경제학자가 코로노믹스에 등장한다. 누가 가장 섭외가 어려웠나?

“전문가들 섭외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들은 흔쾌히 응했으며 한국의 K-방역 성과를 칭찬했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표피적인 경제성장률, K-방역 확진자 숫자 등이 외국 전문가들에게 매력적 수치일지라도 한국의 불평등과 불안 문제는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해법은 다양했다. 그러나 공통점은 하나였다. 코로나19는 불평등을 가속화했으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국민을 돌봐야 한다는 것.”

- 코로노믹스 같은 다큐가 공영방송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타사는 보여줄 수 없는 다큐 수준 때문인데, 다큐를 만들면서 공영방송 역할도 고민했을 것 같다.

“신년기획은 당해 연도 공영방송의 지향성을 제시한다. 그래서 더 많은 부담감이 있었다. 우리는 2021년을 어떤 가치로 살아야 하는가,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 일관된 키워드는 '연대'였다. 국가와 국민의 연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대, 직원과 회사의 연대. 연대를 통한 사회적 통합이 우리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영방송은 사회적 흐름을 제시해야 한다.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조언해야 한다. 이번 프로그램으로 세계의 석학들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반영됐으면 한다.”

- 다큐 방영 후 제작진이 느끼는 반응은 어땠나?

“유튜브 반응이 뜨거웠다. 경제를 다루는 다큐는 딱딱한 도표와 거시적 흐름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최대한 이를 절제하려 했다. 시청자들이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갖도록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시청률이 나쁘지 않았고 유튜브 조회수와 리뷰도 좋았다. 시청자들이 같이 호흡해주니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맛이 더 났다.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고 있다.”

- EBS 다큐프라임은 '자본주의' 편을 방송하고 책으로도 냈다. 이런 계획이 있는지? 향후 기획하고 있는 방송이 있다면?

“당장 책으로 만들 계획은 없다. 올해 '불평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자 한다. 1년 뒤 대한민국이 조금 덜 불평등한 사회가 되는 데 헌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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