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n]조덕제가 피해자를 6년간 괴롭힌 법
“피고인 조덕제를 징역 1년에 처한다. 피고인을 법정 구속한다.”
2021년 1월15일, 의정부지법(재판장 박창우 판사)에서 6년의 싸움을 정리하는 선고 결과가 나왔다. 이번 판결은 영화배우 조덕제씨와 그 동거인 정아무개씨가 저지른 ‘3차 범죄’(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모욕, 비밀준수 위반 등)에 대한 법원의 세 번째 ‘유죄’ 판단이다. 1차 범죄인 조씨의 ‘강제추행 치상·무고’와 그 지인들이 저지른 2차 범죄인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선 2018년 유죄가 확정됐다.
이날 조씨가 법정 구속되는 순간, 감시·기록·목격자로 지낸 지난 4년이 스쳤다. 2017년 봄, 영화계 단체가 주축이 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활동가로부터 연대를 권유하는 연락을 받았다. 피해자 쪽 변호사가 선임됐고 공대위까지 활동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연대하는 게 적절한지, 참여한다 해도 연대자로서의 위치와 그 활동 범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했다.
피해자를 보고선 결심이 섰다. 카페 구석에 자료를 쌓아둔 채 모자를 눌러쓰고 불안해하는 피해자를 만난 뒤 법적 지식이 없는 피해자에게 조력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피해자 곁에서 모든 형사재판을 모니터링하며 연대해왔다.
사과 번복으로 시작된 긴 법정 다툼
1차 범죄인 강제추행은 2015년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어났다. 조씨는 피해자와의 사전 협의 없이 영화감독 지시에서도 벗어난 신체 접촉을 했다. 충격받은 피해자는 현장에서 항의했다.
조씨가 사과하고 해당 영화에서 퇴출되는 절차를 밟는 듯했다. 하지만 조씨는 사과를 번복했고, 피해자는 그런 조씨를 신고했다. 수사 과정에서 조씨는 피해자를 보복성 고소했다. 2016년 12월 1심 재판부는 강제추행 치상·무고 혐의를 받은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이듬해 2심에선 1심을 뒤집고 유죄가 선고됐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도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판결이었다.
재판부가 강제추행 장면이 담긴 ‘사건 영상’을 심리한 게 주요한 요인이 됐다. 피해자는 2심이 시작된 뒤에야, 사건 직후 폐기된 것으로 알았던 당시 피해 영상이 남아 있음을 알고 충격받았다. 그러나 곧 마음을 다잡고 직접 영상을 분석하고 법정 신문에도 적극 응하며 일관되게 진술했다. 반면 동일한 영상에 대해 조씨는 신체 접촉 여부, 접촉 부위에 대해 설명을 계속 바꿨다. 피고인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고 피해자 진술은 일관적일 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후 조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드러냈다.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한 그의 발언을 언론은 어떤 검증도 없이 보도했다. 특히 연예매체 <디스패치>가 사건 영상에 대해 허위를 기반으로 한 기사를 연속 보도하면서 피해자 상태가 악화됐다. 조씨는 인터넷카페까지 만들어 여러 허위 자료를 올렸다.
이 사건이 한층 더 복잡해진 이유는 1심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6년 유포된 ‘가짜뉴스’ 때문이다. 조씨의 변호인단에 합류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해자를 ‘허위·과장의 진술 습벽이 있는 여성’으로 몰아갔다. 그때 활용한 자료가 바로 그 가짜뉴스다. 가명까지 써가며 해당 가짜뉴스를 만든 전직 개그맨 이재포씨는 조씨의 지인이었다. 이씨는 피해자가 성범죄 사건(2015년) 이전인 2014년 동네 식당과 병원을 대상으로 ‘갑질’을 하며 거액의 보험금과 합의금을 받아냈다는 허위 내용을 담은 기사를 연달아 냈고, 이 모든 자료를 조씨에게 넘겼다.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포함한 허위사실을 조씨는 언론 인터뷰와 인터넷카페를 통해 유포했다.
이재포는 가짜뉴스 만들고 조덕제는 유포하고
피해자가 아무리 보도자료를 돌리고 사실관계를 정정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가짜뉴스를 바로잡기 위해 이씨, 그와 함께 가짜뉴스를 유포한 김아무개씨를 상대로 소송에 집중하기로 했다. 공판마다 피해자와 함께 방청하며 공판검사와 소통하고 증거자료, 의견서, 탄원서 등을 제출했다.
2018년 5월 1심에서 이씨는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김씨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같은 해 10월 항소심 결과 이씨는 1심 선고 형량보다 높은 징역 1년6개월, 김씨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항소심 판결문에는 이들이 지인인 조씨의 성폭력 사건 재판에 도움을 주기 위한 악의적인 목적으로 ‘가짜 인터넷뉴스’를 작성했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 1심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게 됐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가짜뉴스와 싸우는 사이, 강제추행 사건의 3심 선고일이 잡혔다. 주변의 만류에도 피해자는 선고 당일 자신의 이름 ‘반민정’을 공개하기로 했다.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해 새벽 내내 입장문을 그와 함께 수정했다. 그리고 2018년 9월, 상고가 기각되며 조씨의 유죄가 확정됐다.
선고 다음날 조씨는 ‘사건 영상’ 중 공소사실과 무관한 앞부분의 폭행 장면을 잘라 그것으로 유죄가 선고됐다고 거짓말했다. 언론은 앞다퉈 검증 없이 조씨의 말을 옮겼다. 피해자 변호사와 함께 보도자료를 만들어 조씨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알려도 소용없었다.
성범죄 유죄 확정 뒤에도 조씨는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한 피해자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조씨와 동거인 정씨는 인터넷카페에 이어 유튜브 방송으로 이익을 얻으며 피해자에게 추가 가해를 이어갔다. 피해자를 ‘이상한 여자’로 몰아가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있지도 않은 ‘윗선’과 ‘여성단체’를 들먹이며 재판에 대한 불신을 야기했다. 이미 거짓으로 확정된 허위사실도 다시 유포했다. 추가적인 법적 단죄가 필요했다. 2019년 조씨와 동거인 정씨는 정보통신망법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형법상 모욕, 성폭력처벌법상 비밀준수 위반 등으로 기소됐다. 그로부터 1년7개월이 지난 2021년 1월 1심 선고공판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이 유죄로 인정됐다. 결국 조씨는 법정 구속됐다.
조씨 동거인은 지금도 유튜브 ‘비방 방송’
이 싸움은 조씨 개인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다. 예술의 이름으로 성폭력을 은폐하는 문화예술계, 최소한의 사실 검증이나 보도윤리마저 내팽개친 한국 언론, 부적절한 정보를 토대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대중, 피해 회복은 뒷전인 사법부에 대한 고발이다. 또한 비슷한 처지의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조씨 동거인 정씨는 여전히 유튜브를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피해자에 대한 추가 가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조씨는 항소했고 보석도 신청했다. 사건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여전히 피해자에 대한 비방과 모욕이 이어진다.
피해자 반민정이 아니라 배우 반민정으로 그를 만나고 싶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법대로’ 하기로 선택한 이후, 6년간 과거에 묶인 그가 이제는 현재를 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02-735-8994), 여성긴급전화1366으로 연락하면 불법 영상물 삭제, 심층 심리치료, 상담·수사, 무료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너머n’ 아카이브(https://stopn.hani.co.kr/)에서 디지털성범죄를 끝장내기 위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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