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많은 인천 팬 웃게 해드리겠다. 2년 안에 우승 도전" [장터뷰]

장민석 기자 2021. 1. 3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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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의 마지막 단장이자
이마트 야구단 첫 단장이 된 류선규 단장
류선규 SK 단장은 "SK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일 중 하나는 이만수 코치님의 팬티 퍼포먼스"라며 "그 이벤트로 SK의 스포테인먼트가 궤도에 올랐다"고 말했다. / 고운호 기자

인터뷰를 위해 류선규(51) SK 와이번스 단장을 만난 것은 1월 중순이었다. 류 단장을 만나보기로 한 건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SK는 해를 넘기지 않고 10개 구단 중 가장 먼저 연봉 협상을 마무리했다. FA 최대어 중 하나였던 최주환(31)과 4년 총액 42억원에 계약한 데 이어 2019시즌 홀드왕 출신인 키움 투수 김상수(31)를 사인 앤드 트레이드 방식으로 2+1년 15억5000만원에 데려왔다. SK 팬들은 합리적인 금액에 팀의 약점으로 꼽힌 2루수와 불펜 포지션을 보강한 좋은 영입이라며 기뻐했다.

SK가 스토브리그에서 시원시원한 일 처리를 보이자 팬들은 류선규 단장을 주목했다. 작년 11월 부임한 류선규 단장은 2001년부터 21년째 SK 프런트로 일해온 인물이다. 마케팅과 홍보, 육성, 기획, 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쳤다.

류 단장은 “2001년 12월 첫 출근 날 예술회관 지하철 역에서 내려 걸어오는데 구월동 인근이 온통 공사판이라 모래 바람이 불었다. 그렇게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니 황무지에 선 기분이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고 했다. SK 와이번스는 2000년 창단했다. 원래 인천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 연고 이전을 위해 임시 연고지인 수원으로 가면서 SK가 인천팀이 됐다.

삼미 슈퍼스타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 이은 다섯 번째 인천팀이었다. 인천 야구팬들은 둘로 갈리게 됐다. ‘삼·청·태·현’이라 불리며 인천 야구의 전통을 이어간 현대를 응원할 것인지, 전주를 연고지로 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승계한 SK를 성원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인천 팬들은 야구에 아예 정을 뗐다.

류 단장이 SK 사원일 당시 “인천 팬들은 상처가 많다. 그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한 말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21년간 SK 와이번스에 근무하며 반(半) 인천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연안부두를 리믹스 버전으로 만들어 야구장에서 틀었어요. 그랬더니 인천 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노래를 100번도 넘게 들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원곡의 매력을 알겠더라고요. 지금은 인천 SK를 대표하는 노래가 됐죠.”

류 단장은 인터뷰 내내 인천이란 도시에 정이 참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신세계 이마트의 SK 와이번스 인수 추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인천 연고 유지를 확실히 넣어달라”

인터뷰를 하고 정확히 1주일이 흐른 뒤 신세계 이마트가 SK 와이번스를 인수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류선규 단장은 그날 저녁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팀장들을 다독거리다가 눈물이 터졌다고 한다. 얄궂게도 그는 SK 와이번스의 마지막 단장으로 남게 됐다.

신세계 이마트가 100% 고용 승계를 약속하면서 류 단장은 변함없이 2021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전화로 다시 만난 류 단장은 “며칠 사이에 너무 큰일을 겪었다”며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웃었다.

그는 “인수 관련 보도자료를 내는 신세계 쪽에 ‘인천 연고를 유지한다’는 말을 꼭 넣어달라고 했다”며 “기업 입장에선 당연한 얘기라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팀이 자주 바뀐 경험이 있는 인천 팬들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선규 단장이 요청했던 부분은 보도자료에 ‘연고지는 인천으로 유지한다. 와이번스가 쌓아온 인천 야구의 헤리티지(유산)를 이어간다’는 대목으로 표현됐다. “그동안 SK에 감사했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고요. 그래도 인천 팬들이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많이 놀라긴 했지만 저는 제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하면서 시즌 준비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주환 계약 당시 류선규 단장(오른쪽). 그는 "53번을 원했던 최주환에게 그 번호를 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 SK 와이번스

◇ 베이스볼 키드에서 SK 단장까지

기자가 사실 류선규 단장이란 인물에 처음 호기심이 생겼던 건 나무위키의 인물 소개 한 줄 때문이었다. 나무위키엔 류선규 단장을 ‘평범한 야구팬에서 시작해 프로야구단 단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소개한다.

류 단장을 처음 야구의 길로 이끈 경기는 1981년 봉황대기 고교야구 결승전이었다. 그가 열한 살 때. “그전까진 야구를 전혀 몰랐어요. 전파사 앞을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뭔가 싶어 같이 봤던 경기가 바로 선린상고 박노준이 홈으로 뛰어들다 발목이 부러졌던 그 경기였어요. 병원 앞에 여고생들이 울면서 진을 친 모습을 뉴스로 보고 야구가 대단하구나 느꼈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류 단장은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에서 MBC 이종도가 연장 10회 극적인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는 장면에 청룡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서울 사람이라 서울팀 팬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당시 OB는 연고지가 충청도였다).

‘야구 덕후’로 성장한 그는 공군 장교 시절 LG 트윈스에 대한 글을 PC통신에 쓰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산에서 근무했을 땐 퇴근 후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잠실구장에 자주 갔어요. 3연전 중 한 경기는 꼭 봤으니까요. 매 경기를 중계하던 시절은 아니라 제가 쓴 관전평이 야구팬들 사이에선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이텔에서 ‘myLG’라는 아이디로 활동한 류 단장은 “내가 생각해도 필력과 분석력이 좋았던 것 같다”며 웃었다. 당시 세이버매트릭스가 서서히 주목을 받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데이터 계열보다는 기사나 정보를 재해석해서 가공하는 글을 주로 썼다고 했다. 팀 운영 방안에 대한 제언도 자주 했다.

“PC통신 야구 쪽에선 ‘퇴마록’ 급의 인기를 누렸다고 자부합니다. LG 구단 홍보팀에서 제 글을 프린트해 사장님에게 결재를 따로 받았다고 들었으니까요.”

LG 트윈스는 결국 ‘재야의 고수’였던 류 단장에게 프런트 일을 제의했다. 1997년 LG에 입사한 그는 2001년 SK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25년째 프로야구단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취미가 업(業)이 되면 취미가 사라질 것 같아 처음엔 야구단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제는 뭐 ‘물아일체’랄까. 야구 빼고는 제 삶을 논할 수 없죠. 잠잘 때도 야구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김상수와 류선규 SK 단장. / SK 와이번스

◇ “한 번 물면 놓지 않아요”

류선규 단장은 스스로 “협상할 때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무는 건 아니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선 최주환이 가장 중요한 타깃이었다.

최주환 영입전에 SK 외에도 NC와 삼성 등이 뛰어들었다고 한다. 사실 지방 구단이 제시한 연봉 조건이 더 좋았다. “FA 협상의 기본은 환경 조사입니다. 12월 결혼한 최주환 선수는 와이프 직장 문제로 지방에 내려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여기에 2루수란 포지션에 애착이 강했고요. 그런 두 포인트에선 우리가 유리했습니다.”

수도권과 2루수란 측면에선 LG도 선택지가 될 수 있었지만 LG는 이번 최주환 영입전엔 참전하지 않았다. SK가 “최주환을 강력히 원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준 것도 영입에 큰 도움이 됐다. 최주환은 “SK는 처음부터 나를 원한다는 얘기를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런 확실한 러브콜이 좋았다”고 말했다.

김상수도 최주환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김상수도 들어보니 아내 직장 때문에 지방을 가긴 어려운 면이 있더라고요. 최근 5년 연속 55경기 이상을 던진 꾸준함을 높이 봤습니다. 변수 많은 불펜에 상수(常數)가 될 수 있겠다 싶었죠.”

김상수와 계약한 날은 폭설이 내렸다. 류 단장은 김상수에게 “눈도 많이 오는데 계약하기 전까진 집에 못 돌아간다. 저녁도 시켜줄 테니 오늘 결판을 내자”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두 시간 만에 계약은 이루어졌다.

류 단장은 스토브리그가 ‘단장의 시간’이 아니라 1년 365일이 ‘단장의 시간’이라고 했다. 지금도 트레이드 카드를 부지런히 맞춰보고 있다.

그렇다면 추신수 영입은 어떨까.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계약이 끝난 추신수는 올해 뛸 팀을 여전히 찾고 있다. 추신수가 한국에서 뛰려면 SK와 계약해야 한다. 2007년 해외파 특별 지명에서 SK가 그를 지명했기 때문이다.

류 단장은 아직 추신수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없다고 했다. 일각에선 고향팀인 롯데에서 뛰고 싶어하는 추신수가 SK에서 1년만 뛰고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가는 방안을 주장하기도 한다. SK가 롯데와 미리 합의를 하고 추신수를 영입하는 것이다.

류 단장은 이 부분에 대해선 고개를 저었다. “추신수가 SK에서 1년만 뛰고 롯데로 간다는 조건으로 온다면 과연 SK 팬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선수 본인과 팀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될 것 같습니다.”

◇ “2년 안에 팀 다시 일으키겠다”

류선규 단장에게 2021시즌의 키워드는 ‘재건’이다. 2018시즌 챔피언에 올랐던 SK는 작년엔 9위라는 믿기 어려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SK 하면 ‘홈런 공장’이란 확실한 장점이 있었는데 지난 2년간은 단점인 정교함과 작전 야구를 보완하려다 장점까지 잃어버렸습니다. 파워가 좋은 김동엽을 보내고 고종욱을 데려온 것도 그런 경향으로 볼 수 있었고요. 이제는 다시 SK의 강점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두려 합니다.”

류 단장은 결국 OPS(출루율+장타율)를 중시해야 한다고 했다. “창원 NC파크에 가면 전광판에 타자 OPS에 뜨잖아요. 작년 NC 원정을 가보면 저희와 NC의 OPS 차이가 정말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했습니다. OPS 만큼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데이터는 없는 것 같아요. 우리 팀처럼 작은 구장을 쓰는 팀은 OPS를 강조하는 방안으로 가는 것이 맞는 방향 같습니다.”

류선규 단장은 “야구단에선 3년 이상의 계획은 실효성이 없다. 2년 내 팀 재건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 한국시리즈 당시 고척돔을 찾아 NC를 면밀히 관찰했다. NC는 2018시즌 꼴찌를 한 뒤 두 시즌 만에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저에게 ‘올해 기존 멤버로 4위 할래? 젊은 선수로 5위 할래?’ 라고 묻는다면 5위를 택하겠습니다. 올해 성장한 젊은 선수들로 내년에 우승에 도전해야죠.” 우완 조성훈(22)과 최민준(22), 좌타 거포 유망주인 전의산(21), 올 시즌 외야수 전향도 고려하는 김창평(21) 등이 기대주로 꼽힌다. 물론 올 시즌에도 외국인 투수들이 잘 던져주는 등 긍정적인 요소들이 동시에 작용하면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내부적으로 분석해보니 올해 판도는 1강8중1약으로 나오더라고요. 2등이 될 수도 있고 9등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아주 촘촘하게 중위권이 형성될 것 같아요. 그만큼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얼마나 준비를 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류 단장은 2월 1일 제주에서 시작하는 SK 스프링캠프를 함께 시작한다. “민경삼 사장님과 함께 내려가 인수 소식에 어수선해진 선수단을 다독거리려고 합니다. 이번 일로 갑자기 저희 팀이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됐네요. 관중이 들어온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인천 야구의 새로운 봄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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