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배워야' 할 최재형 감사원장 부부 '사랑의 기술'
"사람은 태어나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불운한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를 입양해 사랑으로 키우겠다."
최 감사원장이 두 아들을 입양하면서 아버지에게 한 말이다. 최 원장 아버지는 해군사관학교 부교장을 지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다. 최 대령에게 최 원장이 입양한 두 아들을 어떻게 키웠느냐고 물으니 "아들 내외가 별 탈 없이 키웠다. 작은손자는 갓난아기 때 입양했지만 큰손자는 11세에 입양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고 자랐다"며 "그래서 큰손자는 엄마, 아빠가 꾸짖을 때마다 '입양한 자식이라 이렇게 못살게 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더라. 그것 말고는 평범하게 컸다"고 답했다.
"입양한 두 아들 자기 자식처럼 키웠다"
최 원장의 죽마고우 강명훈 변호사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자식 키우는 게 힘들고 어렵긴 다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며 "최 원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입양한 아들 둘을 자기 자식처럼 키웠다. 가족끼리 만나도 보통 부모, 자식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강 변호사는 최 원장이 고교 시절 소아마비 친구를 업고 등하교했다는 유명한 일화 속 주인공이다.
성장일기에 묻어나는 아들 사랑
아래는 2004년 3월 31일 최 원장이 '영진·진호네집' 코너에 올린 일기 중 한 대목이다.
‘빨래통을 뒤집어쓴 뒤 로봇으로 변신했다면서 돌아다니는 진호를 빨래통 속에 넣고 흔들어주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진호는 점점 자라고 아빠는 점점 늙어가니 이제 이렇게 흔들어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에는 어느덧 훌쩍 자란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평범한 아빠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인 이씨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간 '영진·진호네집' 코너에 일기를 썼는데, 2009년 9월 16일 글에서는 큰아들 영진 씨를 훈육하며 고민하는 엄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온 가족이 영진이가 발로 찬 여자아이 집에 사과하러 갔다. 영진이는 무안하고 어색하니까 괜히 실실 웃고 있다. 어디서 웃음이 나오느냐고, 똑바로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라고 엄하게 이야기했다. 영진이는 화가 나면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이씨는 '11세에 우리 집에 온 영진이, 그때 아이가 느꼈을 외로움, 두려움의 감정을 잘 읽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가정이라는 좋은 환경으로 오게 됐다는 관점으로 아이를 보았기에 영진이가 겪었을 감정들로 인해 맘이 쓰라렸다'며 세심하게 아이 감정까지 보듬는 모습을 보였다.
2010년 7월 22일 큰아들 영진 씨를 뉴질랜드 크리스천 스쿨에 보내고 이씨가 쓴 일기의 한 대목은 이렇다.
‘영진이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굉장히 까불거나 불평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빠가 한마디 하면 한 마디도 안 지고 속사포처럼 대든다. 이 녀석은 야단칠 때도 사랑을 쏟아부어야 끝난다. 영진이의 빈 침대를 보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지원이(큰딸)는 영진이가 없으니 너무 허전하다고 몇 번을 말한다. 남편(최 원장)은 날마다 영진이 소식 온 것 없냐고 물어본다. 이 녀석아, 우리는 널 사랑하고 있단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오리라 믿는다.'
1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부모의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 입양을 취소한다든지, 아이하고 맞지 않는 경우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그런 대책도 필요하다"고 발언한 뒤 인터넷 게시판에는 "최재형 원장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물론 그 후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사전위탁보호 제도를 언급한 것인데 의미가 왜곡됐다"고 해명했다.
전 국민이 요즘처럼 입양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던가. 입양 아동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2011년 언론 인터뷰에서 최 원장은 "입양은 진열대에 있는 아이들을 물건 고르듯이 고르는 것이 아니다. 아이 상태가 어떻든 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대해 입양해서는 안 된다"고 입양에 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또한 "입양은 평범한 아이에게 그가 놓칠 수도 있었던 평범한 가정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최 원장의 과거 발언과 두 아들의 성장일기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많다.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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