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시설이 코로나 집단감염 온상 된 3가지 이유

송화선 기자 2021. 1. 3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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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시설만 다른 방식 방역.. 황당한 대처"

● 초기 방역 성공에서 기인한 교정 당국의 ‘오판’
● 코로나19 확산 후에도 과밀 수용 개선 못 해
● 수용자 넘치는데 의사 수는 필요 정원 못 채워
● 늘어나는 만성질환 보유자, 감염병에 특히 취약

1월 7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입구. 동부구치소는 코로나19 집단감염 발생 뒤 수용자 일반 접견을 전면 중단했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월 28일 취임 후 첫 공식일정으로 서울동부구치소를 찾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집단 발생한 장소다. 박 장관은 "법무부가 관리하는 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부터 숙였다.

동부구치소에선 지난해 11월 27일 직원 1명이 처음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때 교정 당국은 최초 확진자와 접촉한 292명에 대해서만 진단검사를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용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수검사는 3주 후인 12월 18일 진행했다. 방역 '골든타임'을 허망하게 놓쳤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집계에 따르면 1월 20일 기준 동부구치소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1203명이다. 수용자 누적 발병률이 42.9%에 이른다. 정기석 한림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민간 기관도 아니고 국가가 운영하는 곳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역학조사 실패하고도 대책 마련 안 해

"교정시설은 감염병에 대해 모르고, 방역 당국은 교정시설을 몰랐다."

서울 동부구치소를 중심으로 번진 '교정시설발(發)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대한 교정시설 공중보건의사(공보의) A씨 평가다. 공보의는 병역 대신 공중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의사다. 2019년 기준 91명이 전국 교정시설에 배치돼 있다. 이들은 공무원 신분 의사인 '의무관'과 함께 재소자 건강을 관리한다. A씨는 "지난해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면서부터 공보의를 중심으로 '교정시설이 코로나19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환자 발생 시 대응 방안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제안이 교정 업무에 반영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고, 결국 이런 상황을 맞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2월, 대구 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절 해당 지역 교정시설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것도 교정 당국의 '오판'을 부추겼다는 해석이 있다. 지난해 2월 24일 청송교도소로도 불리는 경북 북부제2교도소에서 교도관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같은 달 27일 대구교도소 교도관, 29일 경북 김천교도소 재소자 등도 잇달아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당시 교정당국은 확진자와 접촉한 것으로 의심되는 직원과 수용자를 격리하고, 접견금지 등 강력한 외부 접촉 차단 조치를 내렸다. 이후 코로나19가 잦아들자 감염 통제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한 교정시설 의료 관계자는 "당시 김천교도소 재소자의 경우 최초 감염 경로를 알아내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역학조사 실패 원인이 뭔지 확인하고 보완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유행 차단 성공에 취해 관련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공보의 A씨도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 발생 후에야 비로소 방역 당국이 교정시설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감염 경로를 파악하려면 재소자 수용 공간과 생활 방식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현장을 모르니 역학조사관들이 우왕좌왕했습니다. 노역을 어떻게 하는지, 사동도우미와 접촉 방식은 어떤지 공보의가 설명하면 용어부터 하나하나 되묻는 식이었죠. 교도관은 감염병이 어떻게 퍼지는지 모르고, 역학 전문가는 어디를 통제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지 못하니 초기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어요."

A씨 얘기다. 코로나19 집단 감염 당시 동부구치소에는 확진자 발생 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매뉴얼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확진자를 한방에 몰아넣고, 비확진자는 다른 방에 또 모여 있게 하는 식의 엉성한 격리 조치가 취해졌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구치소 밖에서는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을 적어도 1~2주씩 무조건 자가격리시킨다. 이 조치를 따르지 않으면 방역수칙 위반이라고 처벌까지 한다. 그러면서 정작 국가가 보호해야 할 재소자는 거리두기조차 할 수 없는 환경에 방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정시설에서 사회와 전혀 다른 방식의 방역조치를 한 것이 그저 황당할 따름"이라는 얘기다.

독실 없어 확진자 집단 수용

1월 6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재소자가 ‘무능한 법무부,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창살 너머로 꺼내 보이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동부구치소의 수용 밀집도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지난해 언론 브리핑에서 "12월 13일 기준 동부구치소 수용정원이 2070명이지만, 실제 인원은 2412명이었다"며 "독실이 부족하다 보니 확진자 여러 명을 같이 수용하는 경우가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뒤 뒤늦게 동부구치소 밀집도를 낮추고자 수용자를 다른 교정시설로 분산했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7월 말 기준 전국 수감 시설 수용률이 112.3%로, 다른 시설 또한 인원이 넘쳐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교정시설 관계자는 "교정 당국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부구치소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환자가 남성 수용자 사이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하자, 일단 남성 수용 밀집도를 낮추는 데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1월 초까지도 18.18㎡(약 5.5평) 규모 방에 최다 8명까지 수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1월 7일 7차 전수조사에서 여성 코로나19 환자가 확인되며 뒤늦게 이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수용시설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상황이다.

좁은 공간에 모여 사는 재소자들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실시한 구금시설 건강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야간·공휴일에 몸이 아파 의료진 면담을 신청한 수용자 가운데 68.2%가 면담 자체를 못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정시설에 의사가 턱없이 부족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2020년 6월 기준 전국 교정시설 의무관 정원은 117명이지만, 실제 근무하는 의무관은 93명에 불과하다.

교정 당국은 이 문제를 개선하고자 교정시설 공보의 정원을 2018년 55명에서 2019년 91명으로 늘렸다. 그럼에도 의사 부족 문제는 여전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2019년 교정시설 의무관(89명)과 공중보건의(71명)들이 담당한 총 진료 건수는 918만1902건이다. 1년 365일 내내 일한 것으로 계산해도 의사 1명이 하루 157명,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시간당 약 20명의 환자를 진료한 게 된다. 한 공보의는 "교정시설 의사 상당수가 사명감을 갖고 일하지만 과도한 업무에 지쳐 있는 게 현실"이라며 "코로나19 예방 업무를 총괄하는 방역 당국이 구치소 교도소 등에도 관심을 두고 수용자 보호 방안을 앞장서 마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늘어나는 만성질환 보유자, 감염병에 특히 취약

최근 교정시설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한 이유로, 만성질환자 비율이 높은 점을 꼽는 이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발표한 '구금시설 수용자의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 따르면 수용자의 결핵 유병률은 일반인의 8.28배, 간염 유병률은 2.53배 수준이다. 당뇨(1.81배) 고혈압(1.28배) 등 만성환자 비율도 외부보다 높다. 일반적으로 만성질환 유병자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건강한 일반인에 비해 큰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로서는 이런 환경이 교정시설 코로나19 집단 발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분명치 않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이 문제도 철저히 분석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허경미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교정시설에서 수용자가 어떤 대우를 받느냐는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우리나라 교정시설이 재소자 건강권 보호에 여러모로 취약하다는 점이 이번에 드러난 만큼 장기적인 시스템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1월 7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입구. 동부구치소는 코로나19 집단감염 발생 뒤 수용자 일반 접견을 전면 중단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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