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왜 전두환 노태우 구속을 지시했나

조정진 2021. 1. 3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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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진 박사 '국정원 창설 60주년에 되돌아보는 중앙정보부의 탄생'(행복에너지) 출간
중정 초기 2년 7개월의 역사를 다룬 ‘중앙정보부의 탄생’ 표지.
박정희, 김종필, 황태성, 김재춘, 김형욱, 이후락, 김재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주름 잡은 쟁쟁한 이름들이다. 이들의 이름과 떼놓을 내야 떼놓을 수 없는 게 5·16과 10.26, 그리고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이다.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창설 60주년을 앞두고 중정에서 정책정보 담당관과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정주진 21세기전략연구원 연구기획실장(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이 중정 탄생 초기 약 3년 동안의 비화와 역사를 담은 ‘중앙정보부의 탄생’(행복에너지)을 펴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1961년 5·16으로 시작한다. 과거와의 단절이고, 미래의 개척이다. 그 최첨단에 있던 조직이 국내 첫 국가 정보기관인 중정이다. 중정은 5·16 주체세력인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지시로 또 다른 5·16 주체인 김종필이 주도해 만든 정보기관이다.

중정은 1961년 6월 10일 5·16 주도 세력이 만든 국가재건비상조치법과 중앙정보부법 법령에 근거해서 설치됐다.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은 5·16 직후부터 제3공화국이 출범할 때까지 2년7개월간 발효된 임시헌법의 성격을 지닌 최고규범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설치 근거 법령인 국가재건최고회의법(제18조 1항)은 “공산세력의 간첩 침략과 혁명과업 수행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중앙정보부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정 설치의 목적이 ‘공산세력의 간첩침략’ 제거와 ‘혁명과업 수행의 장애’ 제거라는 두 가지 점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법과 같은 날 공포된 중앙정보부법에는 ‘혁명과업 수행의 장애 제거’라는 조문이 없다.

그럼에도 중정은 설립 초기 ‘혁명과업 수행의 장애 제거’에 모든 역량을 투입했다. 5·16에 반대하는 ‘반혁명 세력’을 제거하는 주도기관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3년 12월 17일 제3공화국 출범에 따라 그 전날 활동을 종료했다. 그에 따라 군정기간 최고통치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기관으로 설치된 중정의 존폐 여부를 비롯 새로운 노선 정립이 필요했다. 군복을 벗고 스스로 민정시대를 연 박정희정부는 제3공화국 출범 후에도 중정을 존치시키기로 결정하고, 민간정부에 걸맞은 방향으로 중정법을 개정했다.

5·16군정이라는 ‘혁명적’ 상황에 맞춰 제정된 중정법을 민정시대에 부응하는 민주적 법률체계로 정비했다. 그 당시 개정된 중정법은 10.26사건 직후 중정의 기능이 중지될 때까지 유지됐다.

책은 중정의 모태인 대한관찰부와 육군본부 정보국은 어떻게 설립되어 운영되었는지, 중정의 창설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는지, 중정은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 등 굵직굵직하고 핵심적인 사건들을 간결하면서도 파워풀한 문체로 서술하며 정보의 역사를 생생하고 재미있게 펼쳐내고 있다.

중정은 1979년 10월 26일까지 박정희 집권기간 동안 운영되었다. 5·16 직후 설치되어 18년간 박정희정부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되어 움직였다. 이 비밀스러운 기관에 대해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정확한 역사는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탄생’ 저자 정주진 박사.
그동안 중정에 대해서는 비밀 보안기관이라는 성격상 대외에 피상적으로만 알려지고, 단편적이고 흥미위주의 접근 등으로 실체적 진실이 가려진 면이 없지 않았다. 이번 책자는 저자 정주진 박사가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등으로 재직하면서 지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방팔방에 흩어져 있고 사장되어 있는 정보 사료들을 수년간 발굴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중정의 역사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역사도 함께 다루고 있어, 생생하게 전달되는 그 시대 상황을 조망할 수 있다.

책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시기 중정을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제정 중정법이고, 정치적으로는 군정 시기이다. 불과 2년 7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시기 박정희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정치사회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적 역할을 중정이 주도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중정의 실체를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를 올바로 정립하는 과제이다. 저자가 책을 쓴 목적도 그 점에 있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3장까지는 중정의 창설 배경을 살펴보고, 4장과 5장에서는 중정 초기의 운영과 황태성 간첩사건 전모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6장에서 8장까지는 김종필 김재춘 김형욱 등 초창기 중정부장들의 역할과 권력투쟁을 조명하고, 9장에서는 중정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던 북한 대남공작 부서가 그 시대에 어떤 노선과 목표를 갖고 있었고,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분석했다.

특히 1장, 2장, 3장, 4장에서는 박정희와 장도영, 김종필과 이후락, 미국 CIA 요원의 이승만 망명 공작, 5·16 거사 계획 누설과 장도영의 변신, 김재규의 5·16 거사 계획 밀고, 김형욱의 정보계 데뷔, 이병철의 5·16 후 국가재건 참여 과정, 이후락을 천거한 김종필 등 5·16 전후 긴박했던 주체세력들의 움직임을 다뤘고, 5장에선 5·16을 축하하기 위해 김일성이 파견한 황태성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잘 정리 돼 있다.

6장, 7장, 8장은 김종필의 초대 중정부장 취임과 김대중 포섭 시도, 중정의 4대 의혹 사건, 한·일국교 정상화 교섭 나선 중정, 반김종필 전선, 김형욱과 김재춘의 암투, 차지철의 난동, 김재춘이 김종필 사형 시도, 박정희의 노태우·전두환 구속 지시, 노태우의 반란과 정승화의 수습, 박정희와 김재춘의 갈등 등 현대사의 막전막후 이야기가 파란만장하게 전개된다.

이종찬 김대중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은 ‘국가정보 발전을 위한 징비록’이란 추천사에서 “정주진 박사가 용기를 내서 우리의 뼈아픈 징비록 작업을 착수했다”며 “이 작업은 우리가 수치스럽다고 피하여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냉혹하게 우리의 문제를 징비해야 그 결과,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최용환 전 주이스라엘 대사는 “6월 국정원 창설 60주년을 앞둔 시점에 그 전신인 중정에 관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 것은 의미가 크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들에는 일일이 주석까지 달아 자료의 신뢰성을 더해주고 있다”며 “이번 발간을 계기로 북한과 극렬하게 대치했던 1960년대, 남북대화와 함께 체제경쟁을 벌였던 1970년대, 북한의 테러로 얼룩졌던 1980년대 등 우리 정보기관의 역사도 정확히 기록하는 작업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정진 선임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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