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서평생활] 코로나 시대, 밥은 잘 먹고 사나요?

장슬기 기자 2021. 1. 3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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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철학/ 캐롤린 코스마이어 지음/ 권오상 옮김/ 헬스레터 펴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지난 23일 남대문시장을 방문했다. 꽈배기를 사고 어묵을 함께 먹는 등 '서민행보'를 보였다. 주말 사이 누리꾼들은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하는 쇼”라며 과거 다른 정치인들이 재래시장을 방문해 어묵 등을 먹는 사진을 함께 공유하며 이를 비판했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서민이 아니어서다. 어묵·국밥 등 서민의 음식을 먹으며 동질감을 연출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동서고금, 음식은 문화와 계층을 구분하는 상징이다. 음식 취향은 경험으로 달라지고 경험은 경제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머리칸과 꼬리칸 역시 뭘 먹느냐로 구분된다.

이처럼 음식은 생존수단 또는 '맛있다'는 행복감 이상의 사회적인 역할과 연결된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부족하다. 캐롤린 코스마이어 교수는 저서 '음식철학'(원제: Making Sense of Taste-Food and Philosophy)에서 시각·청각·미각 등 오감에도 서열이 있는데 고대 때부터 미각이 천대받아왔으며 그 이유가 젠더질서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 음식 철학/ 캐롤린 코스마이어 지음/ 권오상 옮김/ 헬스레터 펴냄

캐롤린 코스마이어는 뉴욕 주립대 버펄로 캠퍼스 철학교수로 미국미학협회장을 지냈다. 이 책의 해제를 쓴 김병철 음식철학연구소장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이 책에 견줄만한 책이 나오지 않았는데 영국 옥스퍼드와 캐임브리지 대학원에선 음식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방법론을 익히기 위해 이 책을 반드시 읽는다고 한다. 요즘같이 '먹방', '쿡방'이 넘치는 시대에 음식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데 기초가 되는 책이다.

감각의 서열, 시각>미각

감각에는 서열이 있다. 이는 고대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었다. 이들은 시각과 청각을 '거리감각', 후각·촉각·미각을 '신체감각'으로 구분해 전자를 우월한 것으로 평가했다. 시각·청각은 거리를 두고 느낄 수 있어 객관적이고, 지성을 넓히는데 있어서 필요한 감각인 반면 신체감각은 상대적으로 몸에 직접 닿아야 느껴지는 감각으로 주관적이다. 특히 미각은 직접 음식을 먹어 맛을 봐야 느낄 수 있다.

감각의 서열은 젠더와 연관있다. 높은 차원의 감각은 이성·지성 등 남성성의 특징을 발달시키는 반면 미각 등 신체감각은 철학·미학에서 배제됐다. 남성은 지성으로 감각을 다스리는 존재이고 여성은 욕망·쾌락과 짝을 이룬다는 남성우월적 시각이 반영됐다. 플라톤은 “혀의 지각들은 신성한 곳에 거주하지 않고 지적인 영혼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라며 “게걸스럽게 먹는 위(stomach)는 육욕의 영혼을 위한 여물통에 불과하다”고 했다.

감각조차 젠더질서와 연결된다는 사실은 음식문화에서도 젠더질서가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다루고 있진 않지만 '셰프의 남성화'가 그것이다. 최근 미디어에 남성 셰프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이제 여자만 요리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평가가 나왔고, 이는 쉽게 성평등이 실현됐다고 비약하는 근거로 작동했다. '아들은 부엌에도 못 들어가게 하는 시대'가 끝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 셰프들이 출연하는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한 장면. 사진=JTBC봐야지 갈무리

하지만 셰프 역시 전문직종이란 점에서 셰프라는 사회적 지위를 남성이 선점했다는 분석이 현실에 더 가깝다. 마치 이는 중세시절 아이 낳는 일을 돕던 산파들이 마녀로 몰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가 전문교육을 받은 남성의사들로 채워진 현상과 닮았다. '집에서 밥하는 여성'과 '셰프'는 다른 존재고 후자는 전자의 희생 속에 가능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TV에서 남성셰프들이 “집에선 요리 안 한다”고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음식을 나눠 먹는 관계란

코스마이어 교수는 고대철학자들이 맛을 여성에 비유하거나 감각의 서열을 만들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이분법으로 대립관계를 만든 현상 등을 지적했다. 물론 시대가 흐르면서 맛에 대한 관점이 변했지만 감각의 서열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저자는 책 끝부분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 이자크 디네센의 소설 '바베트의 만찬' 등을 소개하며 음식이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는지 다룬다. 음식·미각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과거 철학자들이 음식 관련 논의를 배제하고 미각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했지만 음식·미각은 충분히 고민할 가치가 있다. 20세기 최대의 문학적 사건이라 불리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입에 넣는 순간 그 맛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머리에 없는 몸의 기억, 사실 기억은 대부분 감각에 의존한다.

또한 코스마이어 교수는 “함께 식사하기, 기념, 환대, 의례는 맛의 주관성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사실 동반자·친구란 뜻을 가진 companion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하나의 빵을 나눠먹는다'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식구(食口)'가 밥을 나눠 먹는 사람이란 말인 것과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음식에 대한 태도, 음식을 다루는 방식에서 현재 사회를 분석해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 인기유튜버의 먹방 모습. 사진=햄지 유튜브 갈무리

최근 음식과 관련해 눈에 띄는 현상은 '먹방', '쿡방'의 범람이다. 이를 '푸드 포르노'라고 비판하는 주장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매운 것을 먹거나 지나치게 많은 양을 먹는 방송이 예시로 등장한다.

성욕·식욕을 묶어 본능에 집착하는 현상을 한심하게 보거나 좀 더 지적이고 사회·정치적인 행동에 관심을 둬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이어진다. 여행, 명품가방 등에 비하면 사진으로 찍었을 때 예쁜 음식이 '가성비 좋은 허세'이므로 SNS를 도배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틀렸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표면적인 분석이다.

'혼밥+먹방'의 시대

유튜브를 비롯해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먹방·쿡방이 대세를 이룬 이면을 볼 필요가 있다. 10여년 전 '우리 결혼했어요(우결)'와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가상결혼을 다뤘고, 이후 육아예능도 인기를 끌었다. 이는 결혼과 출산이 감소한 현실을 반영한다. 마찬가지로 먹방·쿡방의 인기는 '혼밥'이 많아지고 요리할 여유를 잃은 현대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 한옥민박은 운영하며 요리를 하는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 tvN '윤스테이' 화면 갈무리

시장조사업체 GFK가 22개국 15세 이상 남녀 2만7000명을 대상으로 요리시간을 분석한 결과, 한국인은 일주일 평균 요리시간이 3.7시간에 그쳐 대상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요리에 관한 경험·지식이 풍부하다'고 답한 응답자 역시 13%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SNS에 올라오는 주변인들의 능숙한 쿡스타그램은 이 13%에 해당하지 않을까. 먹방·쿡방은 요리에 투자하는 시간, 요리할 여유와 반비례 관계다.

한 부부가 주말에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여보 우리 점심 뭐 먹을까?”
“간단하게 카레나 먹을까?”
“…”

카레를 간단하다고 생각한 이는 카레를 먹기만 해본 사람이다. 밥에 얹어 바로 먹기만 하면 되니 '간단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카레를 만들어 본 사람은 결코 카레 재료를 준비하는 게 간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역시 젠더문제와 무관하지 않지만 이를 잠시 제쳐두면 현대인들은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남는다. 최근 100년새 아궁이에 불을 피워 밥을 짓던 시대가 저물고 압력밥솥과 전기밥솥을 지나 아예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졌다. '혼자 있으면 잘 안 해는다'는 말은 1인가구의 증가가 요리하지 않는 분위기와 연결된다는 걸 알 수 있다. 배달음식산업이 급성장한 것을 보면 코로나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했다.

먹방과 쿡방은 산업화 시대 경제성장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살다가 요리를 잃은 시대의 표상이다.

김병철 음식철학연구소장은 책 해제에서 “2020년은 코로나로 인류가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하는 언택트 뉴노멀 원년으로 음식 분야에서도 변곡점”이라며 “남성이 부엌에서 셰프로 참여하고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맛을 이야기하는 달콤하고 느린 일상을 즐기는 아날로그 타임을 선물 받았다”고 썼다.

우린 요리를 잃은 시대에 살고 있는데 코로나로 이를 심화할 게 아니라 요리를 되찾을 기회이기도 하다. 직접 요리를 하다보면 과식을 줄일 수 있다. 요리하는 동안 음식 냄새에 질리기도 하고, 재료를 직접 구매해 손질한 뒤 요리까지 하는 과정이 꼭 아름답지 않아서다. 배달음식·냉동음식을 놓고 스마트폰으로 먹방을 켠 뒤 '언택트 함밥'을 하는 이들이 많다. 올해 하반기까지 코로나가 이어질 전망이다. 코로나 시대인 지금 우리는 맛있게, 잘 먹고들 사는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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