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신의 선물..바베트의 만찬의 '끌로 드 부조'

이혜운 기자 2021. 1. 3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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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운 기자의 영화를 마시다]

낯선 것은 두렵다.

덴마크 외딴 마을에서 청교도적 삶을 사는 자매가 프랑스인 가정부 바베트가 준비한 소머리와 거북, 와인을 봤을 때 ‘이건 마녀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저녁을 먹으며 ‘신이 내린 선물’로 바뀐다. 반목하기 시작한 이웃들도 만찬을 즐긴 후 다시 사랑이 싹튼다.

/웨이브

바베트가 만든 메뉴를 살펴보자.

먼저, 전채 요리는 거북 수프. 아마도 영화 배경인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비싼 수프였던 ‘바다거북 수프’로 보인다. 너무 인기라 멸종 위기까지 불러 일으킨 바다거북의 맛은 송아지 고기와 바닷가재 사이에 있는 맛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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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곁들인 건 아몬띠야도 셰리 와인.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해 만든 강화 와인 셰리를 중간 정도 숙성한 것이다. 단 맛이 약해 식전주로 즐긴다. 이 맛을 본 장군은 “내가 먹어 본 아몬띠야도 중 최고”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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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캐비어와 사워크림을 올린 메밀로 만든 러시아식 팬케이크. 여기에 1860년산 뵈브 클리코를 곁들인다. 뵈브 클리코는 1772년 프랑스 상파뉴 지역에서 필립 클리코가 설립한 샴페인 브랜드. 그러나 그의 며느리인 바르브 니콜 퐁샤르당이 남편을 잃고 맡아 키우면서 세계적인 샴페인 브랜드로 만들었다. 브랜드 앞에 과부라는 뜻의 ‘뵈브’가 붙은 건 이 때문. 남편 없이 홀로 삶을 개척하는 그녀의 철학이 샴페인에서 느껴졌는지 자매는 이 때부터 “레모네이드 맛 같아요”라며 닫혀 있던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메인 요리는 ‘까이유 엉 사코파쥬’. 메추리에 푸아그라와 블랙 트러플로 속을 채워서 패스트리로 감싼 요리다. 세계 3대 진미 중 두 개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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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곁들이는 건 1845년산 ‘끌로 드 부조’ 지역의 레드 와인. 바베트가 프랑스 파리의 몽토르괴유가에 위치한 식당 ‘쉐 필리프’에서 직접 공수한 것이다.

‘끌로 드 부조’는 돌담으로 둘러 쌓인 마을이라는 뜻으로 부르고뉴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 지역 중 하나다. 1100년대에 시토 수도원 수도사들이 미사에 쓸 와인을 생산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와이너리는 몰수됐고, 조각조각 쪼개져 매각돼 현재 이 땅의 소유주는 수십명. 모두 훌륭한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다음 물과 함께 엔다이브 샐러드로 입안을 한 번 정리하고 나면 디저트 먹을 시간. 설탕에 절인 체리와 무화과를 올리고 럼을 뿌린 스폰지 케이크가 샴페인과 함께 나오고, 뒤이어 각종 치즈와 과일이 소테른 와인과 함께 제공된다. 곰팡이 일종인 귀부병에 걸린 포도를 사용해 아주 달고 진한 맛이 특징이다.

만찬의 마지막은 커피와 꼬냑. 그랑드 상파뉴 지역의 꼬냑이다. 지명이 상파뉴일 뿐 샴페인과는 관련이 없다. 묵직하고 강렬한 맛이다.

이렇게 만찬을 즐기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한 사람의 증언이다.

“그녀는 저녁 만찬을 사랑의 항연으로 만들었다. 이 사랑의 향연은 육체적 욕구와 영적인 욕구 사이에 구별이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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