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책임 큰 선진국들, 아프리카 에너지 전환엔 '나몰라라' [세계는 지금]

윤지로 2021. 1. 3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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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에너지 혁명' 진통
화석연료→ 재생에너지로 전환 비용 막대
기술·자본 부족한 상황서 혼자론 힘들어
선진국들 돕겠다고 하면서 지원엔 인색
석유·가스 아프리카 경제에 큰 비중 차지
개발 포기 땐 선진국들이 비용 지불해야
케냐 언론인 "일반 국민 기후변화 둔감
정부는 파리협정 이후 문제 심각성 인식"
화석연료 리스크, 이자 반영돼 부채 증가
10년간 기후위기 취약해 68조 추가 이자
"기후 프로젝트 한해 대출 이자 경감해야"
지난 21일 중앙 아프리카의 한 난민 여성이 난민촌으로 물을 실어 나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 파트리시아 에스피노사 사무총장께
 
케냐는 2016년 12월28일 ‘2030년까지 온실가스 30% 감축’이라는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출했습니다. 우리의 NDC는 전적으로 외국의 지원을 조건으로 한 것임에도 지금까지 시행된 것들은 국내 자원으로 이뤄졌습니다. 오늘 제출하는 케냐의 새 NDC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32%를 감축하는 진전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이행하는 데 620억달러(약 68조5000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첫번째 NDC와 달리 이번에는 케냐 예산 13%를 반영했습니다만, 87%는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2020년 12월24일
케냐 환경산림부 케리아코 토비코 장관 드림
 
기후위기 시대에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이 과제에서 핵심은 기후변화 주범인 화석연료와 결별하고 새 에너지원을 찾는 것이다.

시선을 아프리카로 돌려보자. 1년 365일 햇빛이 쏟아지는 광막한 사막이 있다. 사막의 4%에만 태양광을 깔아도 전 세계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도 있다.

아프리카는 등유에서 재생에너지로, 유선통신망이 모두 깔리기 전에 바로 4G, 5G로 건너뛰는 ‘립프로깅’(모든 단계를 밟지 않고 개구리 점프하듯 한번에 기술도약을 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니 아프리카가 태양광과 풍력에 올인한다면 아프리카도 좋고, 세계적으로도 좋지 않을까?
지난 21일 이디오피아 티그리 지역에서 충돌을 피한 난민들이 수단-이디오피아 국경의 테케즈 강변에 도착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석유와 가스는 아프리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따르면 알제리는 수출액의 95%, 정부 세입의 52%, 국내총생산(GDP)의 25%가 화석연료에서 나온다. 적도기니 같은 곳은 정부 세입의 80%, GDP의 50%를 화석연료에 기대고 있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석탄·석유는 원리금 회수가 어려운 ‘좌초자산’이 된다고 하는데, 아프리카에서는 좌초자산이 산업 한두개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일 수 있다. 동시에 이들도 화석연료에 계속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케냐가 UNFCCC에 보낸 서한은 이런 고민 끝에 나왔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국제사회에 도움의 손을 요청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기후변화를 일으킨 것도, 뒤늦게 문제 해결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선진국이다. 아프리카는 기후변화로 이미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세계일보는 글로벌 차원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고민해보기 위해 케냐 언론인 피터 무이루리를 이메일로 만났다. 그는 케냐 최대 신문사 더스탠더드의 기자이면서 영국 일간 가디언에도 기고해왔다. 먼저 그에게 아프리카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언론인 피터 무이루리
“일반 국민에게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홍수나 가뭄,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녹고 있는 것과 기후변화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죠.”

아프리카에는 국민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나라가 많다. 극한 기상이 일어나면 곧바로 타격을 입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도 아프리카를 ‘가장 취약한 곳’으로 꼽는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기후변화 이슈에 둔감하다니 뜻밖이었다.

“인권유린, 내전, 10대 임신, 기아 등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교육받은 사람들조차 온실가스 같은 용어는 외국 문제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다만, 정부는 파리협정 이후 기후변화가 분쟁 같은 실질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인식하게 됐습니다.”

지난 5일 카메룬 출신의 아프리카 유명 법무법인 대표인 엔제이 아유크는 현지 언론에 ‘왜 아프리카가 서구 온실가스 때문에 처벌받아야 하느냐’며 에너지 전환에 수반되는 막대한 비용 문제를 지적했다. 값싼 화석연료를 놔두고 막대한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면 아프리카는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무이루리는 재생에너지 투자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값싼 화석연료’라는 표현에는 의문을 표했다.

“석탄, 석유 같은 화석연료가 아프리카 에너지 비용을 낮췄을까요? 아프리카에서 뽑아올린 연료는 아프리카 밖으로 수출됩니다. 외화가 필요하거든요. 저는 화석연료가 싸다는 데 조금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케냐를 포함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차관을 끌어와 - 대부분은 중국 자금이죠 - 파이프라인 같은 대형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유가변동으로 수익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환 압력을 받고 있죠. 이게 어떻게 저렴한 연료인가요?”
실제로 지난해 5월 아프리카연합(AU)이 펴낸 보고서를 보면, 아프리카는 원유 75%를 외국으로 수출하고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로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수입한다. 원유 순수출국이면서 석유 완제품 순수입국이기도 한 대륙은 아프리카가 유일하다. 밑 빠진 독처럼 원유로 벌어들인 돈이 다른 재화 수입으로 빠져나간다는 의미다.

아프리카의 화석연료 의존은 환경에만 부담되는 게 아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변화하지 못하고 계속 취약한 상태로 남게 되면 리스크가 이자에 반영돼 부채 부담이 늘게 된다.

무이루리가 지난 8일 가디언에 쓴 기사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영국 임페리얼 비즈니스 스쿨과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기후위기 취약성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는 620억달러(약 68조4000억원)의 추가 이자 비용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향후 10년 동안에는 이자 비용이 1460억∼1680억달러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참에 과감히 재생에너지로 도약하는 건 어떨까.
지난 21일 중앙 아프리카의 난민 아이들이 물을 길어오는 모습. AFP연합뉴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대의를 위해 헌신한다면 말이죠. 예컨대 케냐는 2019년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계약 때문에 (발전단가가 내려가거나 전력 초과 공급 시에도) 고정 가격으로 전력을 구매해야 한다든가 막대한 투자 비용이 든다는 점은 걸림돌입니다. 유선전화에서 무선 네트워크로 건너뛰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독자적인 기술이나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의지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지난 11일 영국 BBC방송은 한 연구를 인용해 “아프리카가 에너지 부문에서 립프로깅할 것이란 기대가 있지만, 2030년이 돼도 여전히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9.6%에 머물 것”이라며 “발전소 건설 계획은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북아프리카는 그나마 상황이 좋아서 건설 계획의 91%가 제대로 추진되지만 동부나 중앙 아프리카는 성공률이 각각 71%, 52%에 머문다.

“최소한 기후 관련 프로젝트에 한해서라도 (선진국들이) 대출 이자를 낮추는 방법을 고려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 1인당 탄소발자국(2017년 이산화탄소 환산 t 기준)은 미국이 16.5, 호주 15.4, 네덜란드 9.9, 중국 7.5 등이다. 이에 비해 우간다, 르완다, 차드 같은 아프리카 국가는 0.1 정도에 머문다. 아프리카는 기후변화에 있어 책임은 가장 작은데도 상대적으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됐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녹색기후기금(GCF)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선진국의 공여액은 목표 금액에 한참 못 미친다. 무이루리는 이렇게 말한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돕겠다고 하면서도, 대체로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아프리카가 매장된 화석연료를 포기한다면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은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국가들이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말이죠, 말이야 쉬운 것 아니겠습니까.”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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