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내전 장기화 고통.. '민주화' 튀니지조차 시위 재발 [아랍의 봄 10년, 중동은 지금]

박진영 2021. 1. 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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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세계 정세 어떻게 바꿨나
튀니지 정쟁에 정부마비·최악 실업률
청년들 거리로.. 2020년 1만여명 엑소더스
카다피·살레 축출 리비아·예멘 내전 중
이집트선 군사 쿠데타 제2독재자 출현
시위자들 "변화 믿었지만 바꿀 수 없다"
'패배주의' 만연.. 독재자 향수 현상도
2019년 알제리·수단 등 '제2 아랍의봄'
"변혁 시작단계".. 민주주의 정착 기대도
이집트인 이스라 엘타위엘(28·여)이 ‘아랍의 봄’ 시위에 참여한 대가는 혹독하다. 2014년 카이로 반(反)군부 시위에서 보안군이 쏜 총을 맞고 척추가 부러져 몸 일부가 마비됐다. 친구들은 숨졌고 남편은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그 역시 7개월간 구금 생활을 했다. 정치범으로 낙인찍혀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다. 엘타위엘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우리는 목표로 한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며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지만 너무 부패해 바꿀 수 없다”고 탄식했다.
2011년 3월30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당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농성에 참가한 청년이 “나가라(GO OUT)”는 영문 구호가 적힌 손바닥을 펼쳐 보이는 모습(왼쪽)과 지난 26일(현지시간)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경찰이 의사당을 향해 행진하려는 반정부 시위대를 방패로 막고 있다. 당시 의회에선 의원들이 개각을 논의하고 있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튀니스=AFP연합뉴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분 민주화 바람인 ‘아랍의 봄’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년을 두고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아랍의 봄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희망의 불씨는 살아 있다.

◆튀니지 청년이 쏘아 올린 공… 주요 6개국 중 4개국 독재자 ‘축출’

아랍의 봄 시발점이 된 건 튀니지의 평범한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였다. 그는 대학 졸업 뒤 일자리를 찾지 못해 노점상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경찰 단속에 이마저 어려워지자 2010년 12월17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의 나이 불과 26세였다. 이에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은 이듬해 1월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반정부 시위는 이내 리비아와 이집트로 번졌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결국 2011년 3월 영국·프랑스·미국 주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공습이 시작됐다. 그해 10월 카다피가 반군에 생포된 뒤 사망하면서 42년 철권통치가 끝났다. 이에 비해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은 순순히 권좌에서 내려왔다. 다만 “군에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해 비극의 씨앗을 뿌렸다.

이어 예멘에도 반정부 시위가 번져 나갔다.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은 시위 1년 만인 2012년 2월 사임했다. 바레인과 시리아에서도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바레인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동맹국의 군사 지원을 받아 시위를 억압했고, 시리아는 곧바로 내전에 돌입했다.
◆경제 악화, ‘민주화’ 튀니지도 정국 혼란… 여성 정치적 대표성 ‘제고’

독재자 축출에 성공한 국가들의 상황은 나아졌을까. 미국외교협회(CFR)는 각종 지표를 근거로 “10년이 지난 지금 아랍의 봄 나라 사람들의 삶은 어떤 면에선 개선됐지만 다른 면에선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우선 정치적·시민적 자유,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는 유일하게 민주화를 이룬 튀니지에서만 신장됐다. 이집트도 튀니지처럼 첫 민주적 선거를 통해 2012년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이 출범했지만 이듬해 압델 파타 엘시시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며 뒷걸음질 쳤다. 영국 가디언은 “엘시시 대통령은 모든 혁명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며 “이집트 시민사회는 몰락했고 예술가와 지식인, 언론인, 학자들은 대부분 침묵을 강요받거나 추방되거나 투옥됐다”고 전했다.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장악력도 강해졌다. 시리아에 이어 2014년 리비아와 예멘에서도 내전이 시작됐다.

경제 상황은 악화됐다. 석유 부국 바레인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생활 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 청년(15∼24세) 실업률도 높아졌다. 이는 최근 튀니지 학생과 청년들이 다시 거리에 나온 이유다. BBC방송은 “튀니지 젊은이 3명 중 1명은 일자리가 없다”며 “지난해 튀니지인 최소 1만3000명이 보트를 타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고 전했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전반적으로 나아졌다. CFR는 “국제의원연맹(IPU)에 따르면 튀니지·바레인·리비아·이집트에서 여성 의원 비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 부패통제지수 기준 정부 부패 수준에 대한 인식은 튀니지만 소폭 개선됐다.

◆아랍에 진정한 봄은 올까… 튀니지, ‘성숙한 의회 민주주의’ 숙제

아랍의 봄 나라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적잖은 사람들이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 한 이집트인은 가디언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합된 이집트가 아니라 두려움 없이 정치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면서도 “자기반성과 비판의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튀니지 일각에선 독재자 벤 알리 시절에 대한 향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모멘텀, 희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WP는 “2019년 알제리와 수단, 이라크, 레바논 시위는 ‘제2의 아랍의 봄’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전 알제리 대통령이 사임하고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은 군부에 의해 축출되면서 이들의 장기 독재가 끝났다. 파와즈 게르게스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지난 10년간 격변은 결국 중동의 변혁으로 이어질 변화의 시작이라 믿는다”며 “독재자와 군사 정보기관들이 사회를 억누르는 한 중동은 안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튀니지 앞날에도 관심이 쏠린다. 성숙한 의회 민주주의를 정착하는 게 당면 과제다. 튀니지인들은 “대통령에겐 실권이 없고, 의회에서 서로 대립하는 정당들 때문에 국가가 마비되고 있다”고 말한다. 튀니지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이원집정부제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튀니지는 10년간 매년 한 차례씩, 지난해엔 무려 3차례 (총 12차례) 개각했다”며 “총선 투표율은 2014년 68%에서 2019년 42%로 떨어졌다”고 꼬집었다.
◆ 혼란한 주변국 이용 ‘대리戰’… 중동 패권다툼 가중

2011년 아랍의 봄은 중동 지역을 넘어 전 세계에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권력 지형이 재편됐다.

지난 10년간 중동의 권위주의는 강화됐다. 이슬람 수니파 대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가 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왕자와 전·현직 장관들 숙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등 대대적인 반대파 탄압에 나서며 흐름을 주도했다.

중동의 힘의 균형, 역학 구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페르시아만의 석유 부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가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사우디는 같은 수니파 국가인 UAE와 손잡고 이집트, 바레인 등의 현상 유지에 힘쓰고 있다. 바레인에 병력을 파견해 아랍의 봄 확산을 막은 게 대표적이다. 이집트는 2013년 군사 쿠데타 뒤 이들의 비호를 받는 대신 지역 정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페르시아만의 또 다른 석유 부국 카타르는 UAE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동맹국 터키와 손잡고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리비아통합정부(GNA) 등 반(反)군부 세력을 지원하며 권력을 강화했다. 이 때문에 사우디와 UAE, 바레인, 이집트는 2017년 “테러리즘을 지원한다”며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했다가 올해 초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그 결과 중동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사우디·UAE와 이에 맞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터키·카타르가 두 축을 이루고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인 무하메드 후세인 메르칸 터키 마르마라대 교수는 터키 아나돌루 통신에 “카타르와 UAE는 정치적 전략은 달랐지만 아랍의 봄을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했다”며 “역내 새로운 힘의 균형을 창출했고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튀니지 반정부 시위대가 26일(현지시간) 튀니지 의회 옆 시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위대는 높은 생활비, 빈곤 증가, 무작위 체포에 반발하여 시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편으론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와 리비아, 예멘이 내전의 소용돌이에 빨려들며 세계 정세 불안정이 심화됐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며 촉발된 시리아 내전은 미국과 러시아, 터키가 개입하며 대리전으로 비화했다. 예멘 내전도 사우디 주도의 아랍동맹군이 개입하면서 본격화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외교협회(CFR)는 “외국군 개입으로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평가했다.

이런 혼돈 속에서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와 이라크를 장악하며 테러 위협이 고조됐다. IS는 파리와 브뤼셀, 맨체스터 등 유럽 곳곳에서 잇따른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내전과 IS 발호는 대규모 난민 사태로 이어졌다. 난민 유입에 반대하는 반이민 정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득세로 표출됐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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