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 회초리 맞은 아들이 죽었다, 때린 엄마는 피눈물을 흘렸다

권광순 기자 2021. 1. 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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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DB

[사건 블랙박스] 청도 사찰 상해 치사 사건

“아들이 숨을 안 쉬어요.”

지난해 8월 말 오후 8시를 지나던 시각. 경북 청도군 한 사찰에서 119로 전화가 왔다. 60대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들을 때렸는데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구급대원들이 급히 현장에 출동했다. 그러나 신고 현장에 쓰러져 있던 30대 남성은 이미 심장 박동과 숨이 멎은 상태였다. 병원으로 급히 옮겼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신고자는 숨진 남성의 어머니 김모(65)씨. 아들 권모(35)씨의 잘못을 나무라며 매를 들었는데 비극적 사망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60대 어머니의 매가 어떻게 30대 남성을 죽음으로 이끌었을까. 수사에 나선 경북 청도경찰서는 사찰 안에 있는 폐쇄회로(CC)TV에 주목했다.

녹화된 영상을 조사한 결과, 권씨가 숨진 장소는 사찰 1층 거실 한복판이었다. 김씨가 매질에 사용한 도구는 대나무 막대기. 절에 흔히 있는 죽비였다. 지름 2.5cm에 길이는 1m 정도. 김씨는 이 회초리를 들고 마주 앉은 아들에게 2시간 넘게 훈계와 매질을 반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대나무 회초리로 바닥을 치거나, 수시로 흐느끼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자책하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신도 등 2명이 김씨의 폭행 장면을 목격했지만, ‘사회 통념상 훈계 방식’이라서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일러스트=양인성

부검을 통해 밝혀진 권씨 사인(死因)은 ‘연피하 조직 쇼크사’. 어깨와 팔 등 피부 안팎으로 멍이 들었는데, 이 때 받은 쇼크로 갑작스럽게 숨졌다는 것이다. 경찰에서 김씨는 “아들이 절에서 말썽을 피워 쫓겨날 위기였다”며 “부끄럽고 화가 나 훈계 차원에서 때렸다”고 진술했다. 매질에 아들이 쓰러졌지만, 김씨는 아들이 ‘쇼’를 한다고 생각해 그대로 놔두었다고 했다.

김씨는 아들 권씨에게 왜 매를 들었을까.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아들이 (사찰에서) 합숙 생활을 했는데, 여성 신도들을 대상으로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위를 하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권씨는 이 사찰에서 숙식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서 4차례 잇따라 낙방하자, 어머니 김씨가 “절에서 수양하며 공부도 계속 하라”며 데려왔다. 권씨는 사찰에서 하는 양봉일을 돕고 운전도 거들면서 얼마간 용돈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이 사찰에는 여성을 포함한 신도 10명이 함께 합숙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 여성 신도들을 대상으로 권씨가 부적절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의 일탈 행위 소식은 사찰 주지에게 전해졌고, 어머니 김씨의 귀에도 들어갔다. 당시 사찰 주지는 김씨에게 “규율을 어긴 아들을 데리고 떠나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김씨는 아들의 행위에 화가 나고 수치스러움에 고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 권씨에겐 “피해 여성들을 찾아가 진정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아들이 계속 거부하자, 김씨는 매를 들었다

경찰 관계자는 “방범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30대 아들 권씨가 60대 어머니 김씨를 완력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식을 훈육하기 위한 매질이 아들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에 김씨는 조사를 받을 때마다 자신을 책망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경찰은 사건 당시 CCTV 영상 자료와 권씨 부검 결과,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지난해 10월 초 김씨에게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충격에 의한 쇼크사’로 인과 관계가 성립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초 송치된 경찰 사건 기록을 토대로 김씨를 불구속 기소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지만, 김씨 사건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들을 때릴 당시 영상에는 스스로 자책하는 모습, 훈계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때린 부위도 어깨와 팔 등 치명적인 부위가 아니었다”며 “살인의 고의성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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