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조선족·일베'.. 막말정치 이번에도 선거판 흔들까 [데스크픽]

김수미 2021. 1. 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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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재보선 앞두고 여야 후보들 잇따라 막말 쏟아내
'막말 정치' 전략으로 핵심 지지층 결합 이끌어 내기도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 연합뉴스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선거 열기가 과열되면서 여야 후보들이 잇따라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의 ‘조선시대 후궁’ 발언으로 여야가 공방을 벌이면서 상대 당의 실언을 막말로 받아치는 모양새다. 보궐선거 후보들이 앞다퉈 막말 싸움에 뛰어들면서 또다시 막말 정치가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 조수진, 고민정 향해 “왕자 낳은 후궁보다 더한 대우”

조 의원은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후궁’에 비유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고 의원이 정권 차원의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조선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아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직격한 것이다. 

민주당은 즉각 “희대의 성희롱 발언”이라며 조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고, 당사자인 고 의원도 조 의원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인신공격, 막말을 한 사람은 고민정”이라고 응수하던 조 의원은 집중포화를 맞고 하루만에 사과했지만, 당 안팎은 물론 여성계에서도 “성희롱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공고한 남성 중심적 정치 관습에 길들여져 성별이나 정당에 관계없이 정치인들의 낮은 성인식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8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에서 열린 '코로나19 간호사 격려 간담회'에서 코로나19 상황 속 간호사를 담은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 오세훈 “(광진을에) 조선족 많아 민주당 지지”

조 의원이 난데없이 후궁까지 거론하며 저격한 것은 고 의원이 전날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후보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고 의원은 지난 22일 소셜미디어(SNS)에 지난해 총선에서 맞붙었던 오 후보를 겨냥해 “총선 당시 주민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조건부 정치를 한다”며 그의 서울시장 조건부 출마를 지적했다.

오 전 시장은 본의 아니게 ‘후궁 파문’의 단초가 됐지만, 곧 그 역시 막말 대열에 올라섰다.

오 전 시장은 27일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지난 총선에서 고 후보에게 패배한 서울 광진을 지역에 대해 “특정 지역 출신이 많다는 것은 다 알고 있고, 무엇보다 30∼40대가 많다”면서 “이분들이 민주당 지지층”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양꼬치 거리에 조선족 귀화한 분들 몇만 명이 산다”며 “이분들이 90% 이상 친 민주당 성향”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유권자 일부를 반대 세력을 규정할 뿐 아니라 동포·지역·세대적 혐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우상호 의원이 28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8번째 정책 공약 '아동·돌봄 정책'을 발표한 뒤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우상호 “오세훈 ‘일베’ 변질”, 김근식 “우상호는 대깨문 선봉”

조 의원의 후궁 발언 파문으로 가뜩이나 난감했던 국민의힘은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소속 의원들의 연이은 실언이 선거판을 뒤흔들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말은 바이러스처럼 여야를 가리지 않고 퍼져 결국 여당에서도 실언이 나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오 후보를 향해 “깨끗한 정치를 위해 만들었다는 ‘오세훈법’의 주인공이 어쩌다 ‘일베’ 정치인으로 변질됐는지 개탄스럽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어 “제1야당 후보가 가진 지역 혐오, 세대 혐오, 동포 혐오의 민낯을 봤다”며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남 탓하는 왜곡된 엘리트주의가 혐오를 만나 더욱 볼썽사나워졌다”고 비판했다.

경쟁 후보가 혐오성 발언을 했다고 비판하면서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로 규정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특정 사이트를 사용하는 국민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도 특정 집단 국민에 대한 혐오”라고 역공을 펼쳤다.
국민의힘 김근식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29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비전스토리텔링 PT에서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근식 “우상호는 대깨문 선봉”

서울시장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김근식 경남대 교수도 등판했다. 

김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우상호 의원이 친문(친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 환심 사려고 대깨문 선봉에 나섰다”면서 “정치에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지만, 과도한 비난은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는 법”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조수진 의원의 ‘후궁 발언’으로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민주당이, 우상호 의원의 ‘일베 발언’은 침묵한다”며 “말로 하는 게 정치지만 말로 망하는 것도 정치”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김 교수 역시 우 의원을 비판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을 낮잡아 이르는 ‘대깨문’이라는 표현을 썼다. 

대깨문은 원래 ‘대세는 깨어있는 문재인’의 줄임말로 ‘달빛기사단’ 등과 함께 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의미했다. 그러나 반문 진영에서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며 맹목적으로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의미로 바꿔쓰고 있다. 당초 친문 진영에서 스스로를 지칭하던 유행어가 최근엔 극성 지지자를 비하하는 용어로 더 널리 쓰이며 친문 진영을 공격할 때 단골처럼 등장한다.

29일엔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박재호 의원이 부산시당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에서 “우리 부산에 계신 분들은 조·중·동, TV조선, 채널A를 너무 많이 봐서 나라 걱정만 하고 계시는지 한심스럽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 ‘선거 악재’ VS ‘존재감 부각’

오 후보의 ‘조선족 민주당 지지’나 우 의원의 ‘일베’ 비유, 김 교수의 ‘대깨문’, 박재호 의원의 ‘부산 조·중·동 독자 비하’ 발언에는 모두 상대당 지지자이자 특정 유권자들에 대한 비하 또는 혐오가 깔려 있다. 이처럼 특정 지역과 계층을 대상으로 한 막말은 집단적인 반발과 지지층간 대립으로 이어져 결국 선거 악재로 작용하곤 한다. 

19대 총선 때는 당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후보였던 김용민 의원이 인터넷 라디오방송에서 “노인네들이 (시청에 시위하러) 오지 못하도록 시청역 엘리베이터를 모두 없애자”고 말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명박 심판론을 기대했던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의 전신)에 과반을 내줬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유가족 모욕’, 김대호 후보의 ‘3040세대·노년층 비하’ 발언 논란으로 국민의힘이 치명타를 입으며 민주당의 180석 압승에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선거 판세를 뒤엎을만큼 후폭풍이 심한데도 정치인들이 막말을 참지 못하는 것은 존재감 부각과 지지층 규합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후보의 정책과 미래 비전보다는 인지도가 당락을 가르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독한 언어로 이목을 끌어 인지도를 높이고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결국 막말 정치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고도로 기획된 ‘노이즈 마케팅’ 또는 ‘이슈 메이킹’의 일환인 셈이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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