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이 만난 단칸방의 유령들..우리들의 죽음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2021. 1. 3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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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제공
30일(토) 11시 10분 방송되는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망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사회 안전망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점검한다.

지난해 9월 경남 창원 한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던 50대 여성 김모씨가 사라졌다. 그녀가 살던 건물에 이상한 악취가 퍼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웃이 119에 신고했고, 문을 열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패한 김씨 시신이 발견됐다.

그런데 김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는 나란히 누워 있던 또 한 구의 시신이 있었다. 김씨와 함께 있던 사람은 22세 박수정(가명)씨로 김씨 딸이었다. 모녀가 들것에 실려 나오는 모습을 본 주민들은 경악했다.

김씨가 이사 온지 6년이나 됐지만, 그 딸의 존재는 이웃조차 몰랐다. 사망 한 달이 가까워 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모녀의 죽음 역시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게다가 시신 발견 당시 현관문과 방문이 노끈으로 묶여 있어 외부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경찰은 타살과 자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벌였지만 특별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시신 발견 현장 정황상 모녀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숨지게 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부검 결과는 사건을 더욱 미궁에 빠지게 했다. 두 시신 모두에서 어떤 외상이나 독극물 반응도 나오지 않았기에 끝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

가난했던 모녀의 재정 상태로 봤을 때 고독사 혹은 아사를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신 발견 당시 집 안에는 쌀을 비롯한 음식이 남아 있어 한동안 끼니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굶어죽는 것은 그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과학적으로 자살도 타살도 증명할 수 없는 밀실 돌연사였다.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만난 수정씨 친구들은 예상 밖 이야기를 들려줬다. 수정 씨는 평소 매우 활달했고, 외국어 성적이 좋았을 정도로 학업에 열중했으며 그림 그리는 것 또한 매우 좋아했단다"고 전했다.

이어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사람 돕는 일을 하고 싶다며 요양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면서 "밝은 모습으로 미래를 준비하던 그녀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친구들은 믿을 수 없어 했다"고 덧붙였다.

취재 결과 수정씨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다 고교졸업 후 성인이 되고 나서 지난 2년간 엄마와 함께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 긴 시간 동안 이웃도 몰랐던 수정씨 존재, 그녀는 유령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발길을 들이지 않는 낡은 단칸방. 벽지처럼 도배돼 있는 수정씨의 기괴하면서도 애처롭게 느껴지는 그림들만이 모녀가 이곳에 살았다는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 맨손에 맨발로 전한 메시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이와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는 단칸방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선 한 남자가 있었다. 맨손과 맨발로 지하철역 앞에서 팻말을 들고 앉아 있던 37세 최동욱(가명)씨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도와달라는 글씨를 보고 우연히 지나가던 사회복지사가 말을 걸었다.

"'어머니의 영혼은 천국에 계시죠'라고 해서, '그럼 어머니의 몸은 어디 계세요?' 하니까 '몸은 거기에 계시죠' 그러는 거예요. '거기가 어머님 방이에요?' 그러니까 '네'라고 하더라고요."

복지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욱씨를 따라 집을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서는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불에 싸여 있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렇게 동욱씨 어머니는 사망 반년 만에 발견됐다. 동욱씨 설명에 따르면 어머니는 어느 날 팔이 아프다며 돌연 쓰러진 이후 숨을 쉬지 않았다고 했다.

성인이지만 발달장애를 지닌 동욱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숨을 멈춘 어머니 곁을 그저 지키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 시신 주변으로 파리가 날아다니고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더 아플까 싶어 동욱씨는 이불을 가져와 어머니 위에 덮은 후 가장자리를 테이프로 꽁꽁 싸맸다. 그렇게, 거대도시 서울의 좁은 단칸방 안에서 동욱씨와 이불 속 어머니는 함께 지낸 것이다.

제작진은 "수정씨 모녀와 동욱씨 모자는 왜 단칸방 안에서 싸늘한 유령이 돼 세상에 알려져야 했을까"라며 "이번주 방송에서는 빈부격차 문제를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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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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