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전후 콜 1번이 끝'..벼랑끝 대리운전 "유난히 춥네요"

김형주 2021. 1. 30. 1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일감 사라진 대리기사들
손님 1명 태우고 나면, 콜 '증발'
8시30분~9시30분에만 반짝영업
7년간 대리기사 수는 2배 급증

#오후 8시50분 서울 금천구의 편의점 안, 패딩 점퍼를 입은 남성 3명이 테이블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9시로 당겨진 식당 등의 영업종료 시간에 맞춰 손님들의 대리운전 '콜'을 기다리는 대리기사들이었다. 대리기사 박기성 씨(가명·60)는 "예전에는 하루 평균 3~5건을 했지만 요새는 1건이 보통이고 운이 좋아야 겨우 2건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콜을 받고 달려간 대리기사에게 손님 강성훈 씨(가명·48)는 기자의 동행에 응하면서도 차 안에서 반드시 마스크를 써줄 것을 당부했다. 경비업체 중역인 강 씨는 "코로나19에 걸리면 회사에 피해를 줄 수 있어 요즘은 술자리를 갖지 않는다"며 "오늘은 거래처 사람을 만나느라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셨다"고 말했다.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목적지인 양천구 목동까지 요금은 3만원, 중개수수료 20%를 떼면 2만4000원이 기사에게 남는다. 오가는 차비를 빼면 기사의 수중에 남는 돈은 2만원이 조금 넘었다.

손님의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주차를 마친 박 씨는 곧바로 지하철역을 향해 뛰었다. 콜이 사라지기 전에 취객들이 많은 번화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목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술집이 밀집한 당산역에 도착했으나 시간은 이미 10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당산역 사거리에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휴대폰 화면만 응시하는 남성들이 여럿 보였다. 박 씨는 "저기 배회하는 사람들이 전부 대리기사"라며 "이제 콜이 없어질 시간이라 대부분 허탕을 치고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가 보여준 휴대폰 화면 속 콜 배치 프로그램에는 수도권 지역의 전체 콜 수가 400개라고 떠있었다. 9시20분께 7000여개였던 콜이 40여분 만에 90% 이상 급감한 것이다. 기사는 많고 콜은 적다보니 가격도 1~2만원씩 떨어진 상태였다.

29일 대리운전 업계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9시 이후 식당과 술집의 영업이 금지되면서 대리기사들은 8시30분~9시30분 시간대가 지나면 사실상 손님이 전무했다. 해당 시간 이후에는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어 대리운전 콜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대리운전 업계 관계자들은 업계 내 경쟁이 심해지며 기사들의 수입이 줄어드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가 대리운전 업계 불황의 결정타가 됐다고 증언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대리운전 실태조사 및 정책연구' 따르면 2020년 기준 대리운전 업체는 3058개, 대리운전 기사는 16만4600명으로 추정된다. 2013년 8만7000명에서 7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10년차 대리기사 최성현 씨(가명·59)는 "대리기사가 늘면서 요금이 7~8년 전 대비 30~40% 줄었다"며 "코로나19까지 퍼지며 영업 생태계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밤 10시가 넘자 거리를 배회하던 대리기사들은 영업을 포기하고 하나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박 씨 또한 지하철역 입구로 들어서며 작별을 고했다. 박 씨는 "버스를 타면 가는 도중 콜이 잡혔을 때 내려서 일할 수 있지만 가능성이 없어 집에 빨리 갈 수 있는 지하철을 타려 한다"고 말했다. 밀어올린 점퍼 지퍼에 얼굴을 묻으며 박 씨는 "대리기사에게 날씨가 추운 겨울은 가장 힘든 시기"라며 "코로나19가 덮친 올해 겨울은 예년보다 유난히 버겁다"고 밝혔다.

[김형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