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축하공연 나온 美 국민가수..지지선언은 뮤지션의 자유?

홍장원 2021. 1. 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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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축하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미국 국민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
[스쿨오브락-177] 지난 20일 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기해 축하쇼 '셀러브레이팅 아메리카'가 열렸다. 여기서 실로 오랫만에 미국의 국민로커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을 보았다. 1949년생, 한국 나이로 칠순이 넘은 그는 여전히 걸걸한 목소리로 기타 하나에 의지해 노래를 하는 현역 가수였다.

스프링스틴은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다소 떨어진다. 한국팬들이 좋아할 만한 특유의 기승전결, 뽕끼(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특유의 멜로딕한 곡 진행 같은 걸 에둘러 표현했다)가 없는 대신 하드록 특유의 무뚝뚝하고 간결한 직선적인 멋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한국에 조용필이 있다면 미국엔 스프링스틴이있다. 이렇게 표현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젊었을 때 그는 미국의 노동계급을 상징하는 백인 계층의 표상이었다. 폭발력 넘치는 무대 매너를 가진 건전한 청년. 서민의 애환과 좌절, 희망을 노래하는 국민가수. 미국 록의 신기원을 열어젖힌 '젊은 피'였다가 칠순이 넘는 지금까지도 노래하는 '존경받는 노장'의 이미지로 변신했을 정도의 생존력. 20개가 넘는 그래미상을 받은 인기 스타이자 1억장이 넘는 앨범을 팔아치운 성적표. 지금까지 후배 가수의 존경을 이끌어내는 권위. 이런 모든 이미지는 한때 최고의 인기스타였다가 이에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변신을 시도하며 '가왕'자리에 오른 조용필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조용필은 2013년 10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에 실린 '바운스'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밀어내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 올랐는데 스프링스틴 역시 2014년 내놓은 앨범 하이 호프스(High Hopes)를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자리에 올리며 여전한 인기를 드러낸 바 있다.

미국에서 가수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건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행동이 약간은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개인의 의사표시에 관대한 미국에서는 음악인의 정치 성향을 보고 쉽게 굴레를 씌우지 않는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로 활동했다. 12년전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에도 스프링스틴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대선 투표 직전 선거 유세에서 스프링스틴이 직접 참석해 오바마 후보를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을 정도다. 오바마가 재선됐던 2012년에도 스프링스틴은 미국 오하이오와 아이오와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 참석해 무료 공연을 열며 오바마 지지를 외쳤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스프링스틴을 놓고 "난 대통령이지만 스프링스틴이야말로 보스입니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입지는 확고하다.

스프링스틴은 2017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한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놓고 '반(反)트럼프' 내용을 담았다. 제목은 '우리를 위대하게 하는 것(That's What Makes Us Great)'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토였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저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사 내용을 번역하면 '내게 거짓말을 하지 마 / 사실만을 얘기해 / 예전에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 하지만 되돌아가지는 않았어/너는 책도 잃지 않잖아 / 나는 신뢰할 수 없어 / 너와 같은 사기꾼과 일당들을' 등으로 그야말로 맹폭격이었다.

이에 앞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스프링스틴의 노래를 선거운동용 곡으로 쓰려하자 이를 강하게 반대해 무산시킨 기록도 있다. 평생을 거쳐 일관된 정치이념을 가져온 셈이다.

사실 어떠한 정치이념도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에 어떤 사상과 제도를 응원하든 그건 뮤지션의 자유일 것이다. 스프링스틴이 민주당을 응원하기 때문에 그의 음악 업적이 더 평가받아서도 안되고, 공화당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찬란한 음악 여정이 저평가받아서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부러운 것은 어느쪽을 응원하던 간에 이를 비교적 쿨하게 받아들이는 미국의 문화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스프링스틴이 꼴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변수가 수면 위로 올라와 논쟁거리까지는 잘 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라 생각하고 비교적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2002년 한국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신해철은 훗날 지지선언을 후회한다는 발언을 했다. 지지선언 이후 잃은 게 너무 많았다는 이유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신해철은 눈물의 공연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아마 그간의 마음고생이 십분 반영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한국 현실에서 어떤 가수가 "난 국민의 힘을 지지한다" "우리 가족은 더불어민주당의 오랜 지지층이다"는 발언을 했을 때 악플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공인의 발언에 한국 사회는 많은 가중치를 두고 바라보며, 또 감정이입도 쉽게 한다. 이런 문화가 과연 맞는 것인가. 아니면 좀 과열된 측면이 있는 것인가. 2021년 워싱턴DC에서 곱게 늙은 스프링스틴이 건강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고민했던 생각의 단편이 글로 뛰쳐나오게 됐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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