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꿈이었던가"..파리 뒤흔든 최대 스캔들 주인공의 말로

오수현 2021. 1. 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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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사랑의꿈 3번
최고 피아니스트 리스트와 사교계의 여왕 마리 다구 백작부인의 사랑
9년 만에 결별..1년 뒤 가곡 작곡 후 다시 피아노곡으로 편곡

[꿀잠뮤직]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19세기 음악계의 마성의 남자였다. 헝거리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리스트는 당시 유럽 예술계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탁월한 연주실력에다 잘생긴 외모로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설을 뿌렸다.

녹음기가 등장하기 전이라 리스트의 연주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연주에 관한 당시 글을 보면 손을 높이 들고 건반에 도전하듯 연주했다고 한다. 실제 리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손을 높이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신문만평이 여럿 남아 있다.

리스트 피아노 연주 장면을 그린 그림. 1842년 출판된 책에 실려 있다.
기교에선 여타 피아니스트들과 비교불가일 정도로 압도적이었고, 사운드 적인 측면에선 엄청난 울림을 냈다고 한다.

그는 쇼맨십의 명수이기도 했다. 무대를 향해 객석을 가로질러 걸어가던 리스트가 떨어뜨린 손수건을 줍기 위해 귀족 부인들이 실갱이를 벌였고, 가슴에 한가득 훈장을 달고 연주하는 통에 연주 내내 훈장끼리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는 일화는 그가 얼마나 화려한 쇼맨십을 자랑하는 연주자였는지 가늠하게 한다.

다만 쇼맨십만 강조하다보면 관객들은 쉽게 싫증을 낼 수 있는데, 리스트는 여기에 엄청난 연주력을 기반으로 풍부한 감정을 담아 연주했기 때문에 이런 쇼맨십도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이다.

리스트의 아버지는 리스트가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자 8살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해 당시 피아노 교사로 이름을 날리던 카를 체르니에게 레슨을 받게 했다. (맞다! 그 체르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리스트의 재능을 한눈에 간파한 체르니는 사례를 아예 받지 않고 헌신적으로 리스트를 가르쳤다. 리스트가 체르니에게 레슨받은 기간은 1년 반에 불과하지만 리스트의 연주력은 이 시기에 확립됐다. 이후 리스트는 스승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맹렬히 연습해 경쟁자가 없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리스트는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지만, 파리 체류 시절 교제한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사랑이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유럽 대도시의 연주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첫째는 공연장에서의 공식적인 연주회로 현재와 마찬가지로 거리에 공연 포스터를 붙이고 신문에 연주회 광고를 내며 관객들을 확보했다. 둘째 유형은 살롱 연주회였다. 당시 귀족들의 접견실 격인 살롱은 음악가는 물론 문인, 화가 등 예술가들과 귀족들간 사교의 장이었다. '파리 사교계에선…'이라고 말할 때 쓰는 사교계라는 말은 사실 살롱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과 예술가들 간 모임을 일컫는 말이었다.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의 살롱은 당시 가장 활발하게 돌아가는 사교의 장이었다. 이 살롱에 출입했던 유명인사로는 작가 중에선 빅토르 위고와 하인리히 하이네가 있었고 음악가 중에선 엑토르 베를리오즈, 프레데리크 쇼팽이 대표적이었다. 마리는 미모와 세련된 매너, 풍부한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다. 예스런 표현으로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은 파리 최고 살롱의 여왕이었다.

프란츠 리스트
리스트는 이곳에서 백작부인과 급속도로 친밀해졌다. 이들의 첫 만남 당시인 1833년 리스트의 나이는 22세, 마리의 나이는 28세였다.

마리 다구 백작 부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부녀였다. 남편 샤를 다구 백작 사이에 이미 두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첫 만남 2년 뒤 마리는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리스트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로 거처를 옮겼다. 지금 시대에도 여성이 가정을 버리고 미혼의 남성과 함께 살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데, 19세기 중엽 리스트와 마리의 동거는 파리 사교계의 엄청난 화제거리였다. 

이후 리스트와 마리 사이에선 3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둘은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다. 둘은 공식 동거 9년만인 1844년 완전히 결별한다. 이들의 결별을 놓고 이런저런 추측이 많지만, 말 그대로 성격 차가 제일 컸다. 마리는 총명하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했지만 자존심이 세고 기본적으로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여성이었다.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이동이 잦고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아간 리스트 입장에서 보면 마리는 기댈 수 있는 따뜻한 배우자가 아니었다.

마리는 귀족집안 출신에 씀씀이가 컸는데 리스트와의 동거 이후에도 낭비벽이 고쳐지지 않았다. 연주활동과 레슨으로 적잖은 돈을 벌어들였던 리스트였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고 한다. 리스트가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 이후에도 사교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것도 마리의 신경을 자극했다.

리스트는 마리와 결별 이후 단순한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와 작곡가로 음악활동의 보폭을 넓혀 나간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답게 엄청난 기교를 요구하는 화려한 작품이 주를 이루지만, 조용하면서도 사색적인 작품도 많이 남겼다.

사랑스러운 멜로디와 화성으로 가득한 '사랑의꿈(Liebestraum) 3번'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회 때 앙코르곡으로 즐겨 연주하는 작품이다. 원래는 마리와 결별 이듬해인 1845년 시에 노래를 붙여 만든 가곡이었는데, 1850년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다. 피아노로 편곡한 작품에는 '3개의 야상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마리 다구 백작부인
이 곡을 듣다보면 마리와 함께한 지난 9년이 리스트에겐 한바탕 꿈과 같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실제 원곡인 가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한. 시간이 오리라,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사랑의 귀결은 결국 이별아닌가, 라는 체념의 정서가 읽힌다.

꿈결같은 분위기는 쇼팽의 야상곡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지만 사용되는 화성과 피아노의 음형을 살펴보면 쇼팽의 작법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쇼팽의 야상곡은 한 사람을 위해 노래하듯 선이 얇지만, 리스트의 야상곡은 텍스처가 상대적으로 두껍고 울림이 크다. 옥타브로 저음부를 눌러 배음이 풍부하게 울리도록 한 상태에서 물결이 치는 듯한 아르페지오로 내성(內聲)을 채우는 리스트 특유의 스타일 때문이다. 화성은 반음씩 섬세하게 하강하면서도 낯설지 않게 시종 따뜻한 울림을 낸다.

사랑스러운 멜로디는 테너의 노래에서 소프라노의 노래로 넓은 음역대를 오르내리며 마치 남녀 가수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를 듣는 듯 하다.

※ 꿀잠뮤직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듣기에 좋은 음악을 추천해 드리는 코너입니다. 매주 한 곡씩 꿀잠 부르는 음악을 골라드리겠습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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