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가 돌아왔다..당돌한 도전인가, 세련된 순치인가

한겨레 2021. 1. 3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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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리뷰&프리뷰][토요판] 리뷰
새로운 잡지의 시대
2016년 4931종 머물던 잡지
2021년 5495종으로 11.4%↑
한편·매거진G·물결·아크
사상잡지와 고급서평잡지도
주류 문화적 공백 폭로하는
읽기 공동체 형성 기대 높아
'어벤저스 필자' 좋지만
문화적 반란 역동성 더하길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인문 잡지 <한편>, 지식교양 잡지 <매거진 G>, 고급 서평 잡지 <서울리뷰오브북스>, 비거니즘 정치 잡지 <물결>, 사상 잡지 <다시개벽>, 내러티브 매거진 <에픽>, 라이프스타일 잡지 <브리크>, <툴즈>, 고품질 독립잡지 <프리즘오브>, 라이프스타일 잡지 <컨셉진>.

팬데믹은 많은 것을 바꾼다. 코로나19 팬데믹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짓말이 진실을 가리는 페이크데믹도 있고,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파괴하는 플랫폼데믹도 있고,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무너뜨리는 디지데믹도 있고, 무료가 유료를 잡아먹는 프리데믹 등도 있다. 진화에는 방향이 없고, 재난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흐름에 올라타서 적응할 것인가, 무찔러 면역을 얻을 것인가, 견디지 못하고 사라질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노력이 사회 전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다.

잡지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소년>(1908) 이후, 100년 넘게 독자들과 함께하던 종이 잡지는 디지털 콘텐츠 팬데믹 앞에서 진화와 도태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일상의 기쁨을 전하는 샘물 같은 잡지 <샘터>는 2019년 폐간 위기를 간신히 넘겼으나, 시대와 인물에 관한 날카로운 비평으로 이름 높던 <인물과사상>은 역사의 유물이 되었다. 공연 예술 전문잡지 <더 뮤지컬>, <피아노음악> 등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종이 잡지의 멸종이 임박해 보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잡지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잡지 산업 매출액은 총 7775억원이다. 2012년 매출액 1조8625억원과 비교할 때, 10년도 안 돼 절반 이하로 떨어진 셈이다. 규모도 축소되는 중이다. 잡지사당 평균 매출액은 4억3800만원, 2012년 12억5900만원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광고를 디딤돌 삼아 에디터와 디자이너 수십명이 달라붙어 한 호를 만드는 ‘그랜드 매거진’ 시대는 완연히 저물었다.

역설적 현상도 나타났다. ‘양질의 콘텐츠, 엄선된 큐레이션, 강력한 공동체’라는 잡지의 기본 모델은 ‘구독 경제’라는 이름을 통해서 식재료에서 자동차까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놀라운 인기를 끈다. 디지털 콘텐츠 유료 구독의 시대도 다시 열렸다. 넷플릭스와 왓챠는 동영상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는 소프트웨어의,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스토리는 만화와 소설의, 뉴닉과 북저널리즘은 맞춤 뉴스와 고급 정보의 구독을 습관화했다. 출판사 또는 서점마다 북클럽 운영이 붐을 이루고, 이슬아·문보영 등 청년 글꾼들은 전자우편이라는 원시(?) 도구만으로 출판사 도움 없이 에세이 구독의 신대륙을 개척했다. 잡지는 사라져도 구독은 여전히 남는다.

길 잃었던 종이잡지가 돌아왔다

2020년대 들어 길을 잃었던 종이 잡지도 구독 경제의 붐과 함께 어느새 곁으로 돌아와 있다. 매출은 줄었지만 다양성 측면에선 큰 진전이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간행물등록현황’에 따르면, 2016년 4931종까지 감소했던 잡지 종수는 2021년 현재 5495종으로 11.4% 늘어났다. 휴간이나 폐간되는 잡지만큼 창간 잡지도 꾸준하다. 배달의민족의 <매거진 F>, 직방의 <디렉토리>, 나우의 <나우 매거진>, 코오롱스포츠의 <섬웨어> 같은 브랜드 매거진이 사보를 대신하고, <컨셉진>, <부엌>, <브리크>, <툴즈> 등 좁고 깊게 취향을 다루는 라이프스타일 잡지가 온갖 제품 광고가 넘쳐나는 옛 잡지를 밀어냈다. <보스토크>, <우먼카인드>, <프리즘오브> 등 고품질 독립잡지들도 여전히 건재하다. 정보 감염병 시대에 맞서 잡지는 다르게 존재하는 법을 터득했다. 이제 잡지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협업적 창조성을 집중해 만드는 단행본 출판과 비슷해진다. 출판사들의 관심은 당연한 귀결이다.

작년 한해 출판사에서 무크(비정기 간행물) 형태로 발간하는 잡지들이 쏟아졌다. 1월에 인문 잡지 <한편>이 나왔다. 이 잡지는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등 하나의 주제를 놓고 주로 30~40대 연구자들의 생각을 담아내면서, 정기구독자 5000명을 확보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젊은 감각과 호응하는 인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새로운 담론에 목마른 독자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한편>의 성공은 출판사 무크 붐에 불을 붙였다. 10월에는 음악 잡지 <풍월한담>이, 11월에는 사상 잡지 <다시개벽>이, 12월에는 지식교양 잡지 <매거진 G>와 고급 서평 잡지 <서울리뷰오브북스>와 비거니즘 정치 잡지 <물결>이 창간되었다. 부산에서는 인문 무크지 <아크>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바야흐로 ‘잡지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잡지의 집단적 등장은 주류 문화의 공백에 대한 폭로이자 주체의 변혁적 교체를 열망하는 도전이다. 중심들의 위력적 ‘끼리끼리’를 불편해하고, ‘나눠먹기’와 ‘돌려막기’를 경멸할 줄 아는 주변부 주체의 반란이 적합한 내용과 형식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업주의에 물든 담론의 지형을 무너뜨리려는 싸움터의 형성이고,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에 맞서 생각을 전복하고 정서를 움직이는 언어의 발굴이기도 하다. 잡지의 성공은 언제나 규모의 크기보다 열광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1980년대의 무크지, 1990년대의 문화 잡지, 2010년대의 독립잡지의 등장은 저자의 열의와 독자의 환호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바 있다. 우리 시대 잡지는 어디에서 싸우고 있으며, 어떤 독자와 열광을 공유하려 하는 것일까.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책에서 “세상에 변화와 차이를 만들어 내”는 현장을 발명한다. ‘인기도서 중심’의, ‘짤막한 겉핥기’에 그치는, ‘주례사 서평’이 넘쳐나는 현재의 서평 문화를 비판하고, “책의 내용과 주장에 정곡을 찌르는 비평을 통해 독서의 재미와 깊이를 더해 주는” 서평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지적 전통”을 세우겠다고 다짐한다. 독서를 “고독하고 서늘할 정도의 개인적 침잠”인 동시에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뜨겁게 손을 잡는 활동”임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좋은 책을 고르고 허황한 책을 무찌르는 서평 문화의 구축을 통해 ‘같이 읽고 함께 사는’ 사회적 독서 운동을 전면화하려 한다. 자연스레 독서공동체 운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매거진 G>는 우리 생활의 관심이 집약되는 질문의 자리를 비판의 공간으로 삼는다. “얄팍함”이 “흥미로움”이 되고 “깊은 의미”가 “지루함”이 된 부박한 현실을 비판하면서, “누구나 한 번은 꼭 마주하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필요한 질문들”에 “오래된 지혜와 최신 이론으로 접근”할 것을 약속한다. 인문학을 담론의 추상적 책갈피에서 생활의 구체적 현장으로 바꾸어 가려는 ‘라이프스타일 인문학’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풍월한담>과 <아크>는 풍월당과 상지건축의 아카데미 활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두 곳은 각각 서울 압구정동과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오랫동안 외부 지원 없이 시민들 대상의 아카데미를 운영해왔다. 이들은 “삶의 질은 높아졌지만 정신의 피폐는 더 커지는 역설적 상황”을 해소하고, “깊이 없는 재미와 말초적 자극에 치우”친 문화적 천박함에 맞서 “공동체의 선한 가치를 세우고 굳건히 하는 데에 기여”하는 “인문학 담론의 장”을 지향한다.

<다시개벽>과 <물결>은 잡지를 한 사람 혁명과 한 사회 혁명을 함께 이루기 위한 진지로 설계한다. 두 잡지는 공히 “생태계 착취에 토대를 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 지구를 “거주 불능 상태”로 만들고, “남성-이성애자-백인-성인-자본가-인간”이 나머지 생명 전체를 억압하면서도 수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영성의 황폐화”를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다시개벽>은 “경제 선진국이자 자살률 최상위 국가”의 고통 어린 삶에서 벗어나려면 “서로 모시고 더불어 사는” 철학의 내면화를 통해 사람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물결>은 “공장식 축산”에 저항하고 “멸종 반란”을 선동하는 등 “비거니즘 정치”를 통해서 온 생명이 고통 없이 살아가도록 현대적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뒤엎는 “사회 대변혁”에 중점을 두면서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한다.

<한편>은 청년 담론의 독립을 추구한다. 한국의 청년들은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생존주의 세대 등 호명된 주체로만 살아왔다. “2030을 위한 지면”처럼 발화 공간조차 시혜의 한 영역으로 베풀어졌다. 이에 맞서서 <한편>은 젊은 편집자와 젊은 연구자와 젊은 독자의 연대와 참여를 통한 지적 독립을 선언한다. 담론의 지형을 재설정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페미니즘 세대’ 등 자기정체성을 스스로 만드는 실천을 통해서 이들은 능동적 행위자로 자신을 드러낸다. 익숙한 기성의 이슈를 전유하여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변화시킴으로써 ‘다른 현실’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새로운 잡지의 등장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필자군의 형성과 관련이 깊다. 1980년대 무크지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농민·빈민·지역의 목소리를 기성 잡지들이 담아내지 못하는 자리에서 생겨났다. 1990년대 문화 잡지는 하급 문화로 천대받던 영화나 음악, 에스에프(SF)나 판타지 등 비주류 문화에서 개성적 목소리를 얻었다. 2010년대 독립잡지는 페미니즘, 동성애, 반려동물 등 소수자의 삶에서 주류의 폭력적 무관심을 무너뜨릴 개미구멍을 뚫었다.

잡지의 물리적 기반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1980년대에는 복사기의 보급이, 1990년대에는 피시(PC)통신의 탄생이, 2000년 이후에는 인터넷의 보편화가 새로운 잡지 탄생의 밑바탕이었다. 해마다 숫자가 늘어나는 독립잡지들은 블로그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통한 필자의 대규모 공급, 독자와 작가가 함께하는 강력한 취향 공동체 형성, 소셜 펀딩을 통한 자본 형성이나 편집·디자인 같은 제작 환경의 외부화 등 “엘리트 중심의 폐쇄적 소통 구조”를 넘어설 수 있는 기술의 도움 없이 불가능했다.

독자를 찾아내기 힘들어서 유통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것은 기존 잡지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서점이나 가판대에서 독자 눈에 띄려면 부수도 많아야 했고 비용도 커졌으며 위험도 막대했다. 초연결사회는 유통 문제 대부분을 해결한다. 온라인 공동체 등을 통해 독자와 쉽게 연결되는 상황에서는 유통의 힘보다 콘텐츠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 내 취향에 맞춤한 질 높은 잡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독자들은 온라인서점이나 독립서점 등을 통해 어떻게든 잡지를 찾아내고, 주변에 알리는 마케터 역할까지 기꺼이 떠맡는다.

물리적 조건은 충분하다. 문제는 콘텐츠다. 작년에 나온 잡지들은 대부분 기존 문화자본의 투자를 받아 만들어졌다. 이들은 과연 어떤 주체를 호명하고, 어떤 감각에 호소하며, 어떤 독자를 만족시키는가. 이 잡지의 필자들 중 낯선 얼굴은 드물다. 대부분 글 잘 쓰는 교수들, 글솜씨를 자부하는 글쟁이들이다. 덕분에 사유의 깊이는 넉넉하고 문장의 맛은 좋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긴박함을 담아내는 낯선 화법을 보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지난 10년 동안 독립잡지들이 보여준 문화적 반란의 역동성을 거의 느낄 수 없다. 당돌한 도전의 열정보다 판관의 냉정한 언어가 너무 많다. 현장의 날 선 감각에 대한 세련된 순치, 전선의 거친 목소리에 대한 우아한 입마개는 아닌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주변에 높다.

사람들은 묻는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감춰진 책을 발굴하고 비판의 칼날을 드러냈는가. <매거진 G>의 주제 ‘나란 무엇인가?’에 호명된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아크>의 ‘휴먼’은 부산이라는 터전에서 얼마나 단련되었는가. <다시개벽>의 ‘다시’는 오늘의 삶에 충분히 매개된 전통인가. 전통은 살리는 게 아니라 살아서 견디는 것이다. <물결>과 <한편>의 갈라치기는 차라리 반갑다. 적대를 양식 삼는 언어만이 새로운 주체를 형성할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 ‘잡지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 앞날의 독자를 선취할 미래의 잡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종이매체의 시대가 끝났다고 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여러 잡지가 폐간된 2010년대를 지나고 2020년대가 되자 다양한 잡지가 여럿 창간되기 시작했다. 인문 잡지, 음악 잡지, 사상 잡지, 지식교양 잡지, 비거니즘 정치 잡지, 페미니즘 잡지, 고품질 독립잡지 등 성격도 필자도 디자인도 다채롭다. 새로운 잡지의 집단적 등장은 무엇을 뜻하고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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