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영화 '늑대와 춤을'을 보며 '미션'이 떠올랐다
지난 글에서 3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늑대와 춤을’(감독 케빈 코스트너, 1990)을 소개한 바 있다. 이번엔 이 영화 덕분에 떠오른 또 다른 옛 영화 ‘미션’(감독 롤랑 조페, 1986)을 소개할까 한다.
두 영화는 여러 차례 재개봉할 만큼 국내 관객들에겐 추억의 명화라 할 수 있는데, 여러모로 닮았다.
- 아름답지만 끔찍한 역사의 한복판
‘미션’도 ‘늑대와 춤을’처럼 역사적 배경 속 허구 인물들의 이야기다. 1750년대 남아메리카의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 속에 원주민의 모습을 담아냈다.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과 멘도자는 과라니족과 평화로운 공존을 이룩해낸다.
과라니족의 터전인 이구아수 폭포는 현재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의 접경지역으로 1750년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벌인 영토 분쟁의 한복판이었다. 당연히 침략자들에게 적대적이었던 주민들은 선교활동을 위해 접근하는 예수회 신부들을 잡아 십자가에 매달아 폭포 아래로 떨어뜨리며 거부했다.
영화 초반 가브리엘 신부는 얼마 전에 죽은 신부의 십자가 목걸이와 오보에를 들고 주민들에게 다가간다. 가브리엘의 오보에 연주에 원주민들은 그를 받아들인다. (가브리엘 신부가 정글에서 연주했던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지금도 자주 들리는 음악이다. ‘넬라 판타지아’로 편곡된 노래도 익숙하다.) 그리고 점차 서로에게 동화되며 자치 마을을 만들어간다. 멘도자는 전직 용병이자 노예 상인으로 과라니족과 악연을 갖고 있었으나, 가브리엘 신부와 함께하기로 한 멘도자를 과라니족이 용서하면서 동참하게 된다.
당시 스페인과 바티칸의 협력 관계 속에 가톨릭 예수회는 스페인 점령지에서 선교활동을 벌였다. 이는 식민지화가 선교라는 명분을 통해 침략이 묵인되고, 정당화됐던 역사의 한 단면이었다.
덕분에 가브리엘 신부 일행과 주민들의 지역은 스페인의 보호를 받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새로운 조약을 맺으며 그 지역이 포르투갈 영토로 바뀌게 되고, 과라니족에게는 이주 명령이, 예수회 신부들에겐 철수 명령이 내려진다.
실제 역사 속에서는 예수회 신부들이 철수했다고 하나, 영화 ‘미션’에서는 가브리엘 신부와 멘도자 등이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주민들과 함께한다. 가브리엘은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하고, 멘도자는 다시 칼을 잡는다. 그리고 모두 죽음을 맞는다. 신의 이름으로 침략하고, 신의 이름으로 저항하는 위선적 역사의 현장이라 하겠다.
- 착한 침략자와 원주민들 그러나...
‘늑대와 춤을’처럼 ‘미션’에서도 원주민 과라니족은 착하고, 순박하다. 그들을 잔혹하거나 미개하게 그리지 않았다. 영화 내내 백인들이 벌이는 ‘원주민이 인간인가, 짐승인가’ 논쟁에 대해 그들도 인간이란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제시하는 그들도 인간인 이유는 여전히 백인 중심적이고, 유럽 중심적이다. 예를 들어, 원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가르치니 배우고, 자신들의 음악을 가르치니 아름다운 목소리로 성가를 부를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들은 스스로 저항할 능력이 없다. 그들 자체의 지도자도 없다. 결국 가브리엘 신부와 멘도자가 리더가 되어 그들을 돕는다. 원주민들은 또다시 도움이 필요한 무능한 존재로 그려진다.
원주민을 그들 모습 자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서양인의 모습을 해야만 인정한다는 한계와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그려냈다는 한계도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원주민을 존중한다는 점과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정복자나 개척자보다는 침략자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분명 기존 식민주의 시선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백인화자
‘미션’에서는 ‘늑대와의 춤을’처럼 백인 화자가 등장한다. 이 영화는 상황 파악을 위해 교황 특사로 파견 온 추기경의 편지에서 시작해 편지로 끝이 난다. 조금은 달라졌지만, 백인들의 시선에서 기록한 역사이고 영화인 셈이다.
“신부들은 죽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건 나고, 산 자들은 그들입니다.
왜냐면 언제나 죽은 자의 정신은 산자의 기억 속에 남기 때문입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지만, 이구아수 폭포와 주변 자연 풍경은 장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까지 어우러져 서구의 침략과 영토 분쟁 속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을 추모하게 된다.
여전히 백인 중심적 시선의 영화로서 역사 왜곡 논쟁도 있었고, 우리가 잘 아는 역사는 아니지만, 파괴된 곳과 사라져간 사람들을 잠시 기억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지금도 피부색과 지역만 달라졌을 뿐,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지 둘러볼 필요도 있겠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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