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2%의 기적'..6년간 장애 엄마 간호한 여고생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이동준 2021. 1. 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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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발표회에서 후지이 리코양.
 
“엄마가 혼자 걸을 수 있는 확률은 단 2%였습니다”

안타까운 사고로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여성이 딸의 정성 어린 간호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따뜻한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엄마 A씨를 담당한 의사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후지이 리코 양에게 “엄마가 스스로 설 수 있는 확률은 2%”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2%의 확률은 지금 기적처럼 현실이 돼 두 모녀를 미소짓게 하고 있다.

29일 일본 고교생신문에 따르면 리코양 가족의 불행은 약 6년 전 A씨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으면서 시작됐다.

A씨는 이 사고로 장기 입원이 필요했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어 “다시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A씨와 둘이 생활한 리코양은 등교나 식사 등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A씨가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할머니 집으로 가게 됐다.

A씨는 멀리 떨어져 사는 딸에게 걷는 연습하는 사진을 보내며 재활에 노력하고 있었다.

◆힘든 결정

리코양은 이런 A씨 모습을 보고 “함께 살며 간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어렸던 리코양에겐 힘든 결정이었지만 A씨가 퇴원하게 되면서 마음속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사고 후 2년여가 지났지만 휠체어 생활하는 A씨를 간호하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낮엔 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한 숨 돌릴 수 있었지만 A씨가 혼자 걷기 조차 힘든 탓에 목욕이나 화장실 사용 등 일상적인 일도 큰 어려움이 따라 리코양의 도움이 필요했다. 옷을 갈아입는 일이나 신발 신는 것조차 도움이 필요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아픈 A씨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리코양은 새벽부터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하교 후에는 A씨 간호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리코양에겐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6년간의 간호

어린 나이에 간호에 매달려야 했던 리코양은 때론 너무 힘들어 엄마와 말다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툼은 오래가지 않았다. 리코양은 “웃는 얼굴로 함께 보내기 위해 매일 엄마와 수다를 떨었다”고 말했다.

리코양의 이런 생활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현재 고3인 리코양은 이젠 익숙한 듯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 등 집안 일을 마치고 학교에 간다. 하교 후에도 중학생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A씨를 간호한다.

6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지만 리코양의 생활은 처음 “엄마와 함께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때와 큰 차이는 없다.

차이라면 이같은 생황이 처음보다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2%의 기적

생활은 6년전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지만 희망이 현실이 돼 기적처럼 나타났다.

의사는 “스스로 걷지 못할 것”이라고 봤지만 이 진단은 기분 좋게 틀렸다.

리코양과 A씨의 노력이 통했는지 A씨는 지팡이를 이용해 혼자 걸을 수 있게 됐다. 계단도 오르내리고 집 안을 다니는 것도 불편하지만 가능해졌다. 휠체어를 탈 때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 기적처럼 가능해진 것이다.

리코양은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작은 노력이 쌓여 열매를 맺은 것”이라며 “엄마가 이를 입증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소중한 교훈을 배웠다”고 말했다.

리코양은 A씨와 지난 6년간의 생활을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일부 발췌)

‘2%의 기적’
 
엄마가 혼자 걸을 수 있는 확률은 단 2%였습니다.
 
6년 전 엄마는 교통사고를 당해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의사는 혼자 걸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의식도 없이 면회도 안 되는 상태가 계속됐습니다. 한 달 후 겨우 엄마를 볼 수 있었지만 그 모습에 할 말을 잃게 됐습니다.
 
엄마와 둘이 살고 있던 나는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하게 됐습니다.
 
할머니와 친척들은 엄마가 퇴원하더라도 이전처럼 둘이 함께 살기는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이런 현실을 알고 눈물 흘리며 반드시 이겨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아픔을 참고 몸을 일으켜 걷는 연습을 하며 여러 번 넘어질 뻔한 엄마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4년 전 나는 퇴원한 엄마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일뿐 아니라 엄마를 간호하는 일에 때론 지쳐 너무 힘들다고 약한 소리 내며 엄마와 다투는 일도 있었습니다.
 
엄마를 간호하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복지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귀가 후에는 엄마를 간호하는 시간이 계속됐습니다.
 
이런 일상에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나는 장애인을 치료하는 재생 의료를 배우고 싶습니다. 장애를 가진 분들의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웃는 얼굴로 생활하는 세상을 위해 힘이 되고 싶습니다.
 
2%였던 가능성을 엄마는 노력으로 얻었습니다. 지금 엄마는 재활에 힘써 지팡이를 사용하면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기적에 지지 않도록 지금을 극복하고 미래의 꿈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사진=오카야마산요고등학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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