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세력 박살내자"..美 개미대전 '병정'들은 누구인가
게임스톱, 해외 주식 매수 2위 등극
게임스톱 주가는 29일 또 폭등
“우리는 다이아몬드 손이다! 버틴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개인 투자자 게시판에 30일 들어가면 이런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다이아몬드 손(diamond hand)’이란 레딧의 대표적인 투자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월가에 베팅한다는 뜻)’에서 통용되는 은어다. 자신이 찍은 주식의가격이 하락한다고 바로 팔아버리지 않고 더 오를 때까지 참고 버텨 큰 수익을 취하는 투자자를 뜻한다. 반대는 ‘종이 손(paper hand)’이다. 주가가 조금만 하락하거나 소폭 올라도 바로 팔아버리는, ‘팔랑 손’을 가리킨다.
‘로빈후드 개미’라 불리는 미국 개인 투자자가 공매도 세력을 박살내겠다며 전쟁을 벌인 지 열흘이 지났다.(로빈후드는 미국 개미가 주로 쓰는 주식 거래 앱 이름이다.) 이들은 공매도 세력이 많이 공략한 주식을 대거 사들여 가격을 폭등시키는 방법으로 공매도 투자자를 맹폭하고 있다. 대표적인 주식이 게임 소매 체인 ‘게임스톱’이다. 지난 21일부터 로빈후드 개미의 집중 매수가 시작됐고, 주가가 8배 넘게 올랐다. 공매도는 주식 가격이 하락해야 돈을 버는 투자 기법이기 때문에, 주가가 올라가면 큰 손실을 입게 된다. 대부분의 공매도 투자자는 이미 ‘백기’를 들었다.
처음엔 일회성 장난으로 끝나리라 여겨졌던 이 캠페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를 더해가 미국 증시, 나아가 글로벌 증시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 의회는 관련 청문회를 열기로 했고, 블룸버그는 “이번 사건이 공매도의 종말을 뜻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한국의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미)도 ‘참전’할 기세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9일 테슬라에 이은 한국 해외주식 매수 2등이 게임스톱이었다. 애플을 뛰어넘었다.
공매도 세력과 싸우고 있는 로빈후드 개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뭉치고 대부분이 익명으로 활동해서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온라인에 쏟아내는 게시물을 보면 대략의 성향은 알 수 있다.
막대한 자금력과 영향력을 지닌 공매도 세력과 싸우는 로빈후드 개미, 어떤 이들일까.
◇글씨가 아니라 ‘짤’로 소통한다
로빈후드 개미들이 집중적으로 사는 게임스톱, AMC엔터테인먼트 등의 주식을 미국 경제지는 ‘밈 주식(meme stock)’이라고 부른다. ‘밈’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재밌게 합성해 만든 이미지로 비슷한 뜻의 한국어 은어로는 ‘짤’이 있다.
‘레딧’ 게시판에 들어가면 글보다는 사진과 짧은 동영상이 더 많이 올라 있다. 과거 주식 전문가들이 복잡한 차트와 수치로 주식의 가치를 계산해낸 보고서를 파고 들었다면, 로빈후드 개미는 간단한 이미지를 통한 직관적 ‘지령’을 토대로 행동한다. 밈에 쓰이는 소재는 제한이 없다. 유명한 영화를 패러디하거나, 자신들을 지지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유명인의 얼굴을 다른 영상과 합성하고 입맛에 맞는 자막을 달기도 한다.
이들이 올린 대표적인 밈들은 아래와 같다.
영화 ‘매트릭스’ 패러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악당들과 맞서는 장면을 ‘개미 대 공매도’ 전투로 패러디했다. 네오가 무수히 쏟아지는 총탄을 우수수 떨어뜨리고 “안 팔아”라고 말한 후 적들을 화려한 무술로 쓰러뜨리는 장면이다. 발차기를 할 때마다 ‘플레이어들에게 힘을(Power to the players)’, ‘다이아몬드 손’ ‘퇴각은 없다(hold the line)’ 등 레딧에서 이들이 흔히 쓰는 문구가 함께 뜬다. 물론 영화엔 저런 대사가 없고, 합성한 것이다.
가나의 ‘흥겨운 장례식’ 패러디
가나에선 장례식에 ‘춤추는 상여꾼'을 고용한다. 가나의 장례식장 장면을 담은 동영상은 얼마전 인터넷에서 크게 유행했었는데, 이 동영상이 로빈후드 개미의 밈으로 만들어졌다. 관에 쓰인 문구 ‘멜빈캐피탈’은 대표적인 공매도 투자사다. 상여를 맨 이들의 얼굴엔 일론 머스크, 게임스톱 로고, 레딧 로고(주황색 동그라미), 월스트리트베츠 대표 이미지(선글라스 쓴 얼굴) 등이 합성돼 있다.
그밖에 영화 패러디
영화 ‘샤이닝’의 싸이코 주인공(잭 니콜슨)이 즐거운 듯 웃고 있는 표정 위에 이런 문구가 써 있다. ‘공매도 세력의 손실이 700억달러를 넘어섰다.’
히어로물 ‘파워레인저’ 포스터에 일론 머스크,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미 하원의원 등 로빈후드 개미 편에 선 유명 인사들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
영화 ‘월가의 늑대들’의 화면에 ‘500만 레디터(레딧 사용자)들, 오전 9시30분(미 증시 기장 시간)에 전쟁을 벌이기 위한 준비 완료’란 문구를 합성한 동영상의 일부.
◇어린 시절 ‘향수’에 취한 밀레니얼들
로빈후드 개미가 주로 매수하는 종목엔 공통점이 있다. 공매도 세력의 공격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1990년대~2000년대 초까지 잘 나가던 기업이 많다는 점이다. 포천은 “개인 투자자들의 집중 매수는 밀레니얼 세대가 그리워하는 오프라인 극장이나 게임 가게 등을 부활시키자는 움직임에서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2000년에 태어난 이들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게임스톱은 온라인 게임이 나오기 전, 게임 마니아들이 게임 팩과 게임기를 매매하러 가던 매장이었다. 극장 체인 AMC엔터테인먼트도 밀레니얼 세대의 어린 시절 ‘추억’에 깊이 각인된 회사다. 한때 잘 나갔던 휴대폰 회사 블랙베리(지금은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올린 밈에는 그래서 아래 이미지처럼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한 이미지가 적지 않다. 이미지에 쓴 문구는 이런 뜻이다. (위) ‘걱정마, 물고기들아. 내가 너희를 지켜줄게. 왜냐하면 언젠가 너희도 날 지켜주리라는 걸 난 아니까.’ (아래) ‘얼마가 들어도 상관 없어요. 제발 이 사람을 다시 살려주세요!’ 이 그림에서 ‘사람’은 게임스톱, 물고기는 밀레니얼 투자자 자신을 가리킨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돈, 그리고 시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간편한 온라인 거래 플랫폼, 남아도는 현금, 주체할 수 없는 지루함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개미들의 공매도 ‘맹공’의 배경엔 코로나도 작동했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 경제 충격을 막기 위해 막대한 현금을 개인에게 지급했는데 이 돈이 로빈후드 개미들의 ‘총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카드 포인트로 전국민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한국과 달리, 미국은 현금으로 지원금을 줬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대학원생 김모씨는 “재난 지원금을 받아서 바로 주식을 샀다. 대부분 여가 활동이 막히고 예금 이자는 싸고… 딱히 이 돈을 쓸 곳이 없더라”고 했다.
코로나로 발이 묶여 지루함과 싸우던 밀레니얼들에게 ‘게임스톱 대전’은 게임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달 취임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당초 계획했던 600달러에서 2000달러까지 올려 조만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로빈후드 개미들의 밈 중엔 코로나 지원금 관련 내용을 담은 것이 적지 않다.
아래 영상은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을 패러디한 것이다. 거인으로 묘사된 헤지펀드가 ‘뭐야, 더 산다고?’라고 공격할 자세를 취하자 개미 군단이 말을 타고 진격하며 이런 말을 한다. ‘빨리! 지원금을 (주식) 계좌에 입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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