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은 왜 "자살행위"라던 정책을 내걸었나

장슬기 기자 2021. 1. 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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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정의당 2] 서울시장의 서울해체 공약 "득표율보다 대선 발판이 목표"…성추행에 노동법 위반 논란까지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최근 눈을 의심케 하는 공약이 있었다.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해체·수도이전을 내걸었다. 서울시민들에게 표를 요청하며 서울해체를 내거는 전략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까? 게다가 정의당은 현재 거대양당과 안철수 대표가 있는 국민의당에 가려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이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 때문에 '젠더선거'를 강조하던 4월 보선 무공천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출마를 하더라도 과연 '서울해체'로 유권자들을 얼마나 설득할지 의문이다.

미디어오늘은 정의당 내부문건을 통해 왜 이러한 전략을 내놓았는지 살펴봤다. 정의당 재보궐선거를 기획하는 곳에서 만든 내부문건을 보면 정의당 부설 연구소인 정의정책연구소에서 지난해 12월 조사한 결과가 나온다. 서울지역의 가장 필요한 정책이슈 전략으로 부동산 및 주거를 꼽았다. 두번째 일자리 문제였다. 부산의 경우 일자리가 첫번째, 부동산 및 주거가 두 번째였다. 서울시장 선거를 두고도 국민의힘에선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꾸준히 비판해왔다.

하지만 정의당은 부동산 문제를 최우선으로 두지 않았다. 정의당은 보궐선거 '3대비전 10대정책'으로 내놓은 과제를 보면 1순위는 차별과 폭력을 키워드로 한 성평등, 여성대표성, 성인지감수성 등 젠더이슈였다. 주거취약자를 위한 주거 공공성을 확보해 주거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정책은 6번, 후순위에 등장한다.

지난해 말 정의정책연구소에서 내놓은 재보궐선거 전략 관련 내부문건을 봐도 일반 대중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전략이 등장한다. 재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이 제시한 3대 비전방향을 보면 첫번째가 수도권 집중 완화다. 심지어 정의당은 이를 '자살행위'라고 진단했다.

▲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재보선 관련 내부문건

해당 문건에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수도권 집중 완화를 말한다는 건 제도정당에게는 '자살'행위일 수 있다”면서도 “오히려 서울시장 선거에서 수도권 집중 완화를 전면 제기하고 관련 정책을 주요 공약으고 제시해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거대양당의 후보들과 제3지대 주자로 평가받는 안철수 대표는 사실상 정치생명을 걸고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게다가 양당의 지도부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이번 선거에서 질 경우 자신의 정치생명이 달려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특히 여당의 연이은 선거성공에 낙담한 제1야당은 대권주자들이 체급을 낮춰 출마할 정도로 명운을 건 승부가 예상된다.

문건 뒷부분을 보면 해당 연구소는 '자살행위'를 전면에 내건 이유가 나온다. 정의당은 문건에서 “이는 득표로 직결되지는 못할테지만, 부산시장 선거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더 중요하게는 정의당이 대선과 지방선거에 대응할 중요한 담론적 기반(수도권에서 덜어 전국을 고르게)을 마련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당장 재보궐선거에서 오히려 당의 득표를 제약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대선과 전국 동시 지방선거로 이어질 정치 과정을 염두에 두고 과감히 채택해야 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힘든 득표율 등을 목표로 삼기보다 다른 것을 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며 “득표율보다는 대선의 발판을 놓는 것을 목표로”한다고 썼다. 거대양당과 제3지대까지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소수정당인 정의당은 이번 선거를 대선을 위한 중간단계로 인식한 것이다.

지지층·당원들은 이러한 전략을 알고 있고 동의했을까? 진단과 전략이 다른 진보정당에 여전히 표를 주고 싶을까? 최선을 다해 싸우다 잘 져야 다음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전략을 당 지도부와 후보들만 '대외비'로 침묵하면 괜찮을까? 유권자들은 당과 후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만으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실망도 하는 존재다.

정의정책연구소는 이런 논리로 서울공화국 해체선언을 의제로 던졌고, 실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지난 11일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하며 서울특별시 해체를 들고 나왔다. 언론에선 서울시 해체를 헤드라인에 걸고 출마 소식을 전했다.

정의당은 4·7 재보궐TF를 만들고 보궐선거 공천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단지 전직 당대표 성추행 사건에 대한 책임 여부만 고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의당에겐 이번 서울시장이 '자살행위'인 공약을 내걸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정도의 선거였기 때문에 공천여부를 놓고 당내 세력간 이해관계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지난 총선 이후 만든 혁신위원회에서도 벌어진 일이다. 냉철한 현실 진단, 원인진단에 맞는 전략, 전략에 기반한 당의 역량집중이 선순환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탈당사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 정의당 혁신위원회가 지난해 8월13일 국회에서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앞선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난 대선 당시 '심블리'로 사랑받던 정의당은 '조국사태'에서 보인 침묵 이후 하향길에 들어섰다. 총선을 앞두고 진보·소수정당과 연대해 비례연합정당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못했고, 청년과 여성에 대한 혜택에 불만을 품는 다른 연령대 후보가 나오고 심지어 총선 준비 중 당을 떠난 이도 있었다. 선거제개혁 탓에 조국사태에도 한마디 못했는데 교섭단체(20석) 구성을 목표는 처참하게 무너졌고, 이 와중에 지역구는 기존 2석에서 1석으로 줄었다.

범여권이 180석을 얻었는데 국회의석의 고작 2%를 얻었지만 당은 총선 결과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진단했으니 온건한 개혁책이 나왔다. 청년이자 여성인 비례대표 당선자를 혁신위원장으로 꾸려 당의 개혁을 논했다. 향후 전략은 당연히 민심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공천과정의 실패를 되돌아보지 않았고, 혁신안 초안을 발표했을 때 언론이 가장 주목한 건 당비를 1000원으로 낮출 것인가의 문제였다. 40억원에 달하는 부채(지난해 6월 기준)가 가장 중요했던 걸까.

언론과 지지층의 비판 이후 지난 8월 정의당 혁신위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당 강령개정을 우선 과제로 내놓았고, 실제 뜨거운 쟁점이었던 건 부대표를 몇 명으로 하느냐의 문제였다. 당비, 강령개정, 부대표 숫자 모두 정의당 내부의 문제, 나아가 내부세력간 이해관계 문제일 뿐이다.

같은날 총선 실패를 선언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총선백서에서 총선과정을 진단하고 국민통합특위에 호남 출신 의원을 임명하고 당명개정 아이디어를 받기로 했다. 기본소득 등 시류에 맞고 개혁적인 의제도 정강정책에 포함하기로 했다. 적어도 이날 정의당은 통합당에게 졌다.

[관련기사 : 총선 이후 개혁중인 정의당과 통합당, '같은날 다른 모습']

▲ 정의당 김윤기 당대표 직무대행 등 당 지도부가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략협의회에서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당대표 성추행 사건 일주일이 채 안 지나 대리게임 논란에도 해고노동자 출신임을 주장하며 국회에 입성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비서를 면직하는 과정에서 노동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29일 류 의원실은 “면직을 통보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누가 진보정당에서, 해고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의원이 이런 실수를 할 거라 믿을까.

연이은 실수는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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