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을이 을을 착취하는 야만사회, 국가는 뭘 하나" 윤여준 전 장관의 편지
한국일보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사를 지난 25일부터 연재했습니다.
한국일보 독자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1,2회 기사를 읽은 후 "그동안 하청업체가 원청의 횡포에 피해를 보는 기사들만 보다가 하청업체의 노동자 약탈 상황을 접하니까 충격을 받을 정도네요. 이런 자본주의가 과연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지, 진보 정권은 과연 이들을 위해 어떤 고민과 행동을 했는지 심각하게 따져보고 분노해야 할 것같습니다. 도대체 시장은 무엇이며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시민으로서 진지하고 심각한 고뇌를 해보라는 메시지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라는 소회를 취재팀에게 전해왔습니다.이에 저희는 윤 전 장관께 독자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글을 부탁드렸습니다. 아래는 윤 전 장관이 독자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또 윤 전 장관은 원고료를 드리려는 한국일보측에 "기고료는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금액의 많고 적고를 떠나 하청 근로자에 관한 짧은 글을 쓰고 고료를 받는다는게 마음에 영 내키지 않습니다. 잠시나마 그들에 대해 마음을 열고 고통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라는 마음을 전해왔습니다.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읽고
세상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절대로 양지가 될 수 없는 음지가 있다. 음지가 아니라 차라리 얼어 붙은 땅 ‘동토(凍土)’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오죽하면 한국일보가 기사 제목을 '지옥도(地獄圖)'라고 했을까?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개입해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의 일부를 떼어 내서 중간 이득을 얻는 행위, 중간착취. 근로기준법은 법에 의하지 않은 중간착취를 엄연히 규제하고 있지만 파견 근로, 용역 노동자는 관련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하청 업체들은 이 법의 빈 틈을 노려 무자비한 중간착취를 자행한다. 이렇게 구조화된 착취 속에 갇혀 있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 울타리 밖에 존재한다.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착취 당하는 이 파견·용역업체 노동자들, 아울러 이렇게 구조화된 착취. 국가나, 정치나, 기업이나, 소비자나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방치할 것인가? 이러고도 우리는 세계 몇 위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라고 자랑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착취의 구조화를 전혀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과 노동 간에 힘의 불균형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당연시 했던 것은 아닌가?
국가는 쉽게 말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공성이라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가는 공공성이라는 가치가 제도로 뭉쳐진 것이라 하지 않는가?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국민주권주의를 선언했다. 나라의 주인은 주권자인 국민이므로 국민의 의사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국민주권주의는 언뜻 듣기에 매우 합당한 말 같지만 여기에는 매우 위험한 함정이 있을 수 있다. 대다수 국민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논리로 국민의 의사를 빙자한 전체주의의 명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 국가의 주권자라고 하면, 스스로도 모르게 비교적 수월하게 사회적 혜택을 받아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계층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 누군가의 탐욕을 위해 희생되고 배제되는 파견·용역 노동자들, 그래서 평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계층이 된 이들도 이 나라의 엄연한 주권자 아닌가?
중간착취가 더욱 잔인한 것은 이것이 을(乙)과 을(乙)의 싸움이고, 을이 을을 착취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원청이 갑(甲)이라면, 그 밑에 있는 하청과 재하청은 을인 셈이고 여기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더욱 힘이 없는 을 중의 을인 셈이다.
원청은 법적 의무가 없다고, 도급 업체는 권한이 없다고, 그런 이유로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에 노동자들의 삶을 방치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 이전에 야만 사회일 뿐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10조),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11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헌법은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한다”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를 정치적 가치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관계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가치로 확대해야 할 때가 왔다. 갑의 민주주의와 을의 민주주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가는 지배자들의 이익을 위한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 경영은 원래 기업인으로 하여금 윤리적 규범의 한계를 넘어가게 하는 충동을 갖게 만든다. 이 충동이 사회의 공공윤리 쇠퇴로 이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견제해야 한다. 이것은 민주시민의 몫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간착취라는 가장 추악한 형태의 반인륜적 행위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한국의 미래는 없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중간착취의 지옥도' 인터랙티브 바로보기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indirect_labor/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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