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초당 4g 로또공 한개가 쏙~' 수백억 가르는 추첨현장 가보니 [로또하세요?]
* 기자라고 말을 다 잘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나 처음 보는 사람과는요. 소재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재밌어할 만 한것, '로또'입니다. 로또는 사행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 희노애락이 보입니다. '당첨금'에 초첨을 맞추면 세금·재테크·통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추첨기 속 바람 소리가 생각보다 요란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숫자들이 결정됐다. 그냥 숫자가 아니다. 매주 수백억의 향방을 가르는 행운의 당첨 번호들이다. 6초당 공 1개가 추첨기에서 뽑혔다. 생방송 추첨 현장에 있는 50여명은 모두 다 숨죽인 채 공을 바라봤다.
로또 의혹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추첨 기계와 공에 관한 조작설이다. 누군가의 입맛대로 추첨공과 기계를 조작한다는 것.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추첨이 완료되다보니 보고도 못 믿겠다는 이들이 많다.
추첨기나 공조작이 정말 가능할까? 그것도 생방송 도중에? 지난 23일 서울 MBC 상암동 사옥에서 진행된 947회차 로또 추첨 현장을 기자가 참관해 봤다.
오후 6시경 인근 경찰서에서 파견 나온 경찰관이 도착했다. 경찰관 입회 하에 추첨기와 공을 보관하는 창고 봉인을 해제했다. 45개의 추첨공은 007 검정색 가방에 들어 있었다. 각각의 가방은 케이블 타이처럼 한번 조이면 절대 재사용이 불가능한 철사줄로 묶여 있었다. 펜치로 '툭' 철사줄을 자른 후에야 가방을 여는 것이 가능했다.
로또 1등 번호를 뽑는 기계 '비너스(venus)'도 베일을 벗었다. 전 세계 40여국에서 사용한다는 이 추첨기는 비너스 여신의 몸매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구 모양에 기다란 관이 연결된 모양이었다. 프랑스 윈티브사(winTV)로부터 사들인 기계의 가격은 한대당 1억원, MBC 창고에는 총 3대의 비너스가 보관돼 있다. 김 차장은 "실제로 이용하는 것은 1대지만, 생방송 도중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예비 추첨 기계 2대를 포함한 총 3대를 세트장에 설치한다"고 설명했다.
오후 6시 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동행복권 직원들은 본격적인 검수 작업에 돌입했다. 추첨 기계의 정상 작동은 물론, '바람 공급'과 '뚜껑의 열고 닫힘'에 초첨을 맞춘 테스트였다. 즉, 73~80 m/s 속도의 바람이 통 안으로 잘 들어가는지, 통 안에서 굴러다니는 공들이 맨 위 뚜껑에 맞아 트랩(당첨홀) 안으로 잘 빨려 들어가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다 정상 작동했다.
김 차장은 "추첨은 가벼운 추첨공들이 강한 바람으로 혼합구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가운데 트랩 뚜껑이 열리면서 뚜껑에 맞는 볼이 트랩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그야말로 우연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첨기 뚜껑과 트랩이 낚시줄로 연결돼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가느다란 낚시줄에 의존해 뚜껑이 열리고 닫히며 행운의 숫자를 순식간에 낚아채는 모습이 마치 어떤 고기가 잡힐 지 모른 채 낚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어를 낚을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듯 공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로또 대박'을 꿈꿨다.
오후 7시30분경 또 다른 경찰관이 입회한 채 공식적으로 추첨볼 검수가 시작됐다. 추첨공 무게와 둘레를 측정하는 것인데 "특정 추첨공이 무거워 기계안에서 가라앉거나 혹은 반대로 너무 가벼워 더 잘 뜨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방청객이 공식 검수 과정에 참여했지만 이날은 기자가 맡았다.
007가방 안에 든 추첨공 5세트 중 각각 5개의 공을 랜덤으로 고르는 일을 기자가 했다. 그리고 동행복권 직원이 추첨기 제조사가 제공한 계측기를 이용해 공의 지름을 쟀다. 맨 위에는 44mm원, 아래는 46mm원이 있는 기계였는데 지름45mm인 공이 위에서는 통과하지 않고 아래에서는 통과해야 정상이라 판단했다.
공의 둘레와 무게 측정이 끝나자 5개의 공세트 중 3개를 선정하는 일까지 기자가 했다. 하나는 실제 추첨시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두개는 예비용으로 두기 위함이다. 두근두근 떨렸다. 기자는 두 눈을 가린 채 1에서 5까지 번호가 적힌 007 가방 중 3개를 골랐다.
오후 8시경 사전검수 과정은 끝이 났다. 하지만 동행복권 현장 요원들은 여전히 분주했다. 일주일간의 로또 판매가 끝난 8시에 맞춰 판매 데이터를 두고 상황실과 감사실이 확인했음을 서명한 내역을 팩스로 송수신해야해서다. 이 작업이 끝난 뒤 추첨이 가능한 상황이 됐음을 또 참관인들에게 공지했다.
추첨 방송이 끝나자 추첨공이 든 007가방과 추첨기는 창고에 다시 봉인했다. 마찬가지로 경찰관 입회 하에 작업은 이뤄졌다. 사전 검수 작업부터 방송 리허설, 방송 후 마무리 보관 작업까지 거의 4시간 동안 현장 관계자들은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생방송의 긴장감을 매주 이렇게 견뎌야하다니 못 할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김 차장은 "매주 토요일마다 긴장하며 일하는데 로또 조작설을 들을 때면 정말 기운이 빠진다"며 "궁금하거나 의심이 드는 분들은 언제든 추첨 현장에 오셔서 직접 확인해 보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by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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