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서 '면죄부' 받은 사법농단 판사들 국회 탄핵은 다를까
여당, 임성근 부장판사 사실상 탄핵 추진키로
2015년 12월1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보도한 혐의(명예훼손)로 기소됐다.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거짓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해야 성립한다. 재판부가 보기에 가토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은 없었고 해당 기사는 언론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할 영역에 속했다. 가토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이날 재판은 기묘했다. 재판장인 이동근 부장판사가 가토를 혼내는 데 상당 시간이 할애됐다.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를 만났다는 가토의 주장은 허위라고 짚으면서 “대통령을 조롱하고 한국을 희화화하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부득이하게 무죄를 선고한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가토는 벌 받듯이 3시간여 피고인석에 서 있었다. 앉아서 선고를 듣고 싶다는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토에 대해 ‘무죄로 단순히 끝내지 마라’
이 재판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1심 판결문에 드러난 뒷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언론 자유의 측면에서 (가토는) 무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모욕한 기사를 쓴 일본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건 대통령과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나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토 다쓰야에 대해 엄중한 질책이 필요합니다.”
2015년 11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건넨 말이다. 가토 사건은 박근혜 청와대의 관심 사건이었다. 재판에서 ‘7시간 의혹’이 허위라는 점을 천명하고 이를 보도한 일본 기자를 꾸짖는 액션을 취한다면, 청와대와의 관계 설정에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린 발언이었을 테다. 임 차장은 임성근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이하 임 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사수석부장판사는 법원장을 보좌해 형사재판과 관련한 행정을 총괄한다. 임 차장은 임 판사에게 재판에서 7시간 의혹의 허위성을 밝히고 가토를 훈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그대로 가토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에 하달됐다. 임 판사는 담당 재판장인 이동근 부장판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무죄를 선고해도 무죄라고 단순하게 끝내지 마라.” 임 판사는 ‘구술본 파일’을 전송받아 직접 ‘빨간펜’을 들었다. 구술본은 선고날 재판부가 법정에서 낭독하는 판결문 요약본을 말한다. 구술본 한글파일 곳곳에 삭제를 의미하는 취소선이 그어지거나 내용이 보충됐다. 부사 하나까지 꼼꼼히 살폈다. 임 판사는 그렇게 두 차례 구술본을 수정해 다시 재판부에 전송했다.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적인 존재인 이상, 대통령을 피해자로 하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함부로 인정하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 대통령이 피해자라고 해서 명예훼손죄를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쪽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서운해할 듯..) - 2015년 11월17일 ‘카토_말미(수정판).hwp’
피고인에게 피해자 박근혜 대통령이나 피해자 정윤회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이 단락에 카토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이로 인해 피해자의 명예가 결과적으로 훼손되었다는 점을 설시한 다음, 그렇지만 언론의 자유의 범위 내에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설명하는 게 좋겠습니다.] - 2015년 11월18일 ‘카토_말미(재수정판).hwp’
유·무죄가 달라진 건 아니다. 그러나 판결문 초고에서 ‘최고의 공적 존재인 대통령의 명예훼손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수정본에서는 ‘개인 박근혜의 명예훼손은 인정된다’는 논리로 수정됐다. 임 판사가 수정해 보낸 구술본에 근거해 판결문도 달라졌다. 이런 전후 상황은 법원행정처에 그대로 보고된다. ‘일국의 대통령에 대해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경솔하게 추측성 기사를 작성한 데에 대해 매서운 질타와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설명자료, 2015년 11월20일 문건) 1심 선고가 열리기 한 달 전에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이 문건이 예고한 대로 가토는 법정에서 혼쭐이 났다.
이뿐 아니다. ‘외교부 장관의 탄원서 제출 사실이 법정에서 고지될 수 있게 해달라’는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민원도 그대로 법정에서 실현됐다. 재판부는 법리상 가토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우호적 관계를 맺기 위해 가토를 매몰차게 혼내는 동시에,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한 외교부가 가토의 선처를 부탁한 사실을 알린다. 이날 재판은 청와대와 외교부의 바람이 반영된, 한 편의 잘 짜인 연극과 같았다.
위헌적 행위지만 권한 남용은 아니다?
2017년 2월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 같은 재판 개입 행태가 세상에 알려졌다. 임 판사는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한 2014년 2월~2016년 2월 가토 사건을 포함해 모두 세 건의 재판에 관여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됐다.
2020년 2월, 1심의 결론은 무죄. 이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는 임 판사가 한창 진행 중인 재판의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절차 진행에 간섭하는 등 재판에 관여했다며 이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법리상 형사처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직권남용이 성립하려면, 공무원(임성근 판사)이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 상대방(이동근 판사)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해야 한다. 재판부는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는 애초 재판에 관여할 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는 해당할지언정 권한남용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징계 사유가 될지언정 형사처벌 대상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징계는 제대로 됐을까.
헌법은 법관(대법원장, 대법관, 판사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 신분을 두텁게 보장한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지 않는 이상 파면되지 않고, 징계 처분 외 불리한 처분은 받지 않는다(제106조 1항). 법관의 양심과 소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임 판사에게 징계 처분이 내려지긴 했다. 2018년 10월 견책처분(서면으로 하는 훈계)을 받았다. 법관징계법이 정한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다. 일선 판사가 도박에 연루된 프로야구 선수의 약식명령 사건을 정식 공판에 회부하려 하자, 관련 절차를 보류시키고 해당 판사에게 “동료 판사 의견을 더 들어보라”고 말한 사건 1건만 징계 대상이 됐다. 가토 사건을 포함한 다른 두 건의 징계시효(징계 사유가 있는 날부터 3년)가 지난 탓이다.
그런데 그는 이 처분조차 부당하다며 징계 취소 소송을 냈다. 법관이 낸 징계 취소 소송은 대법원이 판단한다. 2018년 10월 사건이 접수된 이래 2년 넘게 대법원 특별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결론을 내지 않고 사건을 쥐고 있다. 대법원은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때늦은 징계, 줄줄이 무죄
‘사법농단’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과 판사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의혹을 통칭한다. 세 차례에 걸친 법원 내부 진상 조사와 징계, 그리고 8개월간 검찰 수사를 거쳤다. 그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 수백 건이 공개됐다. 문건에는 대법원 역점 사업을 추진하는 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재판을 거래 수단으로 삼아 개입하거나, 판사들의 개혁적 연구 모임을 와해하려 하거나, 헌법재판소의 내부 정보를 수집한 흔적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행태가 담겼다.
검찰은 사법부 이익을 위해 대법원장부터 일선 판사까지 가담한 조직적 범죄행위라 판단하고 임 판사를 포함해 전·현직 판사 14명을 기소했다. 각기 다른 사건으로, 따로 또 같이. 모두 7개 재판 가운데 진행 중인 재판(3건)을 제외하고 1심에서 줄줄이 무죄가 선고됐다.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직업윤리 위반이라면 징계는 제대로 받았을까. 법원행정처가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법원 내부 진상조사로 현재(2021년 1월)까지 판사 9명이 10건(정직 3건, 감봉 5건, 견책 2건)의 징계를 받았다. 최고가 정직 6개월이다. 징계 사유도 직무상 의무 위반이 아닌 판사의 품위 손상을 든 게 대부분이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비위가 의심된다고 법원에 통보한 판사가 66명에 이르는데, 검찰 수사를 이유로 차일피일 징계를 미루다 그중 32명은 징계시효가 지나버렸다. 나머지 34명에서 2019년 5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마지막으로 징계 청구한 10명은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심의가 중단됐다.
임 판사는 단죄의 공백을 틈타 법복을 벗는다. 재임용을 신청하지 않아 임기(10년) 만료로 2월 말 법원을 떠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로 개업해 새 출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법농단 ‘최초 저항자’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관 탄핵에 다시 불을 지핀 계기다.(18~19쪽 기사 참조)
사법부 내부 절차(징계)에 의해서는 법관 신분을 박탈할 수 없다. 그렇다고 헌법적 가치를 위반한 법관을 공직에서 배제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이 법관 탄핵이다. 탄핵 소추는 국회 고유 권한으로,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국회가 소추하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한다. 헌법재판을 열기 위해서는 일단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발의로, 과반수가 의결에 찬성해야 한다.
앞서 2018년 11월19일 전국 법원 대표들이 모인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국회에 사법농단 관여 법관들의 탄핵 소추를 촉구하는 데 뜻을 모았다. 법관 탄핵 소추권이 있는 국회가 제 할 일을 해달라고 에둘러 요청한 것이다. 가까스로 결의안이 통과됐다(참석 법관 105명 중 과반수인 53명 찬성, 43명 반대, 9명 기권).
국회의 오래된 직무유기
그러나 국회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그 결의를 두루뭉술 넘어가거나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법관 탄핵 소추를 즉각 논의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내 유야무야됐다. 2018년 11월28일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발언이다. “법관대표회의에서 국회에다가 탄핵 소추를 하는 것을 촉구하는 것은 법원 자체의 권한도 넘는 사항이다.”(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 “검찰에서 수사 결과가 발표되고 그 법관들을 하루속히 재판에서 배제해야 되겠다라고 하면 국회가 탄핵하면 되는 거다. 뭘 그걸 촉구를 하나?”(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
1월28일 더불어민주당은 임성근 판사에 대한 탄핵안 발의를 허용하기로 했다. 당론으로 탄핵을 채택한 것은 아니지만, 의원 개별 발의는 허용한다는 취지다. 침묵과 외면으로 2년여를 보낸 국회는 다시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이제 겨우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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