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왜 보편과 선별을 넘지 못하나

반기웅 기자 2021. 1. 3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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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부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저로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다. 고소득층에게도 동일하게 주는 것이 맞는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홍남기 경제부총리, 2020년 3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지난해 홍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보편지급을 반대했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홍 부총리는 경향신문 신년 인터뷰에서 “한정적인 재원을 감안한다면 보편지원보다 피해가 큰 계층에 더 많이 주는 선별지원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도 홍 부총리의 뜻과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4차 재난지원금을 두고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현시점에서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코로나19 경제 지원 방안은 손실보상제와 이익공유제다. 문 대통령은 1월 27일 세계경제포럼이 주최한 ‘2021 다보스 어젠다 한국정상 특별연설’ 화상회의에서 두 지원 방안에 대한 실행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끄는 손실보상제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최초 제안한 이익공유제 양쪽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 24일 오후 긴급재난지원금 사용가능 점포임을 알리는 알림판이 붙어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보편 vs 선별 2년째 이어지는 싸움

그런데 두 지원책 모두 당장 쓰기 어렵다. 손실 보상은 서둘러도 자영업자의 5월 종합소득신고 완료 이후에나 집행 가능하다. 그전에는 피해업종의 소득 매출 감소분을 파악하기 어렵다. 손실액 산정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지원 규모와 방법론에도 이견이 많아 조율해야 한다. ‘자발적 선의’에 기대는 이익공유제는 이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실효성 논란 속에 구체적인 로드맵도 나오지 않았다.

피해계층은 그사이 어떻게 버텨야 하나. 선별지급한 2·3차 재난지원금은 피해계층을 아우르지 못했다. 매출 상황과 영업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지급 방식으로 동일 업종 간에도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지원금액도 피해를 보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영업자를 비롯한 피해집단의 불만은 두고 보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권에서 4차 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낸 이유다. 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의원총회에서 ‘4차 재난지원금을 통한 피해보상은 당·정·청 협의사항’이라며 논의를 공식화했다.

그렇다면 4차 재난지원금은 어떻게 지급해야 할까. 정치권은 다시 ‘보편파’와 ‘선별파’로 나뉘어 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선후보들도 보편과 선별의 늪에서 싸움을 벌인다. 국민은 이 싸움을 1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번에도 보편지급을 주장한다. 4차 재난지원금 논의가 공식화되기 전이었던 지난 1월 4일 이 지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차 재난지원금을 넘어서는 규모의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며 지역화폐를 통한 보편지원을 국회와 기재부에 촉구했다. 이 지사의 제안에 당정이 난색을 표하자 이 지사는 다시 재난기본소득 카드를 꺼냈다. 2월 1일부터 경기도민은 1인당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받는다. 총예산은 1조4035억원이다. 이 지사가 ‘보편지급’ 포문을 열자 다른 지자체들도 재난지원금 지급에 나섰다. 지방정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이끌었던 지난해와 비슷한 모양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 지사의 반대편 ‘선별지급’에 서 있다. 지난 1월 19일에는 이 지사의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사회적 거리 두기 중에 소비하라고 말하는 것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손실보상을 강조하는 정세균 총리도 사실상 선별지급 쪽에 속한다. 정 총리는 지난 1월 7일 이 지사의 재난지원금 보편지급 촉구를 겨냥해 “더 이상 ‘더 풀자’와 ‘덜 풀자’와 같은 단세포적 논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대선후보 간 설전은 치열하지만, 자세히 보면 ‘보편’과 ‘선별’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차 재난지원금에 이르러서도 왜 논쟁은 보편과 선별에 머물러 있을까. 대안이 없기 때문일까.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정책을 처음으로 제안한 정치인은 김경수 경남도지사다. 김 지사는 지난해 3월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주장했다. 다만 ‘선별환수’라는 단서를 달았다. 당시 김 지사는 “전 국민에게 신속하게 먼저 지원하고 추후에 환수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 대상을 선별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공정성 시비를 줄일 수 있고 긴급한 재난지원이라는 취지도 살릴 수 있다”(2020년 4월 1일 경남 코로나 브리핑)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지사의 선별환수 아이디어는 차용되지 않았다. 2차와 3차, 4차 재난지원금 논쟁에서도 선별환수는 거론되지 않는다. 왜일까.

정세균 국무총리가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에 앞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재난의 정치화가 부른 부작용

‘지급’과 달리 ‘환수’는 정치인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주제다. 선명성이 떨어져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슈 선점 효과도 미미하다. 경남 재난지원금 정책을 설계한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경남은 보편지급과 선별환수를 동시에 제안했지만, 정치권과 언론 모두 보편지급에만 관심을 보였다. 여론 주목도가 떨어지는 의제여서 다른 대선주자들도 선별환수는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재난지원금 논쟁은 생산성이 없는 공방이어서 경남은 여기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이배 전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책의 정치화가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의 원인이라고 본다. 채 전 의원은 “선별환수는 ‘줬다 뺏는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는 것”이라며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합리적인 대안을 제안하고 설득과 논쟁을 통해 정책을 다듬어야 하는데 지금 정치권에서는 누구도 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은 선출직 정치인이 주도한 정책이다. 그동안 국내 정책은 관료가 설계하고 시민사회가 문제점을 지적하면 보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정책을 선도하는 선출직 정치인의 등장은 새로운 현상이다. 정책 입안 통로가 다양해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변화다. 선출직 정치인이 주도하는 정책은 필요한 시점에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이점도 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선출직 정치인이 주도한 정책들은 대체로 정책 베이스가 탄탄하지 못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방향을 정하고 바닥부터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대선캠프에서 아이디어 수준의 설익은 정책을 툭 던져 놓는 것이 고작”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토론 문화의 부재가 아쉽다. ‘어떤 정책이냐’가 아니라 ‘누구의 정책이냐’로 정책의 가치를 정하기 때문에 경쟁 정치인의 어젠다는 논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편도, 선별도 아닌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 연구위원은 “설 전후에 재난지원금을 보편지급하고 내년 연말정산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선별환수를 하는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며 “소득 수준과 소득세율 구간에 따라 소득계층별로 지급받은 지원금의 일정 비율을 소득세로 납부하도록 하는 방법이 이미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서둘러야 한다. 소득세법을 개정해 국가의 재정지출에 의한 지원을 증여가 아닌 소득 유형의 하나로 추가하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보편이냐 선별이냐를 두고 다툴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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