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초 켜져있던 횡단보도 신호등이 28세 꽃다운 생의 마지막 될 줄이야 [김기자와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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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신호등의 남은 시간이 1초씩 줄어드는 만큼, 횡단보도 건너는 이들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다.
정지선에 멈춰 섰던 차량도 운전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며 조금씩 엔진음을 더해갔다.
보행자 신호등의 초록불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던 유학생 쩡이린(曾以琳·당시 28세)씨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던 음주운전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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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쯤이야' 안일한 생각이 부른 비극
타국서 일구던 꿈 무법차량에 짓밟혀
고인 친구들 "엄벌해 달라" 기자회견
보행자 신호등의 남은 시간이 1초씩 줄어드는 만큼, 횡단보도 건너는 이들의 발걸음도 점점 빨라졌다. 정지선에 멈춰 섰던 차량도 운전자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며 조금씩 엔진음을 더해갔다. 마침내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고 운전자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자, 서 있던 차들은 앞을 향해 빠르게 달려 나갔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보행자 신호등의 초록불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던 유학생 쩡이린(曾以琳·당시 28세)씨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던 음주운전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일구던 꿈도 무법차량에 짓밟혔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발을 디딘 이곳은 일상을 채우던 횡단보도다. 늘 안심하고 건너던 길에서 끔찍한 사고를 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쩡이린씨의 사연을 다룬 한 시사프로그램이 지난해 공개한 사고 당시 도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횡단보도를 반 이상 건너온 그를 보고서도 달려드는 차량이 담겼다. 50대인 가해 운전자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죄로 재판에 넘겨져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는 음주운전을 강하게 처벌하라는 쩡이린씨 지인들의 슬픔에 찬 기자회견이 있었다.
쩡이린씨의 친구인 박선규씨가 대독한 입장문에서 고인의 부모는 “음주운전 엄벌이 이뤄지도록 정부 기관 등에 청원을 해 달라”고 한국인들에게 호소했다. 타국에 보낸 딸이 음주운전에 사망했다는 큰 충격을 눈물로 삼키며,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도와달라는 간절한 메시지였다.
쩡이린씨의 부모는 정부를 향한 이 같은 움직임이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까지도 불의의 사고에서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음주운전에 소중한 사람 잃는 것을 막고 나아가 강력한 처벌로 비극의 반복도 방지한다면, 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게 부모의 전언이었다.
매년 조금씩 음주운전 사고 건수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운전자와 보행자를 합쳐 음주운전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해마다 수백명이라는 점이 누군가는 음주운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30일 도로교통공단의 TAAS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총 2만4399건이었던 음주운전 사고는 △1만9769건(2016년) △1만9517건(2017년) △1만9381건(2018년) △1만5708건(2019년)으로 매년 소폭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음주운전에 따른 사망자도 2015년 583명에서 줄어 2019년에는 절반 수준인 295명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사고 건수와 사망자 감소를 사회의 경각심이 고취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음주운전으로 여전히 누군가는 가족이 있는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는 뜻이어서다. 우리는 이를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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