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이 던지는 5가지 '불확실성' 경고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국내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빠르면 설 연휴 직후인 2월말께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해 9월까지 국민의 70%를 대상으로 1차 접종을 마치고, 11월에는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의 계획이다. 이 계획대로 진행해 내년 전반기에는 마스크를 벗는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정작 의료 현장에선 기대감보다 긴장감이 더 감돈다. 인류 최초로 시행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따른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접종 기간이 9개월 이상으로 길다는 점, 백신 공급 시기가 불투명한 점, 사망 등 부작용 발생으로 백신 접종 거부 분위기가 생기는 점, 백신의 효과가 얼마나 유지될지 불분명한 점, 백신 접종 후 국민의 방역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지는 점, 어떤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할지 모르는 점 등 수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의료계에서는 백신 확보에 돈은 돈대로 쓰고 집단면역 형성에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국민의 70% 접종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국민의 70%에서 중화항체가 생기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집단면역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실상 국민 모두가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얘기다. 앞으로 9개월 동안 전 국민을 접종하려면, 2차 접종까지 계산할 때 하루 약 40만 도즈를 접종해야 한다. 접종 장소나 의료 인력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또 백신 접종 후 느슨해질 수 있는 방역에 대한 경각심을 떨어뜨리지 않을 방법도 준비해야 한다. 마스크를 벗는 순간 집단감염은 다시 발생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은 다양한 불확실성에 대비하지 않아 집단면역 형성에 실패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요한 물량이 제때 공급될지부터 불확실
기존 방역에다 백신 접종까지 겹치면 의료 현장에서 갖가지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이에 대해 방역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월25일 브리핑에서 "예방접종을 하더라도 백신으로 인한 항체 지속 기간이 얼마 정도 될 것인지, 백신의 효과가 어느 정도 달성될 것인지, 또 요즘 화두가 되는 '변이 바이러스'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 불확실성이 상당수 있다. 이 때문에 예방접종을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하더라도 마스크나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방역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의료 전문가들이 지적한 백신 접종 관련 불확실성을 크게 5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불확실성은 백신 접종 자체의 문제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집단면역을 형성하는 것이 목표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동시에 백신을 접종해야 빠르게 집단면역이 생긴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 자체가 불확실성이다. 무엇보다 백신 공급량이나 공급 속도가 적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월27일 기준 우리 정부가 확보한 백신 물량은 5600만 명분이다. 추가로 2000만 명분의 노바백스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협상 중이다. 일단 수치상으로는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필요한 백신양이 적절한 시기에 공급될 수 있느냐다. 백신이 한 번에 다 들어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는 백신이 조금씩 나눠서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백신 공급 날짜도 확실하게 정해진 바 없다.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를 살펴보면, 백신 공급량이 부족해 접종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통계 사이트(ourworldindata)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의 백신 접종률은 각각 10%대와 7%대다. 화이자는 벨기에 생산공장을 증설하기 위해 백신 생산을 잠시 중단했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공급도 유럽 등지에서 원활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국내에서 생산하므로 이 백신의 국내 공급(1000만 명분)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물량이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전부 공급될지는 미지수다. 김 교수는 "확보한 백신이 우리의 기대처럼 2~3분기에 전부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도·브라질 등에 백신의 하청생산을 맡겼다. 우리가 아스트라제네카와 맺은 계약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구체적인 것은 모르겠지만, 이 백신의 상당 부분은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경제력이 약한 국가에 공급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백신이라고 우리에게 먼저 공급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집단면역 형성에는 백신 효과의 유지 기간도 영향을 미친다. 11월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2월말과 3월말 두 차례 백신을 맞은 후 그때까지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가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아직 백신의 중화항체 유지 기간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백신 효과가 3~4개월이라는 연구 결과뿐이다. 2월에 백신을 접종한 후 중화항체 효력은 꾸준히 줄어들다가 11월에는 거의 사라질 수 있다. 1분기에 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3분기 이후 다시 접종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와 관련할.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두 번째는 교차 접종의 불확실성이다. 교차 접종이란 첫 번째 맞는 백신과 두 번째 맞는 백신의 종류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1차 접종은 아스트라제네카(바이러스 벡터 방식)로 하고 2차 접종은 화이자(리보핵산 방식)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종류가 다른 백신을 접종했을 때의 효과나 안전성에 대해 의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어 의료 전문가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효과 낮은 백신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문제
김 교수는 "정부가 5가지 종류의 백신을 확보했다. 3가지 정도가 적당한데 그보다 종류가 많으면 의료 현장에서는 교차 접종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차 접종의 안전성과 효과는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동일 백신을 맞도록 2차 접종분을 비축해야 한다. 또 5가지 백신은 보관 온도가 제각각이어서 의료 현장에서 이들 백신을 보관하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1월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월 중 국내에 도입될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백신 공동구매·배분 연합체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백신 등 2종으로 추려진다.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한 백신의 경우 국내 공급 종류가 발표되지 않았으나 화이자 백신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2분기에는 모더나·얀센·노바백스 백신 등이 공급될 예정이다. 이 교수는 "백신의 수급을 조절하면서 2차 접종을 무사히 마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2월에는 의료진 등 일부에게만 상징적으로 접종하고 일반 국민에 대해서는 백신을 충분히 확보한 후에 제대로 접종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세 번째 불확실성은 접종 거부 현상이다. 백신에 의한 부작용이 심각하거나 효과가 좋은 백신만 맞으려는 분위기가 생기면 접종을 거부하는 국민이 늘어날 수 있다. 어떤 백신이나 가벼운 부작용은 있고 개인에 따라서는 사망할 수도 있다. 만일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증가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면 국민은 백신 접종을 꺼리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독감 백신의 상온 노출 사태가 발생하면서 독감 백신 접종률이 전년보다 9%포인트 낮은 71%로 집계됐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을 요양원에 있는 고령자부터 접종할 텐데 일부에서는 사망 등 다양한 부작용 사례가 나올 것이다. 이로 인한 백신 접종 기피 분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효과는 90% 이상이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효과는 약 70%다. 의료 전문가는 아직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얀센과 노바백스 백신의 효과는 90%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처럼 백신 종류에 따라 효과가 들쭉날쭉이다. 되도록 효과가 좋은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교수는 "백신 종류와 상관없이 접종받으면 가장 좋겠지만, 효과가 좋은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맞겠다며 효과가 비교적 떨어지는 다른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이미 의사들 사이에서도 있는데 일반인들은 더 심할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스크 벗으려는 심리적 이완에도 대비해야
네 번째 불확실성은 심리적 이완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방역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교수는 "백신 접종을 계속하는데도 영국과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처럼 국민 사이에 심리적 이완 상태가 커지면 방역 당국의 상황 통제가 어렵게 된다. 사회적 보상제를 실행해 생계 압박에 몰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한다. 이들을 포함한 국민이 정부의 방역 지침을 거부하기 시작하면 집단면역 형성은 어렵다"고 말했다.
집단면역의 대척점에는 집단감염이 있다. 집단감염이 커질수록 집단면역 형성은 어려워진다. 따라서 집단감염을 막는 노력은 백신 접종과 무관하게 지속해야 한다는 게 의료 전문가의 시각이다. 김 교수는 "병원과 보건소 등 의료 현장은 올해가 지난해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한다. 기존의 방역, 검사, 치료에다 백신 접종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신을 접종하면 올해 중반 중환자와 사망자 발생은 감소하겠지만 국민의 방역에 대한 경각심은 떨어져 언제든지 집단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아 코로나19 유행이 꺾이기 시작하면 백신을 맞지 않고 무임승차하려는 심리도 생긴다. 실제로 신종 플루 유행 당시에 후반으로 갈수록 백신 접종률이 떨어졌다. 따라서 마스크 착용이나 거리 두기와 같은 방역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미리 계획을 짜야 한다. 백신 접종률을 높게 유지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섯 번째는 바이러스의 변이다. 영국·브라질·남아공 등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해 백신 효과가 무력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에 대해 미국 바이오 기업 모더나는 자사 백신이 영국과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모더나 백신을 2차례 접종해 면역이 생긴 혈액 샘플로 실험한 결과 각각의 변이 바이러스를 무력화할 만한 중화항체가 생성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에는 중화항체의 양이 6분의 1로 감소해 면역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더나와 공동 실험을 진행한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의 앤서니 파우치 소장은 기존 백신의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백신이 듣지 않는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맞게 백신을 계속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빠른 백신 접종이 바이러스 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의학적 견해도 보고됐다. 백신 접종률이 46%인 이스라엘의 국가정보지식센터는 1월24일 자국에서 백신에 의한 면역 반응을 회피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백신에 내성을 가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영국이 우려된다. 코로나19 확산이 거센 가운데 백신 접종을 하다 보면 백신에 적응한 변이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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