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 사유재산제 허무는 정권과 싸우다 지쳤다"
이 중에서 관심을 끈 것은 김태규(54·사법연수원 28기)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의 사표 소식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법원 내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법조계 안팎의 주요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사법부의 정치화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비판적 메시지를 던져온 그는 왜 사표를 썼을까.
주말을 맞아 서울에 온 그를 만났다. 언론에 보도된 그의 언어가 다소 거칠다고 느꼈는데 실제 만나본 그는 부드럽고 유쾌했다. 판사 일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강해 보였지만 최근 3년여 동안 법과 원칙을 허무는 사람들과의 싸움에 많은 에너지를 쏟은 듯 마음이 지친 것 같았다.
‘시골판사'가 '정치판사'로?
김 부장판사는 정권 초반 여권의 사법개혁을 '사법부에 대한 겁박'이라고 표현하면서 대(對)정부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2018년 11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판사를 탄핵하자는 안건을 의결했을 때는 "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하라"고 주장했다.이어 대북전단 살포 금지나 5·18 역사왜곡처벌법 등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밝혀 반대파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재판장 이름을 딴 이른바 '박형순 금지법'에 대해서도 "위헌적 시도이자 판사 겁주기"라고 했으며,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에 대해서는 '미친 짓'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는 자신을 '시골판사'라고 자주 말했다.
-시골판사가 어쩌다 '정치판사'(웃음)가 됐나.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각종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심리적 영향을 받지 않겠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나 사법농단, 국정농단,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나오면 판사 이전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당연히 관심이 생기지.
그런데 처리 과정이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이라면 누구도 문제 삼을 수 없지만, 적법한 절차와 법률, 법 원리를 훼손했다면 내 사건이 아니더라도 판사로서 당연히 의구심이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때까지만 해도 현 정부의 사법개혁을 제3자적 관점에서 보던 그는 '더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된 결정적 사건과 맞닥뜨린다. 2018년 1월 무렵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하겠다며 판사들의 개인용 컴퓨터(PC)를 영장 없이 열어보겠다고 하면서부터였다. 판사들에게 지급된 PC는 국가에서 준 게 맞지만 거기에는 업무 외 사적인 e메일도 있고 개인적인 메모도 있다. 그걸 강제로 영장도 없이 열겠다는 게 말이 되나.
내 PC가 확인 대상은 아니었지만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일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한테도 물어봤지만 다들 수긍을 못 하더라. 더구나 여기는 법원이다. 법원 안에서 법이 무너지면 일반 시민은 도대체 어디에 기대야 하나라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그는 며칠 후 새벽에 일어나 당사자 동의 없는 PC 확인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 문제를 조목조목 짚은 글을 쓴 뒤 아침이 되자마자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법원 안에서 법이 무너졌다"
-당시 글로 법원 내부가 술렁였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그 어떤 기관보다 엄격하고 신중하게 법을 지켜야 할 법원이 '영장주의'라는 형사법 대원칙을 어겼다. 나는 그전까지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댓글 한 번 단 적 없고 페이스북도 잘 안 했다. 그런데 그때는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 결국 글을 올렸다."
-당시 법원 내 반응은 어땠나.
"전국 법관이 3000명가량 되는데 조회수가 1000건을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회수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댓글 중에는 '판사 PC는 개인 것이 아니다, 업무 관련성이 있으면 영장 없이 열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반박도 있었다.
어떻든 침묵하는 것보다 말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또 내 주장이 바로 기사화되면서 나중에는 형식적으로라도 PC 확인 시 판사들의 최종 동의를 받는 식으로 바뀐 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떠들다 묻혀버리면 속앓이만 하다 마는데, 그래도 반향이 있으니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장 없는 PC 확인은 모든 판사가 분노할 사안으로 보이는데, 당시 김 판사 외 2명의 부장판사만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당시는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겉으로는 다들 입을 닫는 분위기였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당신 말이 맞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선배 변호사까지 '영장 없이 확인한 PC 내용이 증거 능력이 있느냐'고 물어왔을 정도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옳다, 그르다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처음엔 게시판에 올리다 페이스북에 쓰기 시작했는데.
"내부 게시판이 법원 공간이라 내 의견을 마음대로 올리는 것이 공간에 대한 실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은 내 개인 공간이니 읽기 싫은 사람은 안 보면 되니까.
페이스북을 하면서 나 나름으로 세운 기준은 철저하게 법률적 이슈만 다루자는 거였다. 법을 침해하고 훼손하는 사람들이 현재 권력을 쥐고 있다 보니 그들에게 데미지(damage)를 입히자는 목적으로 내 행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그들의 해석이다.
내가 쓴 글에는 대통령은 물론, 장관 이름도 없다. 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법치를 훼손하는 말이나 상황을 지적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조국 아내 정경심 씨가 컴퓨터를 반출한 것은 증거 보존'이라고 했을 때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는데, 글에 '유시민'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사회 저명인사가 국민이 법을 우습게 여길 수 있는 발언을 그렇게 스스럼없이 하면 사법기관을 뭐로 보겠나', 줄곧 이걸 말하고 싶었던 거다."
-어떻든 현직 판사가 정부 비판을 공개적으로 했으니 마음고생이 컸을 것 같은데.
"점점 나를 피하는 기색이 역력해 심리적으로 고립됐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저 존재감 없던 사람이 왜 떠드나' 하는 게 느껴졌다. 분명히 나와 친한 후배였는데 인사하면 잘 안 받아준다거나, 같이 밥 먹는 것도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떨 땐 나 혼자만 정신 나간 사람이 되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분명히 느껴졌다. 아내를 비롯해 지지해주는 가족과 정말 친한 소수의 사람이 있었기에 심리적 안정을 가질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 면전에서 공격하는 경우는 없었나.
"한 번도 없었다. 판사가 기본적으로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고, 섣부르게 말하는 사람들도 아니라서 그게 어떤 면에서는 숨 쉴 공간이 됐다. 친한 후배가 이런 농담을 한 경우는 있었다. '형이 대구(지법) 갔다 오더니 이상해졌다는 말이 있더라'(웃음). 한마디로 보수 꼴통이라는 거였다."
-법원 내에서 페이스북 글에 대한 통제는 없었나.
"없었다."
-결과적으로 판사,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허문 것은 아닌가.
"스스로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나 법원 안에 법을 이상하게 왜곡하고 법이 아닌 걸 법이라고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고, 심지어 그렇게 하는 사람이 추앙받고 칭송받는 분위기가 돼 가는데, 내 말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는 건 비겁하다고 느껴졌다."
자유와 시장경제를 허무는 사람들
-이번 정권의 문제는 이념인가."그분들이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타난 결과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된다. 이를테면 대북전단 살포 금지나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정말 말이 안 된다. 내가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헌법적 가치는 자유주의, 개인주의, 시장경제다. 자유의 가장 근본이 표현의 자유다.
개인주의도 대통령 지지자끼리 집단을 이뤄 공격하는 게 만연해 위협받고 있다. 가장 심하게 피부로 느끼는 문제가 사유재산에 대한 본질적 부정이다. 토지공유제, 이익공유제, 토지거래허가제, 이제 주택거래허가제에 1가구 1주택까지 하려 한다. 여기에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70~80%까지 한다는 게 시장 질서인가.
집단이 나서서 이렇게 시장 질서를 깨는 사유재산 침해를 너무나 쉽게 하고 있다. '시장 실패'에 대한 보완책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이건 보완이 아니라 주객이 바뀌는 거다. 계획경제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런 것들이 체재 부정으로 읽힌다. 아무리 자신들이 선(善)이고 필요한 정책이라 해도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을 이렇게까지 허물고 헌법 기본 질서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김학의 불법 출금'을 접할 때는 정말 미쳤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는 법원 내 판사들의 집단 행동조직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했다.
"옛날에는 우리법연구회, 지금은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됐는데 당사자들은 우리법연구회 후신이 아니라고 하지만 일반인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명단 공개를 안 해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법관 상당수, 즉 10%가 넘어가는 약 300명에 달하는 사람이 회원인 것으로 안다.
그 많은 사람이 뭉쳐서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을 하고, 법원 내에서 주요 보직을 담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사정권 때 군대에 '하나회'라는 게 있지 않았나. 그건 공식 조직도 아닌 사조직이었다. 그것조차 문제가 돼 허용이 안 됐는데 지금은 법원 안에서 학회라는 명목으로 조직을 만들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요직을 차지한다. '옹위'라는 말이 뭣하지만 대법원장을 추대하고 대법원장이 그런 조직을 놔두는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니 국민이 재판을 할 때 '저 판사 성향이 뭐냐, 인권법연구회 소속이냐' 물어보는 걸 이상하다고 할 수 있겠나. 판사 성향에 따라 자기 생계, 생존이 갈리는 데 말이다. 매우 슬프고 무서운 현실이다.
이제 학회는 형식적으로라도 스스로 해체해야 한다. 원하는 건 다 이뤄지지 않았나. 정권이 비호하고 있고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이 대법원장이 됐고 법관 추천제, 사법행정위원회 등도 만들었고 중요 보직에 다들 들어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미워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감옥에 보냈고, 그렇게 미워하던 고법 부장들도 다 나가고 있지 않나. 그러면 이제 해체하고 중립을 찾는 것이 법관으로서 직업적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 정부 들어 이른바 사법농단, 적폐청산으로 조사받은 판사들의 억울한 상황을 정말 많이 봤다"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아는 친한 판사는 행정처에서 한 메모 하나 때문에 대기발령을 받고 일을 안 줘 못 했다. 정말 똑똑한 데다 법리에 밝고 성격도 좋은 완벽한 사람이었는데, 공격의 칼날을 보니 죽어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文 정부 비판하다 사표 쓴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②로 이어집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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