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이은주 자란 대표 "많은 사람과 나눠 갖는 공동체가 꿈"

김낙희 기자 2021. 1. 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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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에 교편, 서른 즈음 해외 봉사 나섰다가 요양 차 귀촌
할머니들 농산물 사서 팔다 2년 만에 월 5천만원 매출 신장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이은주 자란 대표가 귀농 초기 수확한 깻잎을 들고 있다.(자란 제공)© 뉴스1

(보령=뉴스1) 김낙희 기자 = “함께 농사를 짓고 생산도 하고 유통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제가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직원을 많이 뽑아서 나눠 갖는 공동체를 만드는게 제 꿈입니다”

충남 보령시 죽정동에 있는 ‘자란(통신판매업)’ 이은주 대표(42세)가 밝힌 당찬 포부다.

이 대표는 2018년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 주관 청년창업농에 선정된 뒤 농업경영체 등록을 마치며 농부의 길로 뛰어들었다.

통신판매업만 가지고는 생활이 어려웠던 그가 선택한 게 청년창업농 공모였다. 포털을 통해 우연히 관련 기사를 본 게 기회가 된 경우다.

그는 “교육과 농업 융복합에 관한 사업계획서를 기획해 냈었다”며 “이게 선정되면서 매달 100만원의 영농정착지원금을 받은 게 현재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직접 생산했거나 지역주민들의 농산물을 가공해 판매하는 자란은 현재 SNS를 통해 많게는 월 5000만원, 적게는 월 2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규모로 성장했다. 직원도 5명으로 불어났다.

직원들은 그가 전북 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할 때 인연을 맺은 제자이거나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농업경영체도 지난해 3000평을 더 사들여 올해부터는 총 4000여 평의 노지에서 자란의 주력 상품인 작두콩의 생산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은주 자란 대표가 교사 재직 당시 제자들과 함께 서 있다.(자란 제공)© 뉴스1

◇교사→봉사활동→귀촌→귀농

이은주 대표는 대학교 입학을 위해 전북 전주로 떠났다가 대학 졸업 뒤 24살이 되던 무렵 같은 곳에서 선망의 대상인 교편을 잡았다. 그러곤 서른 즈음 사표를 냈다.

그는 “국어 교사로 남고에서 5년, 여고에서 2년 가르쳤는데,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된 서른 즈음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 보고 싶어서 결정했다”며 “어떤 아이들에게는 교육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교육 관련 봉사단체에 속한 채 해외로 떠난 그는 신념대로 이집트, 키르키스스탄, 중국, 몽골 등을 거치면서 오지에 학교를 세우는 활동에 참여하거나 주로 아이들의 교과 과정을 짜는 데 집중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암초를 만나게 된다. 큰 병에 걸리고서부터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고 부모님과 자신의 고향인 보령 남포면으로 귀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의 나이 서른 후반에 접어들 때다.

그는 “부모님 옆에서 요양 기간 만난 동네 할머니들이 길거리에 앉아 작은 농산물을 놓고 제값도 못 받고 파는 모습을 보고 결정했다”면서 “그 농산물을 제값보다 더 쳐주고 산 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조금씩 포장을 해서 SNS 등을 통해 판 게 사업과 귀농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대표가 직접 키워 수확한 작두콩.(자란 제공)© 뉴스1

◇귀농 작목 작두콩 선택…"땅도 쉬고 사람도 쉬고"

“교사를 그만두는 큰 모험을 해 봤기에 이제는 삶에 또 큰 리스크를 줘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작두콩을 선택했다”

이은주 대표의 말처럼 작두콩은 다른 작목보다 전문 농업기술이 없어도 되는 데다 늦은 봄부터 파종을 해 겨울 전 수확할 수 있어 비교적 휴경기가 길다. 결국 땅도 쉬고 사람도 쉬기 위한 취지였다.

휴경기에는 작은 가공시설을 갖춘 사무실에 머물며 팔로워 1만명이 모인 SNS를 통해 주문받은 제품을 3~4일간 정성껏 준비해 고객에 보내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그는 “보통 택배를 어제 주문하면 오늘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인데, 우리는 한 일주일 기다려야 한다. 건강을 위한 기다림이 필요한 브랜드”라고 자랑했다.

국어 교사였던 덕에 제품 표지와 SNS를 채울 글이 풍부한 데다 나머지 직원들도 사진과 영상 전문가, 디자이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자란이 현재 판매하는 쌀, 잡곡, 곡물(작두콩)차 등 모든 제품은 3분의 2 이상을 보령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채워진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정말 도와드릴 마음으로 다가가도 순수성을 믿어 주지 않았다”며 “어르신들에겐 결과물을 보여야 하는데, 그 시간을 견디는 게 제일 어려웠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는 기회의 시간…공유주방 계획

이은주 대표는 사업과 귀농 초기 당시 자본이 부족한 탓에 오프라인 매장을 낼 수 없는 형편에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게 인터넷 홈페이지와 SNS를 통한 판로였다고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SNS로 집중된 판매는 팔로워 2000명, 5000명, 7000명, 1만명을 넘어설 때마다 매출도 동반 상승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는 오히려 날개를 달아줬다. 그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집에서 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쌀, 잡곡은 물론이고 곡물차까지 판매가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이 기간 3000평의 땅을 사들이고 번듯한 사무실도 마련한 데다 전문성을 갖춘 직원도 더 채용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당장 공유주방 관련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다고 한다. 2018년 청년창업농 공모 당시 농정원에 낸 사업계획서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공유주방에 대해 “주부들이 자기가 가진 재주로 예쁘게 물건을 팔 수 있도록 브랜딩을 돕고 레시피 연구도 돕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충청남도 지역에 있는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협업도 하고, 이제는 처음에 교사를 그만두고 해외로 나갈 때처럼 의미 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kluck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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