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 없는 수사' 이상 좇는 공수처 "현실은 수사 혼선 불보듯"
'수사경험 부족' 한계 극복 못해 역효과 우려
"공수처, 정치적 민감 사안 줄이는 게 차선책"
문재인 대통령이 여운국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 임명안을 29일 재가하면서, 법조계에선 '1기 공수처가 수사성과보다는 잡음을 최소화하는데 방점을 찍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무리한 수사 및 정치적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신호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수사 과정에서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절제된 수사를 하겠다는 의도와는 다르게 맥락을 못 잡고 거친 수사가 진행되거나 '봐주기'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처장 차장 인선 '중립성·절제미' 고려했지만…
잡음 최소화 의도가 가장 많이 읽히는 부분은 처장과 차장 인선이다. 공수처 '넘버 1·2' 모두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하다'는 평가를 듣는 판사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편향성 우려를 불식시키고 수사보다는 유·무죄 판단에 익숙한 인물을 임명해 '확실한 기소, 안전한 불기소'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운영방안에 대한 김진욱 처장의 최근 발언에서도 비슷한 태도가 엿보인다. 최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와 같은 견제기구를 설치하겠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김 처장은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의 공수처 이첩 여부에 대해서도 유보적 입장을 밝히는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이날 역시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이첩 여부에 대해 "검토하겠다"고만 말했다.
과잉 수사나 편파 수사 등 검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신중한 태도로 보이지만, 김 처장 의도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다.
'수사 경험 부족' 한계 극복 어려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우려가 나오는 이유로 "이상적인 방향만 생각하고 수사 실무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장 많이 나오는 지적은 '판사 출신 처장과 차장의 수사 경험 부족' 부분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후에 증거를 수집해 적법성을 판단하는 작업과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수사는 전혀 다른 분야"라며 "특검에서도 수사실무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 조사하고도 이것저것 재다가 조서 작성에 미숙함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해, 전날에 이어 이날도 "검찰 출신으로 최대 12명을 채울 수 있는데, 공수처 부장검사의 경우 검사장급이 지원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적 대안인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단 검사장급 인사가 공수처 부장검사에 지원할 유인이 거의 없다는 게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일선 검찰청의 한 간부는 "검찰 고위급 출신이 지원한다고 해도 예전 수사방식에 익숙해 수사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며 "공수처 수사관들이 실질적 수사를 모두 떠맡는 구조가 될 게 뻔하다"라고 내다봤다.
공수처가 성과를 내놓지 못하거나 오히려 성과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성급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악순환이 반복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맡게 됐을 때 "현 정권에 '봐주기 수사'를 했다"거나 "무리하게 '청부 수사'를 했다"는 의심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수부 출신의 전직 검찰 간부는 "수사를 안 해도 욕 먹고 수사를 의욕적으로 해도 각종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전했다.
수사력 저하, '통제 불능' 사태로 이어질수도
수사력 저하 우려는 '공수처가 사건 당사자들에게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특히 고소·고발과 진정 사건들을 주로 처리해야 하는 공수처 특성상 중심을 못 잡으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또 다른 일선 검찰 간부는 "공수처는 압도적인 여론의 공감대가 형성돼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수사를 하는 특검과는 여건이 다르다"며 "수사와 언론 공보 등의 경험이 부족하면 잔실수로 각종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진욱 처장이 언급한 수사심의위원회 등 견제 장치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공수처 수사력에 문제가 생기면 수사심의위원회가 견제 기구보다는 판단의 책임을 떠넘기는 통로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심의 과정이 견제 수단이 아니라 정치적 여론 대결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1기 공수처는 제도 안착에 목표를 둬야할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전문성 있는 검사들을 뽑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최소화하는 게 논란을 줄일 수 있는 차선책"이라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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