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널 낳은 게 전부라 미안해" 베이비박스 속 눈물의 편지들

김지은 2021. 1.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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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엄마] <2>베이비박스의 엄마들
<베이비박스에서 보낸 3일> ③편지 속 친모들
친모들의 육필 편지 1,800통 속 모정
“죄인인 엄마지만, 널 힘들게 지켰어”
“미안해” “사랑해” “행복하기를”. 제 속으로 낳은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두며 생모들은 편지를 남긴다. 주사랑공동체가 보관 중인 편지 1,800여 통 중 일부를 모았다. 엄마의 육필엔 죄책감과 눈물, 사랑이 뒤섞여 있다. 신생아 발 도장이 찍힌 산모수첩도 눈에 띄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아기를 두고 가며 생모(생부)들이 남기는 것이 있다. 편지다. 하다못해 태어난 시각과 예방접종 여부라도 쪽지에 적어둔다.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하는 위기영아 긴급보호센터인 베이비박스에는 그들의 편지 1,800여 통이 고스란히 보관돼있다.

친모들은 스스로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편지에서 일컫는다. 그래서 편지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미안하다”는 문구다. 임신에 이르게 된 책임, 아이를 낳고도 기르지 않고 버렸다는 죄의식이 평생 그들을 괴롭힐지 모른다. 외도와 같은 혼외 관계로 출산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생부나 생모는 지탄을 피하기 어렵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몫이기에 생부들은 생모의 뒤에 숨어 죄를 가릴 뿐이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사무국장은 “친생부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례도 있지만, 1% 안팎으로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생부마저 외면해 결국 생모가 베이비박스까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세상에 나온 불쌍한 내 아기”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에 꾹꾹 눌러 쓴 엄마의 육필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아직 세상은 아무도 이 아이를 모릅니다. 병원에도 데려가지 못했어요. △△△△년 △△월 △△일 △△시쯤 태어난 제 천사입니다. 못난 엄마 때문에 조그만 화장실에서 세상을 봐야만 했던 아이입니다. 젖을 물리는 법도 몰라 초유도 먹이지 못했어요.”

‘세상 누구도 모르는 아이’라고 쓸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단칸방 화장실에서 혼자 생살을 찢는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고도 그에겐 죄책감뿐이다.

“제가 일을 가면 혼자 굶으면서 울고만 있을 아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어 누구보다 예쁘고 소중한 제 자식을 보냅니다. 아이가 열세 시간이나 배를 곯은 적이 있어 건강이 너무나 걱정돼요. 태몽은 □□였어요. 부디 사랑 많이 받는 아이로 키워주세요. 아이가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자신 역시 세상에 혈혈단신 혼자였던 엄마들. 그들은 인터넷을 뒤지고, 며칠을 고민하다 베이비박스로 왔다.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어요.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너무 걱정이 되어 울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우는 건 아기에게 못 할 짓이란 생각에 열 달을 품고 살았어요.”

◇청소년모의 눈물 “내 부모가 없어 입양도 못 보내요”

주사랑공동체는 생모들이 남긴 편지들에 일련 번호를 매기고 파일에 넣어 보관한다. 엄마가 아이를 다시 데려가지 못하는 경우엔 유일하게 남는 모자 인연의 흔적이다. 본보 김지은 기자가 편지를 읽어보고 있다. 이한호 기자

미성년의 엄마는 아이를 입양조차 보내지 못하는 게 애달파 또 운다.

“저는 어머니, 아버지도 없어서 부모의 입양 동의도 받지 못해요.” 비혼 상태에서 청소년모가 아이를 낳으면 출생신고를 하고 자신의 부모 동의까지 받아야 자녀를 입양 보낼 수 있다. 친모가 성인이더라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면 입양특례법상 입양은 불가능하다. 2020년을 기준으로,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 137명 중 65%가 그래서 보육원 등 아동복지시설로 가야 했다.

연습장이나 메모지, 심지어 광고지나 참고서를 찢어 여백에 비뚤비뚤 쓴 글씨들에선 갈급한 마음이 느껴진다.

“□□월 □시 (태어난) ○○입니다. 미혼모에다 쫓기는 처지라 이렇게 부탁드려요… 염치없이 의탁합니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이를 맡깁니다. 열심히 일해서 꼭 데리러 올게요. 제발 다른 곳으로 보내지 말아 주세요.”

“1년 안에 자립해서 꼭 찾으러 오겠습니다. 뼈가 부서져라 일을 할 거예요. 꼭 1년 후에 찾아올게요. 정말 전 인간이 아니라 악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에게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반드시 데려온다는 생각만 갖고 살게요. 부디 그동안 사랑으로 돌봐주세요.”


◇성폭력 당해 강제로 엄마가 된 사람들

베이비박스의 상담사들은 아기를 데리고 오는 생모나 생부 대부분을 만나 상담을 한다. 경제적인 사정이 어렵다면 물품과 현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 직접 양육하도록 돕는다. 그래픽 강준구

아이의 생부에게라도 의지할 수 있었다면, 베이비박스를 찾지는 않았을 테다.

“임신 6개월쯤 되니 남자 친구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폭력도 행사했어요. 자살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차마 그러지 못했어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아이에게 미안해서요. 제겐 희망이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이 아빠와 헤어졌습니다. 혼자서라도 키우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친정이란 것이 없는 제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요. 극도의 우울함과 불안함 속에서 50일을 버텼어요. 아이를 붙잡고 있는 게 더 못 할 짓인 것 같아요.”

“아이 아빠가 무책임하게도 저를 떠나버렸어요. 도저히 혼자서는 아이를 양육할 수가 없습니다.”

“이별하고 나서 임신인 걸 알았어요. 남편을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남편이 정말로 원망스러워요. 모든 것이 내 잘못입니다.”

“사실혼 관계로 1년 넘게 산 아이 아빠에게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어요. 제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이었어요. 그런데도 사과도 하지 않고 당당합니다. 빚까지 짊어진 채 혼자서 월세방에서 아이를 키울 일이 너무나 막막합니다.”

성폭력 피해로 가진 아이를 낳아온 엄마들의 정신적 고통은 더 극심하다.

“성폭행범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임신 사실을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지냈어요. 죽음의 문턱까지도 갔지만, 아이는 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제발 이 아이에게 도움을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집단 강간으로 아이를 낳은 미성년자입니다. 부모님이 혹시라도 아실까 봐 먹지도, 자지도 못했어요. 제 영양실조 때문인지 아기도 기형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어 이곳으로 데려왔어요.”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지만 생명인지라 지우지 못했어요. 탯줄을 안쪽에 넣습니다. 제발 절 찾지 말아 주세요.”


◇“하루 한 끼로 버티며 너를 낳았어”

엄마들의 글씨에선 무겁고 힘들고 괴로운 감정이 느껴진다. 군데군데 눈물자국도 보인다. 이한호 기자

세상은 비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냉정하다. 미성년자라면 더 냉혹하다. 그런 시선을 견디고 너의 생명을 지켰다고, 엄마들은 편지에서 고백한다.

“아가야, 너를 낳은 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전부라서 미안하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함께 하고 배 아파서 낳은 우리 아기… 사랑한다.”
“이런 엄마에게도 웃어주어 고마워. 나와 달리 너는 배 부르고 자신 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네 살 냄새를 엄마는 잊지 못할 거야. 사랑해, 사랑해.”
“너를 가져 배가 불렀을 때 엄마는 일도 그만두고 하루 한 끼로 버텼어. 우리 ○○를 세상에 나오게 하려고 엄마가 많은 고생을 한 거, ○○는 알 거라고 믿어. 엄마 몸이 좋지 않아 이 곳에 데려왔어. 절대 너를 버린 게 아니란 것 기억해줘. 태어난 걸 축하해. 사랑해, 내 아기.”

그러나 편지 속 모성은, 실현되지 않은 기원에 지나지 않는다. ‘내 아이를 버렸다’는 마음 속 납덩이가 쉽게 사라질 수도 없다. 세상이 그들에게 찍는 주홍글씨는 사회와 아이의 친부들이 짊어져야 할 몫일 지 모른다.

“베이비박스 아직도 불법… 비밀출산법 제정돼야”
주사랑공동체는 베이비박스를 ‘생명 박스’라고 부른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영아들을 살리는 박스라는 의미다. 2009년 12월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가 처음 만들었다. 2014년 경기 군포시에 베이비박스가 생기기 전까지 국내에서 유일했다. 지금도 베이비박스는 전국에 그 두 곳뿐이다. 시작은 이 목사의 아들이었다. 1급 와상장애로 태어나 생전 대부분의 시간을 병실에 누워지냈다. 그 아들은 2019년 서른두 살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병원 치료를 받을 때 이 목사는 병실을 돌며 장애를 지닌 아이들에게 기도를 해줘 ‘기도 아저씨’로 유명했다고 한다. 소문이 퍼져 이 목사를 찾아와 장애아를 맡기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급기야 아이를 몰래 두고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새벽 3시 한 남성의 전화를 받고 뛰어나간 교회 대문 앞에는 채 비린내가 빠지지 않은 생선 상자에 아기가 담겨 있었다. ‘고양이들에게 해라도 당했더라면, 저체온증에 걸리기라도 했더라면.’ 생각하니 아찔했다. 교회 담벼락에 인큐베이터 크기의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계기다. 체코 같은 해외의 베이비박스 사례를 참고했다. 2015년 8월엔 소파와 아기 침대를 갖춘 베이비룸도 마련했다. 베이비박스가 알려지면서 미리 상담 신청을 하고 베이비룸으로 찾아오는 친모나 친부가 늘었다. 베이비박스의 이혜석 선임 상담사는 “아이를 다시 찾아가 기르는 친모의 경우에도 사람이 아닌 박스 안에 아이를 두고 갔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20년까지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누적 아기 수는 1,822명에 이른다. 올해에도 20일간 이미 13명의 아기가 이곳에 왔다. 현행법상 베이비박스는 엄밀히 말해 불법이다. 영아 유기에 해당해서다. 친모나 친부의 사정으로 출생신고가 불가능한 경우엔 입양특례법상 제한 때문에 새 가정이 아닌 보육원 같은 아동복지시설로 보내진다. 이 때문에 임산부가 일정한 상담을 거쳐 신원을 감추고 출산할 수 있는 비밀출산제(익명출산제)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2018년 오신환 당시 바른정당 의원이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 들어선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보호출산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주사랑공동체도 공론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법외 지대에 있기에 베이비박스는 정부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대신 일반인들의 품앗이 후원으로 명맥을 잇는다. 양승원 사무국장은 “2,000명 정도가 헌금을 보내주고 있다”며 “베이비박스 운영과 복지사각지대의 양육 부모 지원에 쓰인다”고 말했다. 현재 비혼 상태의 양육모를 포함해 매달 100여 가정이 베이비 케어 키트를 받고 있다.

▶①”띵~동! 1835번째 아기가 왔다, 베이비박스의 하루” 기사 보기

▶②“화장실서 낳은 핏덩이 교복에 싸서 베이비박스에 오는 심정 아시나요” 기사 보기

김지은 인스플로러랩장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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