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현의 물리학으로의 초대] 공기로부터 빵을 얻는 방법
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인류를 기아에서 구해낸 질소비료 대량생산
식량을 통해 영양분을 얻는 우리 신체는 무엇으로 구성돼 있을까? 다양한 방식의 대답이 가능하지만 원소의 질량 비율로 보자면 산소(65%), 탄소(18.5%), 수소(9.5%), 질소(3.2%) 등이 주성분이다. 이들은 단백질과 핵산을 구성하는 주요 원소라 생명 현상 유지를 위해 항시 적절히 공급되어야 한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이 원소들을 흡수한다.
식물은 어떨까. 식물도 생명체인만큼 위 네 개의 필수 원소를 포함한 원소들을 흡수해 생명 활동을 이어간다. 산소와 탄소는 이산화탄소를 통해, 수소는 흡수한 물로부터 쉽게 얻는다. 그러나 질소만큼은 식물도 쉽게 얻기 힘들다. 질소는 대기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흔하지만 질소 기체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라 식물이 이를 흡수해 직접 이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식물이 이용할 수 있는 질소의 주된 공급원은 질소와 다른 원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한 질소 화합물(이를 고정 질소라 한다)이다.
질소 화합물은 보통 땅속에 사는 특정 박테리아가 기체 질소를 고정해 합성한다. 대표적인 것이 질소 하나에 수소 세 개가 붙은 암모니아(NH₃)다. 그러나 작물을 계속 키울 경우 땅속 질소 화합물은 소진돼 버린다. 그래서 농부들은 퇴비나 거름을 만들어 땅에 뿌리며 작물에 고정 질소를 계속 공급해 줘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인류의 식량 생산의 역사는 질소 공급의 역사라 부를 만하다.
19~20세기 초 각 나라가 주력했던 일은 바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고정 질소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당시 인류가 비료를 대량으로 얻었던 방법은 인도 갠지스강의 진흙, 바닷새의 똥이 오랫동안 쌓여 굳은 구아노가 대량으로 존재한 페루의 섬들, 그리고 칠레 사막 지역에 광범위하게 쌓여 있던 초석 등이었다. 그러나 이런 천연 비료의 공급량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산업혁명 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인구를 기아로부터 구한 것은 바로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합성하는 기술의 탄생이었다.
고정 질소는 왜 얻기 힘든가
그런데 좀 이상하다. 지구 대기의 주성분이 질소라면 이 기체 질소만 이용하더라도 고정 질소를 얻는 건 문제가 없을 듯 싶은데, 그게 왜 그리 힘들었을까. 이는 질소 분자(N₂)를 이루는 두 개의 질소 원자(N)의 결합력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원자나 분자와 같은 미시 세계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는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원자와 분자의 특성은 20세기 들어 정립된 양자역학을 통해 알 수 있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들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특정 오비탈(비유적으로 ‘궤도’라 부르기도 한다)에만 머물 수 있다. 이 오비탈의 구조는 원자마다 다를뿐 아니라 오비탈에 들어갈 수 있는 전자의 수도 두 개로 제한된다. 오비탈을 아파트의 층으로 비유하자면 전자들은 아파트의 각 층에만 들어갈 수 있고 층별로 입주하는 전자의 수도 정확히 둘이다.
원자와 원자가 결합해 분자를 구성하는 과정은 에너지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원자들은 분자를 형성함으로써 더 안정적인 상태로 바뀐다. 이때 원자와 원자를 이어주는 것은 전자다. 원자 사이의 결합에 관여하는 전자는 보통 가장 바깥쪽의 오비탈에 있는 전자들이다. 질소는 원자번호가 7번이라 전자의 수는 총 7개다. 이 중 안쪽의 오비탈들에 묶여 있는 네 개의 전자는 결합에 관여하지 않고 바깥쪽 세 개의 전자만 분자 결합에 참여한다. 즉 두 질소 원자가 서로 세 개의 전자들을 내놓고 이 세 쌍의 전자가 ‘삼중 결합’을 함으로써 질소 분자가 탄생한다. 반면에 원자 번호 8번인 산소로 이루어진 산소 분자(O₂)는 전자 두 쌍이 결합에 참여하는 이중 결합, 원자번호 9번인 불소가 만드는 분자(F₂)는 한 쌍의 전자만 참여하는 단일 결합으로 묶인다.
이런 다양한 분자 결합 중 삼중 결합의 결합력이 가장 세다. 이렇게 비유해 보자. 두 사람이 한 팔만 이용해 서로 붙잡고 있다면 옆에서 달라붙어 두 사람을 떼어놓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양팔을 모두 이용해 서로 강하게 붙들고 있는 두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해선 더 큰 힘을 줘야 할 것이다. 만약 사람의 팔이 셋이나 된다면, 그리고 두 사람이 이 세 팔로 서로 단단히 붙들고 있다면 외부에서 이들을 떼어 내기는 더 힘들어진다. 분자 역시 결합에 참여하는 전자의 쌍이 많을수록 결합력이 더 세지고 두 원자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그만큼 분자를 분리해 두 원자를 해방시키기 위해선 고온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이처럼 강하게 결합한 질소 분자를 해체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에너지 현상은 자연에도 있다. 바로 번개다. 대기 중 번개가 칠 때 다양한 질소 화합물이 생기고 이것이 대지에 스며들어 고정 질소의 일부를 형성한다. 20세기 초 일부 과학자들은 인공 번개라 할 수 있는 아크(arc)를 발생시켜 고정 질소를 얻는 공정을 개발했으나 투입되는 막대한 전기에너지 대비 생산된 암모니아의 양이 적어 상용화에 실패했다.
인류를 기아로부터 해방시킨 하버-보슈 공법
20세기 초 비료 대란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고정 질소의 대량 생산이란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바로 독일의 유대인 과학자 프리츠 하버와 화학기업 바스프의 신참 공학자 카를 보슈였다. 그들은 단단히 결합된 질소 분자를 분리하고 거기에 수소를 주입해 암모니아가 합성되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고온-고압의 공정 조건을 최적화하고 반응을 촉진하는 촉매를 찾았다. 수천 번의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대기 중 질소를 이용해 암모니아를 대량 생산하는 하버-보슈(Barber-Bosch) 공법이 개발되었고 인류는 천연 비료를 발굴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기를 이용해 빵을 얻는 방법으로 일컬어진 하버-보슈 공법은 곧 다른 나라로도 퍼져 나갔고 막대한 식량 생산으로 이어졌다. 질소 비료의 인위적인 생산이 없었다면 20세기 이뤄진 폭발적인 인구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중요한 공로를 인정받은 하버와 보슈는 1918년과 1931년 차례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오늘날 사람 몸을 이루는 질소의 절반 정도가 하버-보슈 공법으로 만들어진 고정 질소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려하면 이 과학적, 산업적 성취가 인류 문명을 얼마나 크게 변모시켰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암모니아 합성법의 혁신을 위해
하버-보슈 공법은 현재 400~500℃와 100기압 이상의 조건에서 암모니아를 생산한다. 고온과 고압을 필요로 하는 만큼 매우 많은 양의 에너지를 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하버-보슈 공법으로 운영되는 비료 산업은 전세계 에너지 공급량의 1~2%를 사용하고, 그와 비슷한 비율로 이산화탄소 생성에 기여한다. 암모니아 합성에 필요한 수소를 얻기 위해 천연가스나 기름 같은 탄화수소에 기반한 화석 연료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버-보슈 공법은 발명된 지 100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질소 비료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요즘 많은 연구자들이 화석 연료를 덜 쓰면서도 소규모의 분산된 형태로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방법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최근 국내 대학의 한 연구진이 발표한 방법은 그 가능성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 중 하나다. 이 연구팀은 쇠구슬과 철가루를 함께 넣고 빠르게 굴리면서 질소와 수소를 순차적으로 투입할 경우 45℃의 낮은 온도와 대기압의 조건에서 암모니아가 효율적으로 생성된다고 보고했다. 쇠구슬을 굴리는 과정에서 변형된 철가루의 거친 표면이 질소 분해를 촉진하는 촉매로 기능한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소규모 연구실에서 수행한 결과가 곧바로 산업적 응용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버가 다진 초석 위에 보슈가 이끄는 수천 명의 연구팀이 수행한 치열한 연구가 인류를 기아로부터 해방시킨 공법을 탄생시킨 것처럼, 보다 효율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공법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은 또다른 차원의 결실을 맺으며 산업적 차원의 기술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고재현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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