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우린 더 단단해졌어요"..해남 연호마을

박진규 기자 2021. 1.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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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코로나 상생이 희망] 마을기업 ㈜연호 설립
주민 힘으로 청보리 축제 개최하며 마을공동체 운영
전남 해남군 황산면 연호마을 주민들이 난타교실 졸업식에서 교복을 입고 익살스런 모습을 연출했다.(마을기업 연호 제공) © News1

(해남=뉴스1) 박진규 기자 = 전남 해남군 황산면의 넓은 황토밭을 따라 달리다 보면 '마을기업 연호 주식회사'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띤다.

간판이 안내하는 대로 간신히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농로를 타고 더 들어가면 이제 막 새로지은 듯한 커다란 건물과 마주한다.

이 건물은 연호 마을기업이 정부지원금과 주민들의 출자금으로 지은 맥주공장이다.

마을에서 재배하는 보리를 이용한 수익 창출을 고민하다 수제맥주를 착안해 냈다.

45세대 102명이 모여사는 연호마을은 배추가 주 농작물이다. 주민들은 배추 농사를 마치고 빈 밭을 놀릴 수 없어 하나 둘씩 보리를 심기 시작했고 어느덧 겨울에서 봄 사이에는 온통 보리밭으로 변했다.

푸르른 보리밭을 보던 주민 한 분이 무심코 마을 주변 20만평에 널린 청보리를 활용한 축제를 제안했고, 주민들은 군청이나 외부 지원없이 우리 힘으로 축제를 치르자고 합심하면서 마을기업은 탄생했다.

마을 이장이 ㈜연호의 대표로 추대됐고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출자금 5000만원을 마련했다.

2020년 5월 열린 연호마을 청보리축제.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관람객들이 보리밭 사이로 띄엄띄엄 앉았다.© 뉴스1

축제를 준비하는 시기가 오면 마을 부녀회원들은 농번기철 보다 더 바삐 움직인다.

음식을 준비하고 홍보 포스터를 부치느라 발이 통통 부을 정도다. 막내 회원이 축제준비에 정신이 팔려 고추모종을 제때 심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부녀회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뚝딱 해결하기도 했다.

축제 첫 해인 2019년에는 3일 동안 3000여 명이 찾아와 제법 북적였으나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를 하루로 축소해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직은 준비할 게 많아 축제를 하면서도 적자를 보고 있으나 주민들의 결속력은 더 단단해졌다.

주민 윤치영씨는 "예전에는 농사만 짓다 보니 농사에 찌들어 살았는데 마을에서 보리축제를 하니 삶에 활력이 생겼다"며 "마을 사람들과 서로 의지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됐다. 이제는 속마음을 나눌 정도로 깊은 사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부녀회원들은 폐비닐과 공병을 수집해 마련한 돈으로 매달 한 차례 영양식 죽을 만들어 어르신들을 찾아가 대접하며 안부를 챙긴다. 이제는 연호마을의 죽 봉사가 입소문을 타면서 황산면 43개 전체 마을에서 각기 죽 봉사를 하고 있다.

신옥희 부녀회장은 "코로나19는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해줬다"면서 "죽이 어르신들을 세상과 연계시켜는 매개체였고 평소 만나지 못했던 그리운 얼굴을 보는 날이었다"고 흐뭇해했다.

그러면서 "그저 일상으로만 치부했던 소소한 삶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그 소중한 삶을 찾아가면서 서로를 다시 보게 됐다"고 소회를 말했다.

연호마을 주민들.은 각자가 찍은 사진을 모아 매년 사진전을 개최한다.© 뉴스1

연호 마을기업은 또 어르신들의 어릴 적 추억이 깃든 4㎞ 저수지 둑에 해바라기를 식재했고 활짝 핀 해바라기 길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소풍을 다녀왔다.

어릴적 학교 운동회에서 했던 고무신 던지기, 오자미 던지기 등을 하며 옛 추억을 선물했다.

지난해 5월에는 난타교실도 열었다. 잠시 사회적거리두기가 완화되자 집에만 갇혀있던 어르신들을 마을회관으로 불러 모아 난타를 가르쳤다. 교복을 입고 한 진행한 졸업식에서는 다들 소녀처럼 좋아했다.

추석 연휴 기간에는 1년 동안 마을 주민들이 휴대폰으로 찍은 다양한 사진들을 한 데 모안 사진전을 개최했다. 사진전 장소는 여남댁 박정례 할머니집 담벼락과 마당이다. 비어있던 창고에도 사진이 걸리고, 오래된 빗자루도 벽에 기대어 작품이 됐다.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 청보리밭. 주민들은 청보리를 활용해 매년 축제를 개최한다.© 뉴스1

연호는 마을에서 생산되는 배추와 마늘, 보리, 고추 등 다양한 농산물을 가공해 판매하는 것을 주 사업으로 한다. 또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마을의 유휴농지를 연결해 고령의 주민들에게 소득을 창출시킨다.

마을요양원 건립도 장기 추진목표로 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을에서 복지와 건강, 문화를 책임지는 마을문화복지사업을 성공시킨다는 포부다.

박칠성 연호 대표는 "대다수 고령의인 마을의 어르신들이 10년 후면 직접 농사짓기 어렵다"며 "이분들이 농사를 못 짓더라도 마을기업이 수용해 안정적으로 수입원이 생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장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맥주공장도 올해 말부터 시제품 생산에 들어가 본격 운영돼 내년부터는 조합원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줄 수 있는 날이 오도록 하겠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요람에서 노년까지 연호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04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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