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도시락이..1만2000원 '유산슬밥'?[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 2021. 1. 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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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없어 힘든 가게와 배고픈 노숙인, 둘 다 살린 '집밥 도시락'..노숙인 "최고 맛있어요, 고맙습니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들어진 식당에서 도시락을 만들고, 그걸 SK가 사고, 배고픈 노숙인들에게 나눠주는 따뜻한 아이디어. 그리 함께 살 수 있는 거였다. 진달래 식당서 도시락을 만드는 윤남순 사장님과 기자. 이곳 역시 매출이 80~90% 급감했다./사진=식당에서 만나 사진 찍어준, 고마운 조선일보 고운호 기자
맛깔나게 볶은 해삼·새우·버섯·고기가 큰 국자에 넉넉히 담겼다. 걸쭉한 유산슬이 밥 위에 살포시 얹어졌다. 고소하고 뽀얀 연기는 모락모락 올라와 침샘을 자극했다. 오늘 메뉴는 고급 중식 요리인 '유산슬밥'. 직원은 "밥을 더 많이 넣어야지"하며 주걱으로 한 숟갈씩 더 얹었다. 넉넉한 인심이었다.

6000원짜리 도시락에 1만2000원짜리 유산슬밥을 넣다니 어인 일일까. 이 분주하고 따스한 중식당 풍경에 절로 배가 부르면서도, 괜찮나 싶어 적잖이 걱정됐다. 그래서 "메뉴 단가는 맞추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사장님은 아니라고 손사래 치며 이렇게 말했다. "노숙인 분들 배고프시잖아요. 한 끼 잡수시는 건데 괜찮아요. 매번 나가는 것도 아니고요."
1만2000원짜리 메뉴인 유산슬밥. 남촌 중식당인 유가에서 노숙인들을 위한 특식이라며 만든 것이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주르르./사진=배고픈 남형도 기자
남산 아래 자리한 서울 중구 회현동 일대 남촌(南村). 예로부터 술을 빚으면 향기롭고, 523년 된 은행나무가 여전히 마을을 지킨다는 정겨운 동네. 이곳 가게들이 요즘 도시락을 만들며 모처럼 신바람이 난다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잘 알다시피 코로나19 때문에 가게들 대부분이 힘든 상황이니까. 그래서 그간 취재 다닐 때마다, 빈 가게의 적막함이 무겁고 맘 아파 작은 소비라도 했던 터였다.
가게가 만든 도시락, SK가 사고, 노숙인이 먹고

점심 시간이 한창이라 직장인들이 붐벼야하지만, 이곳 회현동 남촌 거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코로나19는 계속되고 있었다./사진=그림자가 제일 멋있는 남형도 기자
자, 여기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음식점 사장님들이다. 손님이 줄어 매출이 급감했다. 회현동 일대도 그랬다. 인근 직장인들도 줄고, 관광객은 씨가 말랐다. 또 하나는 노숙인들이다. 무료 급식소는 감염 확산을 막는다며 대부분 문을 닫았다. "배고파 죽겠네", 흔히 내뱉는 그 말은 누군가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인 거였다.

그렇다면 식당이 만든 도시락을 사서, 굶주린 노숙인들에게 나눠주면 어떨까. 힘든 사장님은 매출이 올라 좋고, 노숙인들은 맛있는 밥을 먹어 좋을 것이다. 누군가 처음 이 기발하고 기특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려면 중간에 도시락을 사줄 이가 절실했다. 그 중요 역할은 대기업 SK가 맡았다.

주로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나머진 굶는 노숙인의 삶. 그들을 위해 집밥을 가장 잘 만든다는 남촌 식당 상인들이 뭉쳤다. 매출도 올리고 집밥도 줄 수 있는 상생이랄까./사진=남형도 기자

함께 살자는 이 다정한 생각은 1월 6일부터 현실이 됐다. 남촌에 있는 가게 7곳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도시락(6000원 상당)을 만들었다. 처음엔 하루 100개부터 시작해 지금은 평일 기준 360개까지 늘었다. 이 도시락을 SK가 사들여 천주교 한마음운동본부가 하는 '명동밥집'에 전달했다. 이를 받은 명동밥집 신부님과 봉사자들이 도시락을 노숙인들에게 나눠주는 거였다. 무려 7가지 맛의 도시락이라니.

한 끼를 나눠 소외된 이들을 돌보겠단 최태원 SK 회장님의 훌륭한 결단 덕분인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그러니 부디 예정된 3월 말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기를, 밥은 매일 먹는 것이니까요). 명동밥집을 알고 취재할 수 있게 연결해준 SK 관계자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모처럼 활기찬 가게를 보니 울컥
그래, 식당은 원래 분주해야 좋다는 것을, 코로나19 때문에 한참 잊고 있었다. 진달래 식당에서 한창 도시락 준비에 분주한, 정이 참 많은 윤남순 사장님. 전라도 전주 출신이라 음식 내공이 장난이 아니다./사진=남형도 기자
고요한 가게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사장님들. 그걸 보며 참 오래 바랐었다. 사장님을 불렀을 때 너무 바빠 못 들어도 괜찮으니, 제발 북적대고 분주했으면 좋겠다고.

27일 오전, '진달래 식당'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한 사장님 모습이 그래서 좋았다. 바삐 움직이며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래기가 너무 좋아 주메뉴로 정했다는 윤남순 사장님(남촌상인회 회장), 그의 가게는 매달린 옥수수와 귤들로 어쩐지 정겨웠다. 그러나 따스한 분위기와는 달리 코로나19로 마주한 현실은 혹독했다. 장사한 지 3년 반 만에 매출이 80~90%깎이는 고통을 견뎠단다.

"도시락 때문에 요즘은 신바람이 나지요." 힘들었던 날들을 조금은 뒤집은, 윤 사장님의 반전 같은 그 얘기가 좋았다. 진달래 식당 옆집인 '대박물갈비' 식당도 그랬단다. 사장님은 프라이팬에 고기를 열심히 볶으며 "한 달 매출이 400~500만원은 늘었다"며 "기존의 두 배 정도"라고 했다. 손님이 없어 일찍 문 닫던 날들엔 '최대한 버티자'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요즘엔 "바빠서 신나고 재밌다"며 활짝 웃었다.

고기 굽는 연기가 그윽한데도, 사장님은 신나게 뒤집으며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매출이라 부르지만, 그건 삶이고 생계다. 바깥에서 고기를 굽던 '그냥 밥집' 사장님은 도시락 매출이 도움이 되느냐는 물음에 딸과 아들 얘길 꺼냈다. 대학생이 둘이니 학비가 700만원씩 나가는데, 걱정 안 해서 참 좋다고 했다. 마침 코로나19 대출도 다 쓴 참이어서 막막하던 차였다.

좁은 공간서 내뿜는 매캐한 고기 연기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타이밍이 참 좋았다"고 대답했더니, 사장님의 경상도 억양이 세졌다. "하이고, 기~가 차지요. 엄~청나게 도움이 되지, 하하." 그는 무지막지한 연기에도 초연하게, 또 신나게 고기를 뒤집으며 구웠다. 그 경쾌한 리듬에 또 다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바라고 상상하던 모습이어서.

7가지 맛 도시락, "난리났네 난리났어"

사진 보니 또 먹고 싶다, 정말 맛있었던 시래기탕. 계산하려 했더니 자식 같다며 한사코 안 받는다고 하셔서, 사장님과 한참을 실랑이 했다(자주 갈게요, 너무 맛있어요)./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그날 도시락 메뉴를 요리하는 걸 보며 군침을 여러 번 삼켜야 했다. 무려 7가지 맛이니까.

진달래 식당의 도시락 메뉴는 제육볶음. 발그레한 양념이 잘 버무려진 고기를 볶는 냄새에 배꼽시계가 꼬르륵 울렸다. '맛의 비결'이 뭐냐 물으니 "귀한 손님 오면 대접하잖아, 똑같죠잉?"이라며 "정말 내 새끼가 먹는다는 마음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 그게 정성이란다. 그러니 재료부터 달랐다. 국내산 고기, 좋은 양념, 바른 먹거리를 쓴다고.

음식은 역시 손맛이다. 제육볶음을 하고 있는 사장님./사진=군침 흘리는 남형도 기자


도시락에 들어가는 반찬을 조금씩 맛보라고 권하기에 조금씩 가져왔다. 그러니 죄송하게도 흰 쌀밥에, 구수한 들깨 시래기탕에, 계란 후라이(반숙이 맛있다며)까지 주는 게 아닌가. '캬아', '후루룩', '쩝쩝'하며 국물을 들이키고 숟가락질을 열심히 하며 "너무 맛있다"를 연발했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른 든든한 한 끼였다.

짠, 완성된 정갈한 불백 도시락. 개인적으론 고기보다 옛날 소시지를 먼저 집을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대박물갈비 식당은 고기를 주로 많이 한단다. 이유를 물으니 "노숙인 분들이 영양이 부족하니 채워주고 싶어 그렇다"고 했다. 그날 메뉴인 돼지불백엔 당근, 양파, 대파 등 채소가 수북이 들어갔다. 밥도 두 그릇 정도 양이 들어갔다. 주정민 사장님은 "양념이고 뭐고 음식 만들 때 아끼지 않고 넣는다"고 했다. 후한 인심의 이유를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노숙인 분들이 밥을 하루에 한 끼 드신대요. 그러니 더 마음이 쓰이지요."

그냥 밥집은 조랭이 기름 떡볶음과 시금치, 볶음김치, 메인은 오리고기 숙주볶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번엔 잡채, 그 전엔 흑돼지불백, 아니면 닭갈비도 했다고. 그렇게 매번 반찬을 다르게 정한다고 했다. 그 또한 만드는 이를 번거롭게 하는 정성 아닌가. '유포차'도 두부 부침과 김치, 시금치, 제육볶음 등 반찬 5가지를 준비하며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드리려고 신경을 쓰지요"라며 웃어 보였다.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한 '집밥'이란
노숙인 도시락을 홀로 싸는 진달래 식당 사장님을 위해 나선 기자. 포장을 잘하려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사진=조선일보 고운호 기자, 또 감사합니다
오후 1시가 넘어가자 일곱 개의 식당들이 일제히 바빠졌다. 아침에 미리 도시락을 다 싸도 되는데 그러지 않는 건,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은 사장님들 마음 때문이었다.

진달래 식당에선 포장이 한창이었다. 종이 도시락 용기를 테이블 위에 쭉 올려놓았다. 돕겠다고 했더니, 윤 사장님이 어묵볶음 한 통을 건넸다. 모자랄까 싶어 새가슴으로 어묵을 넣는 내게 사장님은 "너무 적다, 팍팍 넣어야지, 보기가 좀 그래"라며 핀잔을 줬다. 그래서 어묵을 넉넉히 더 넣는데, 그것만으로도 왜 행복한 기분이 들던지.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한 집밥을 짓는 마음이 그럴까. 포장된 도시락을 고무줄로 한 번 더 감으며 "헐렁헐렁 들고 다니다 쏟으면 안 되지"라며 꼭꼭 묶는 진심. 집밥이란 말이 참 좋다는 내 말에 그는 "노숙인 분들은 이런 집밥을 쉽게 못 먹겠지요. 내가 정말 밥을 먹는구나, 그게 따뜻한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마음은 통하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했다.

밥을 받을 때까지 식지 말라고, 핫팩을 사이사이에 껴둔다./사진=남형도 기자

오후 1시 30분, 포장이 끝난 도시락을 다시 보온 기능이 있는 큰 상자에 담았다. 한 상자당 도시락 15개씩 담겼다. 사장님은 핫팩을 흔들더니, 도시락 사이사이에 껴서 넣었다. 노숙인들이 도시락 받을 때까지 식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맛있게 드셔야 한다면서.

그렇게 모여 있어도 조용했던 운동장
드디어 트럭에 싣고 가는, 회현동 식당 일곱 곳에서 만든 도시락 400개. 명동성당에 있는 명동밥집으로 간다. 트럭은 SK가 지원한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오후 2시, 정성을 듬뿍 담은 도시락 400개를 트럭에 싣고 명동성당으로 출발했다. 조금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니 널따란 운동장이 있었다. 계성여고 학생들이 뛰놀던 곳인데, 지금은 이사 가서 비어 있다고 했다. 다행히 동떨어진 곳이라 도시락을 나눠주기 좋아 보였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코로나19 방역에 철저히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주황색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이 마스크 착용을 확인하고, 손 소독제로 손을 닦게 했다. 운동장 계단엔 노숙인들이 질서 정연하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앉아 있었다. 그리 많이 모여 있어도 참 조용했고, 소란스럽게 하는 이도 없었다. 도시락도 여기서 못 먹고, 받아서 바로 바깥으로 나간다고 했다.

김영삼 한마음 운동본부 팀장은 "도시락을 나눠준 지 한 달이 됐는데, 큰 문제 없이 잘 따라주신다"며 "간혹 술 드시는 분들이 있어도 노숙인들 안에서 조용히 시킨다"고 했다. '그만큼 한 끼 밥이 이들에게 절박한 것이리라', 외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웅크리며 기다리는 이들을 보며 그리 짐작했다.

도시락을 받기 위해 질서 있게 줄을 서 있는 노숙인들. 최소 1시간 이상 기다린 이들이 대부분이다. 방역은 철저히,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쓰도록 확인한다./사진=남형도 기자

도시락 나눠줄 준비를 하던 신부님은 "경기도 안양, 시흥, 인천에서 명동까지 온다"며 그 말이 옳다고 했다. 긴 거리를 와서 다시 그만큼 돌아가더라도 식사를 해결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봉사하러 왔다는 조현정 SK이노베이션 PL은 "무료 급식소 문도 많이 닫았다"며 "생존에 직결되는 부분이라 도움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보람 있게 하고 있다"고 했다.

도시락 받은 노숙인 "너무 맛있어요, 고마워요"

첫 번째로 온 할머님께 질문하고 있는 기자. 사진 찍히는지 몰랐다./사진=조선일보 고운호 기자, 감사합니다
오후 3시가 되자 안내에 따라 한 명씩 도시락을 받으러 나왔다. 잘 싸놓은 도시락과 아욱국, 귤까지 같이 비닐에 담아 건네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받으러 나온 할머니는, 그날 오후 12시 30분에 왔단다. 거의 2시간 반 정도를 기다린 거였다. 연세는 70세가 넘었고 홀로 산다는 그는 "너무 오래 기다리셨는데 춥지 않으셨냐"고 묻자 "괜찮아요, 내일은 더 따뜻하게 입어야지요"라고 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무료 급식을 하던 곳이 있었는데 끊겼어요. 여긴 진짜 너무 맛있어요. 최고예요, 최고."

다른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죽이나 좀 끓여 먹지요"라고 짧게 답한 뒤 더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 고마운 마음을 더 많이 표현했다. 맛있는 도시락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이렇게 귀한 도시락은 처음이라고.

명동밥집에서 도시락을 챙겨서 가는 노숙인들. 대부분 하루 한 끼만 먹는 이들이다. 하루 세 끼가 누구에게나 당연한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사진=남형도 기자

다른 노숙인은 "선생님, 저 기자인데요"라며 다가가자, 날 보며 "도시락 잘 먹겠습니다"라고 했다. 알고 보니 청각장애인이었다. 그는 잘 들리지 않는지, "오늘 처음 왔어요, 성당엔 많이 다녔어요. 이 도시락이 오늘 처음 먹는 밥이에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맛있게 드시라고 웃으며 인사하자 그는 "고맙습니다"라고 정중히 말한 뒤 떠났다.

서로를 부축한 두 사람도 눈에 띄었다. 40대로 보이는 여성은 시각장애인이라고 했다. 부부는 아닌데, 서로 도와주는 거라고. 여성은 "식사를 해결하기가 참 힘든데, 도시락이 너무 도움이 된다"며 "지난번에 나온 김치볶음이 참 맛있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 멀어져가던 둘을 잠시 바라보았다.

서로를 의지하며, 도시락을 챙겨서 천천히 걷던 두 사람. 한 분은 시각장애인이라고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들에게 한 끼 밥은 어떤 의미일까. 명동밥집을 운영하는 김정환 프란치스코 신부"그 분들에겐 숨 쉬는 것과 같다"고 했다. 호흡이 끊기면 죽는 것처럼, 그 밥이 노숙인들에겐 생명이라고.

그러면서 김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분들은 선물입니다. 사랑하고 나눌 기회가 생긴 것이니까요. 저희에게 짐이거나 불편한 게 아니라, 좋은 일을 해서 선해질 수 있고, 성숙 될 수 있도록, 선물처럼 온 분들이지요."

희망을 얻었으니, 희망을 줘야지요
지난해 참 힘들게 버텼었다고, 그러다 보니 좋은 날도 오더라고, 그런데 그걸 다시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다고. 그게 다름 아닌 희망이라 했다. 진달래 식당에 걸린, 사장님을 그린 정겨운 그림 액자들./사진=남형도 기자
회현동 가게 사장님들이 자주 꺼낸 특별한 단어는 다름 아닌 '희망' 이었다. 버티고 버틴 날들 끝에 찾아온 도시락은 한 줄기 빛 같은 거였다고. 희망을 얻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걸 다시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고 말이다. 도시락을 그리 애써 만드는 이유가 그랬다.

35인짜리 밥통을 금방 비우던(인심 좋게 퍼주느라) 진달래 식당 사장님은 "도시락으로 인해 희망을 얻었으니까, 저희도 누군가에게 또 희망을 줘야지요"라며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나는 것, 그게 희망"이라고 했다.

대박물갈비 사장님은 "저희도 희망이 있어서 이 만큼 왔다. 희망만 있으면 산다"고 했다. 노숙인 분들도 원해서 된 사람들이 아닐 거라며, 따뜻한 밥을 드시고 '아, 이렇게 해주는 사람이 있구나'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나야지요, 같이 살아야지요."

그리 희망이 또 다른 희망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사장님들이 쓰시는 도시락 덕분에, 종이 용기를 팔게 된 젊은 사장님이 그랬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종이 도시락을 만들고, 본인 홀로 한국에서 열심히 팔고 있다고. 일주일에 약 1200개씩 팔 수 있으니 그게 너무 좋아서, 경기도 광주에서 직접 남촌까지 배달하러 온단다.

도시락을 다 만들었다며 진달래 식당에 달려온, 옆집 대박물갈비 가게 사장님(가운데). 혼자 살지 않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사진=남형도 기자

노숙인들에게 닿은 희망은 또 어디까지 퍼질까. 확실히 알 순 없었으나, 아마 봄빛을 닮은 노란 물감처럼 서서히 번져나갈 거라고.

자기 도시락 포장을 다 마치고도, 옆집에 가서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 이들을 보며 그리 확신했다.

곁에 나란히 있으니 또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그들에게 곱게 내려온 한 줄기 빛이 예뻐서 찍어봤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오후 볕이 쏟아질 무렵, 막바지 도시락을 싸는데 진달래 식당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꽤 오랜만에 들은 팝송, Stand by me(스탠 바이 미)였다.

When the night has come, And the land is dark.
(밤이 짙어지고 어두워지고)

And the moon is the only light we see. No I won't be afraid, no I won't be afraid.
(달이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빛이 되면, 난 두렵지 않아)

Just as long as you stand, stand by me.
(네가 내 옆에 있어만 준다면)

흥얼거릴 때 새삼 손에 닿은 도시락이, 왜 이리 따뜻하고 기분이 좋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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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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