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특단의 유혹

전태훤 선임기자 2021. 1. 3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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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닭갈비, 병천 순대, 신당동 떡볶이, 부산 돼지국밥, 양평 해장국…. 모두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들이다.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먹거리지만 그래도 본고장만 할까. 그래서 다들 원조의 맛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그때부터 시작. 어딜 들어가야 할까? 식당마다 붙어 있는 ‘원조(元祖)’ 간판이 사람 헷갈리게 하는 거다.

같은 메뉴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들이 다닥다닥 줄지어 들어선 골목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원조라 외쳐댄다. 하나여야 할 진짜 원조집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원조가 빠진 상호가 오히려 어색하다. 원조집이라 믿거나 기대하고 찾는 손님도 없다. 다들 그러려니 할 뿐. 원조의 가치가 사라진 자리엔, 호객을 위해 대놓고 하는 거짓말만 남았다. 이 정도면 ‘원조 홍수’를 넘어 ‘원조 공해’쯤 되겠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쏟아진 부동산 대책을 두고 해야 할 말 같다. 그것도 올해 설 연휴를 전후로 ‘특단’까지 예고한 스물다섯 번째 부동산 대책은 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미 스물네 차례나 쏟아냈다. 그중 일부는 앞서 발표한 부동산 시장 안정 조치들의 보완책 정도로 꼽는다 치더라도, ‘종합 대책’으로 발표된 조치들 가운데 특단이 아닌 적이 있는지.

부동산과 관련해 강화되지 않은 세금이 없다. 현 정부가 투기 세력으로 낙인 찍은 다주택자만 세금 폭탄을 맞는가 싶었는데, 이런저런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겠다는 대책들이 넘치다 보니 집이 한 채뿐이라도 보유세 폭탄을 떠안게 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모아놓고 보면 가히 특단이다.

담보대출 문턱도 높아졌다. 이런 대출 규제는 이제껏 없었다. 특단이다. 그런데 돈이 남아 대출을 받나. 대출 창구 앞에 서는 이들은 집 살 목돈이 부족한 서민∙중산층이다. 후폭풍은 이들 몫이 됐다. 이들은 주거 사다리가 무너졌다고 아우성이다.

그간 쏟아진 특단의 조치들에 부동산은 이제 사기도, 팔기도, 갖고 있기도 힘들게 됐다는 하소연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아직 남은 특단은 대체 뭔가.

이번엔 특단의 공급 대책이라 한다. 무슨 일만 터지면 나오는 수습책마다 특단이란 수식어가 빠진 적이 없어 그런지, 이번에도 특단이란 말이 붙었지만 별로 ‘특단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실수요자들은 선호 지역에서 양질의 민간 주택이 얼마나 충분히 공급될지 궁금해 하는데, 그에 대한 답이 나올것 같지 않아서다. 역세권 용적률을 올리고, 공공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고, 새 공공택지를 통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말 정도다. 더는 새로울 것도 없는 수준의 공급계획에 깜짝 놀랄 리가 있을까.

특단이란 단어 자체에도 피로감이 쌓여 있지만, 시장을 움직일 정도의 파격적인 공급대책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공언대로 이번 대책이 정말 특단의 조치가 될 거라 기대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늑대가 온다’고 했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도 세 번이 끝이었다.

특단의 부동산 대책에 ‘올인’하는 자체도 부담스럽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주택 공급엔 문제가 없다는 인식하에 수요 억제에만 초점을 맞춘 부동산 대책들이었다. 집권 5년차에 접어들고서야 그동안 대책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갑자기 특단의 공급 대책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역설 같으면서도 사뭇 양가적이다. ‘혹시나’ 싶은 기대 뒤에 ‘역시나’ 하는 실망이 엿보여서다.

짧아야 2~3년, 길면 5년 이상 걸리는 게 주택공급이다. 차기 정부에서 이뤄질 계획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널을 뛰는 것도 주택공급이다. 그런 계획을 정권 말년에 특단의 조치로 내놓겠다니, 어디까지 기대를 해야 하나.

집권 5년차다. 특단의 유혹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잇단 부동산 실책을 뒤집어 보겠다는 정책 욕심에서 벗어나 그동안의 대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규제로 왜곡된 시장 기능을 되살리도록 보완하는 마무리가 필요하다. 특단 아닌 특단으로 속고 속이는 부동산 정치도 이제 끝내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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