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항모도 단번에 격파".. 대함 탄도미사일, 미 해군을 노린다 [박수찬의 軍]
핵항모를 필두로 하는 미 함대의 공격력은 중소 국가 공군과 해군을 압도할 정도로 막강하다. 중국, 러시아 등 미국의 라이벌 국가들이 핵항모를 가능한 멀리 쫓아내려는 시도를 지속한 이유다.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 미국과 힘겨루기를 펼치고 있는 중국은 미 핵항모에 맞서 대함 탄도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다.
음속의 10배가 넘는 속도로 빠르게 낙하하는 대함 탄도미사일은 기존 해상 방공체계로는 막기가 어려워 ‘항모 킬러’로도 불린다.
◆표적은 미 핵추진 항공모함
냉전 초기 탄도미사일이 전장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던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함 탄도미사일에 대한 인식은 회의적이었다.
1962년 러시아는 미 항모 타격과 관련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 수 발을 쏴도 항모를 격침할 수 없다. 잠수함과 전투기가 항모를 위협할 수단이다”라고 판단했다. 러시아가 대함 탄도미사일 대신 순항미사일 탑재 핵잠수함과 폭격기 등을 대거 배치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냉전 이후 전자 및 미사일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함 탄도미사일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바뀌는 추세다.
지상 표적을 노리는 일반적인 미사일과 달리 대함 탄도미사일은 먼바다를 항해하는 대형 함정을 타격한다. 움직이는 함정을 공격하는 만큼 다양한 정찰 자산을 가동해 확보한 정보로 해상의 적 함정 움직임을 식별한다.
지상 기지에서 발사된 대함 탄도미사일은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함정의 이동 경로를 따라 비행궤적을 수정한다. 최종적으로는 미사일에 탑재된 센서로 표적을 포착해 공격한다.
핵심 타격 대상은 미 핵항모다. 80여 대의 함재기를 운용하고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이지스구축함, 핵추진잠수함 등을 거느리는 핵항모는 재래식 무기로는 격침이 매우 어렵다.
속도가 빠르고 장갑이 두꺼워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피할 수 있다. 먼 거리에서 전투기나 폭격기가 대함미사일을 쏘는 방법도 있으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공망을 지닌 이지스구축함의 저지를 뚫기가 쉽지 않다.
반면 20t이 넘는 대함 탄도미사일이 음속의 10~20배에 달하는 속도로 떨어지면, 핵항모나 이지스구축함도 이를 막아낼 수 없다.
중국처럼 정확도를 높이고 표적을 식별하는데 필요한 정찰 및 항법 위성, 지상 장거리 레이더, 무인정찰기, 네트워크 연결 체계 등을 추가로 갖출 수 있다면, 대함 탄도미사일은 미 핵항모를 단번에 격파할 강력한 전략무기가 될 수 있다.
바다는 파도가 쉼없이 치는 곳이다. 수면 위에서 레이더를 바다에 떠 있는 표적에 비추면 파도에 반사되는 전자파로 인한 클러터(간섭신호)가 발생한다.
광학장비는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이동하는 함정을 파괴하려면 미사일이 표적에 명중하기 직전까지 추적할 수 있는 고도의 정확성이 필요한데, 기존 레이더나 광학장비로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는 방식이 온도차를 이용한 탐색이다. 차가운 바다와 달리 항모를 비롯한 함정은 엔진과 전자장비를 가동하면서 열을 방출한다. 바다와 함정 간에 온도가 달라진다. 이를 이용하면 표적의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공군의 적외선 유도 공대공미사일과 원리가 유사하다는 평가다. 적외선 유도 미사일은 과거에는 전투기 엔진 배기구에서 내뿜는 열추적에 국한됐으나, 현재는 전투기와 공기의 마찰열, 자외선 등을 먼 거리에서 포착할 수 있다.
관련 기술을 응용하면 고도 수십㎞에서 해상 표적을 식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대함 탄도미사일 분야에서 가장 앞선 국가다.
1996년 미 핵항모가 대만 해협에 접근했던 사건을 계기로 중국은 미 해군의 연안 접근을 저지할 수단을 찾는데 몰두했다. 그 결과 DF-21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개조한 DF-21D 대함 탄도미사일(사거리 1500㎞)을 개발했다.
2013년 시험발사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DF-21D는 탄두 부분에 기동탄두재진입체(MARV)를 사용하고 있다. 기동탄두재진입체란 명중률을 높이고 미사일 방어망을 회피하기 위해 대기권 재진입 시 기동 비행을 하는 탄두다.
기동탄두재진입체에는 이동하는 함정을 추적해 파괴할 수 있도록 레이더도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이 정점 고도에서 낙하해 표적에 명중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수준의 조정이 가능해 명중률도 높다는 평가다.
중국은 DF-21D보다 사거리가 더 긴 DF-26도 운용중이다. 이와 관련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DF-26이 산둥성에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사거리가 5000㎞로 추정되는 DF-26은 산둥성에서 요코스카 등 주일미군 기지를 위협할 수 있다. 서해와 동중국해 등에서 미 해군의 활동을 견제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미 항공우주전문지 에비에이션 위크는 “극초음속 비행체 기술이 DF-21D에 적용되면 사거리는 50% 늘어나고, 기존 탄도미사일보다 탐지 및 대응 시간이 부족해 위협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갈등을 빚는 이란은 걸프만에 정기적으로 전개하는 미 핵항모를 막고자 대함 탄도미사일 개발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무기가 칼리즈 파즈(Khalij Fars)다. 사거리는 300㎞이며 레이더 또는 전자광학장비로 목표물까지 유도가 이뤄진다.
이란은 대함 탄도미사일 운용을 위해 무인정찰기와 장거리 레이더 체계 구축도 추진중이다. 정찰 및 항법 위성을 쏘아올리는 중국보다는 부족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는 높다는 평가다.
중국과 이란은 대함 탄도미사일을 필두로 어뢰, 순항미사일, 폭탄 등을 한꺼번에 쏘는 집중사격 전술을 통해 미 핵항모를 격파하는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북한도 2017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 105주년 열병식에서 스커드-ER(사거리 1000㎞)을 개량한 신형 스커드 미사일을 공개했다.
탄두 부분에 작은 날개가 부착된 이 미사일을 두고 유도조종을 통해 함정을 타격할 수 있는 대함 탄도미사일 개발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구형 스커드미사일 개량으로 최신 대함 탄도미사일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미국을 위협할 일말의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스커드 기반 대함 탄도미사일 개발을 시도할 여지는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북한이 탄도미사일 추진체를 액체에서 고체로 바꾸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KN-23 등 고체연료 탑재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개조한 대함 탄도미사일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최근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감시정찰 능력 강화와 극초음속 무기 개발 등을 강조했다. 대함 탄도미사일 위력을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기술들이다. 전술핵 등 비대칭무기 강화를 꾀하는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결단을 내리면 새로운 형태의 대함 탄도미사일을 수년 안에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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