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도, 상환도, 협박도 언택트.. 더욱 치밀해진 불법사금융
부산에 사는 30대 남성 김모씨는 지난해 2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사채업자 ‘변 실장’에게 급하게 15만원을 빌려 썼다. 김씨는 3일 후 이자로만 12만원을 내야 했는데, 변 실장은 핀테크 앱(애플리케이션)인 토스의 ‘ATM(현금자동입출금기) 현금 찾기’ 기능을 통해 갚으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변 실장이라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매번 전화나 문자 독촉에 시달려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생계가 어려워진 서민들이 급전을 구하기 위해 불법사금융을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불법사금융업자들의 영업 행태가 ‘비대면’을 활용한 방식으로 더 치밀해지고 있다. 30일 한국대부금융협회가 발간한 ‘금융소외의 현장, 불법사채로 내몰린 서민들’에 수록된 실제 불법사금융 피해 상담 사례 60건을 분석한 결과 이런 양상이 나타났다.
불법사금융업체를 접하는 방식은 주로 인터넷 카페나 홈페이지를 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나라’ 등과 같은 대출 직거래 사이트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대출 상담을 남기면, ‘O부장’, ‘O팀장’, ‘O실장’ 등 이름의 불법사금융업자가 댓글로 카카오톡 아이디를 남겨 대출을 안내하는 식이다.
업체가 보내는 광고 문자도 이용자들이 불법 사채에 손을 대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자영업자 특별지원대출은 서민금융원(‘서민금융진흥원’을 변형)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 KEMCO(‘KAMCO’가 올바른 표기)가 지원하는 서민금융상품’과 같이 정책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의 이름을 교묘하게 사칭해 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 과거 ‘월변, 급전, 일수’라고 적힌 명함을 뿌리던 방식에서 온라인·모바일로 주요 광고 수단이 옮겨간 것이다.
돈을 갚는 방식도 변화했다. 토스의 ATM 현금 찾기 기능을 통해 토스 화면에 뜬 인증 번호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면, 사채업자가 ATM에서 그 인증번호를 입력해 현금을 찾아가는 등 핀테크 앱을 이용해 상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협박도 무작정 집이나 직장을 찾아갔던 방식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해졌다. ‘비상 연락망’ 명목으로 지인의 연락처 50~100개 정도를 공유할 것을 대출 조건으로 내거는 경우도 있다.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이들에게 전화를 돌리겠다고 협박하는 식이다. 인터넷 금융사기방지 서비스인 ‘더치트’를 활용해, 문제가 생기면 돈을 빌린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사기 정보로 등재해두기도 했다.
불법사금융 영업 행태는 날로 치밀해지는데 서민들의 수요는 늘고 있다. 협회가 분석한 최신 사례 중에는 지난해 코로나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져 불법사채에 손을 뻗은 경우가 많았다.
20대 여성 전모씨는 "여행사에서 상담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전 직원이 무급휴직에 돌입하면서 생활비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30대 남성 홍모씨는 "코로나 사태로 두 번이나 실직하면서 사채업자에게 대출을 받아 빚을 돌려막았다"고 전했다.
이자 부담 역시 매년 커지고 있다. 협회가 거래 내역 총 5160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불법사금융의 평균 이자율은 연 401%로, 법정 최고금리(연 24%)의 16.7배에 이르렀다. 2019년(연 145%)보다 세 배가량 높은 금리다. 이들이 평균적으로 빌린 금액은 992만원, 평균 거래 기간은 64일로 조사됐다. 사채 유형은 ▲급전 대출(신용) 4830건 ▲일수대출 285건 ▲담보대출 45건 순이었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불법사금융 이용자는 큰 금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초 생활비가 필요한데 빌릴 곳이 마땅히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고금리 사채에 손을 대게 된다"며 "사채를 갚기 위해 또 다른 사채로 ‘사채 돌려막기’를 하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불법사금융 피해자는 한국대부금융협회 소비자보호센터(02-6710-0831)나 금융감독원(1332)에 연락하면 상담을 통해 채무조정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법정이자율을 초과하는 부분은 돌려받을 수 있다. 채무조정 시도에도 당사자가 초과 금액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한다면, 협회는 채무조정을 결렬하고 향후 법적 절차를 안내한다. 불법 추심이 이뤄진다면 금융위원회나 법률구조공단(132)을 통해 ‘채무자 대리인’ 제도로 무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미등록 대부업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법정 최고금리 제한 규정을 위반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해당해 가중 처벌된다. 금융위는 상반기 중 불법 사채업자가 연 6% 이상의 이자율을 받으면 6% 초과분은 모두 무효로 하는 내용의 대부업법 개정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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