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싼 땅에서 가장 가난한 자를 위해 밥 짓는 이유" [커버스토리]

김민아 선임기자 2021. 1.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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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밥집' 김정환 신부 이야기

[경향신문]

낮에도 영하의 한파가 이어진 29일 시민들이 무료 급식소 ‘명동밥집’에서 받은 도시락을 들고 돌아가고 있다. 김기남 기자

서울 명동은 ‘국가가 공인한’ 가장 비싼 땅이다.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 부지는 2004년 이후 18년째 전국 땅값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1㎡당 공시지가가 2억원을 넘는다. 이 땅만 비싼 것도 아니다.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 2~10위 땅도 모두 명동에 몰려있다.

한국의 거대한 부를 상징하는 이 지역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들어섰다. 지난 22일 옛 계성여중·고 자리에 문을 연 ‘명동밥집’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산하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운영한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한 이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모금활동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을지로·종각·남대문·서울역 일대에 노숙인이 급증했음을 알게 됐다. 더 큰 문제는 노숙인이 늘어난 반면, 이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는 점이었다. 서울대교구 차원에서 이들이 마음 편히, 존중받으며,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명동밥집’ 주인장을 맡은 김정환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장이 지난 20일 서울 명동성당 입구의 성모상 앞에 섰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지난 20일 경향신문과 만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장 김정환 프란치스코 신부는 “서울 한복판에서 밥을 굶는 사람들을 방치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밥이 하늘이고, 사람이고, 생명”이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밥을 드리는 일은 선택이 아니고 신앙인의 의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밥집을 열기까지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팬데믹 때문에 구상한 사업이 팬데믹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초 지난해 11월15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맞춰 개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를 보이며 3차 유행이 시작됐다. 수도권 지역에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적용되면서 실내 급식은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주 3회(수·금·일요일) 오후 3시 실외공간(운동장)에서 도시락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명동밥집은 정식 개소 전인 지난 6일부터 SK그룹 지원으로 도시락 나눔을 시작했다. SK 측에서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명동·회현동의 중소 음식점들에 도시락을 주문하면, 해당 업소들이 명동밥집에 도시락을 납품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김정환 본부장은 “사회적 연대와 우애의 선순환”이라고 표현했다.

명동밥집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날은 일요일이다. 주말에 문을 닫는 급식소들이 많아서다.

개소식 후 첫 일요일인 24일 오후 명동밥집에 가봤다. 2시 조금 넘은 시각에도 운동장 스탠드에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2시30분쯤부터는 대기 행렬이 눈에 띄게 불어났다. 손에 소독제를 뿌려주는 봉사자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2m 간격 유지해주세요. 도시락 부족하지 않습니다.”

줄 서 있던 한 60대 남성은 “명동밥집에 온 게 오늘로 세 번째”라고 말했다. 수·금·일요일엔 여기서 주는 도시락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머지 요일은 서울 강남의 사찰에서 주는 떡으로 끼니를 대신한다.

2시55분 현재 도착 인원은 270여명으로 집계됐다. 이내 배식이 시작됐다. 김 본부장은 무전기를 들고 “들머리에 몇 분이나 올라오고 계시느냐”며 인원 체크를 계속했다. 3시40분쯤 되자 배식이 거의 마무리됐다. 도시락이 남기를 기대하며 서 있던 이들이 한 개씩 더 가지고 갔다. 준비한 도시락 550개가 모두 동났다. 봉사자 강미정 세레나씨(51)는 1주일에 두 차례씩 봉사에 참여한다. “긴 시간을 들여 어렵게 밥집에 오는 분들이 많다. 도시락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는 분들을 보면 외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명동밥집은 도시락만 나누는 공간이 아니다. 신발을 원하는 사람은 담당 봉사자에게 이름과 발 치수를 말해놓으면 다음 일요일에 받아갈 수 있다. 밥집 측에서 1주일 사이 사 놓는다. 김 본부장은 “처음에 밥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용자들이 요청하는 물품이 늘어나고 있다”며 “신발이든 외투든 가능한 한 챙겨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명동밥집의 최종 목표는 치유와 회복, 그리고 자활이다. 밥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명동밥집 측은 무료 급식소 운영이 어느 정도 정착되면 긴급 의료 지원이나 목욕·이미용·세탁 지원, 심리 상담, 구직 활동 지원 등의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김 본부장의 생일은 12월25일 크리스마스다. 세례명은 ‘빈자의 성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랐다. 나눔을 실천하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장을 맡게 된 게 “주어진 운명 같다”고 했다.

김민아 선임기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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