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 보며 웃는 어른들..'덕질'의 자유보다, 상처받을 그들을 생각하라 [이진송의 아니 근데]
[경향신문]
‘열풍’이라고 할 만했다. 1월 초, 일본 동요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동의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영상의 주인공은 무라카타 노노카. 2020년 11월 열린 동요대회 참가 당시 2세였던 노노카는 은상을 수상했다. 다른 참가자의 허리 높이밖에 오지 않는 키나, 그 키에 맞춘 낮은 마이크, 깜찍한 외모와 정확한 음정까지 뭐 하나 귀엽지 않은 게 없었다. 그야말로 “귀여워서 지구 부숴! 아파트 뽑아!” 일본 현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가 폭발했다. 노노카의 영상 인터뷰며 기사가 쏟아지고 팬아트나 패러디가 등장했다. 노노카의 어머니가 개설한 유튜브는 순식간에 구독자 10만명을 돌파, 1월27일 기준 27만4000명의 구독자를 기록 중이다. 노노카의 어머니는 한국어 자막을 단 영상을 올리고, 노노카에게 한국어 인사를 시키기도 한다. 영상 밑에는 노노카에게 열광하는 한국인들의 댓글이 가득하다.
관심은 양날의 검과 같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대를
압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더구나 그 상대가 아동이라면
무책임한 환호와 기대, 실망이
당사자에겐 ‘학대’가 될 수 있다
처음에는 그저 귀엽다고 생각했다. 지인들에게 링크를 보내기도 했다. 인기가 과열되는가 싶더니 양상이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노노카가 우동을 먹는 영상에 달린 “한국에도 우동이 있나요?”라는 자막이 도화선이었다. “~에도 ~가 있는지” 묻는 것은 일본인이 후진국을 무시할 때 쓰는 화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노노카를 향한 악성 댓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노노카의 어머니는 번역이 서툴렀음을 사과하며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비난은 쉽게 진화되지 않았다. 결국 노노카의 부모와, 노노카가 아역 탤런트로 소속된 기획사에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노노카 어머니와 소통하며 운영하던 한국 공식 팬 계정 또한 22일, 부모님과 소속사가 운영을 원치 않는 듯하니 계정 운영을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유명인을 향한 비난과 악성 댓글은 이제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2018년 먹방 ASMR을 올리며 큰 인기를 끌었던 키즈 유튜버 ‘띠예’ 역시 욕설과 성적 모욕이 담긴 댓글 때문에 댓글 창을 닫고 한동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노노카의 경우 반일 정서가 더해져, 문화 침략이 의심된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아동에게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이 나쁘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욕설과 비난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동요대회의 무대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능한 모든 정보를 끌어모으며 열광하는 것은 괜찮을까? 관심은 양날의 검과 같다. 긍정적인 반응 또한 대상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를 의식하게 한다. 칭찬에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는 요구가 은은하게 깃든다. 또한 호감이 클수록 상대가 나의 뜻과 다른 행동을 했을 때 분노하거나 실망하기 쉽다. 관심받는 것이 직업인 연예인조차 이러한 상황에 압박을 느낀다.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는 JTBC <악플의 밤>에 출연하여, 외모 평가에 대한 인식을 지적하고 칭찬 역시 평가라고 언급했다.
아동은 특히 미디어에 노출될 때 결정권을 행사하거나, 이후의 파급력을 예측하고 고려하여 행동할 수 없다는 특수성이 있다. 영상이 퍼지고, 이름이나 키가 알려지는 데 노노카의 의사가 얼마나 반영되었을지 생각하자 더는 마음 편히 볼 수 없었다. 비슷한 시기 언론에 공개된 아동학대 사건 피해자의 실명과 얼굴 사진을 보며 생각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성인이었다면 그렇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함부로 피해자의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고, 사진을 SNS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동의 초상권이라는 문제의식은 귀여운 ‘짤’ 앞에서 힘을 잃는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너무나 쉽게, 일상적으로, 무분별하게, 현실의 아동을 연예인이나 만화 캐릭터 ‘덕질’하듯 소비한다. 나의 ‘힐링’과 ‘재미’를 위해서. 곤란해하는 모습도 인기가 많다. 상황을 다 아는 어른에게는 그저 재미있고 귀여운 것이다. 그 관심과 수요 때문에 우는 아동을 찍거나 일부러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도.
미디어의 아동 소비 역사를 짚어보자. 태초에 god의 <육아일기>(MBC·2000~2001)가 있었으나, 좀 더 본격적인 물꼬는 MBC 예능 <아빠! 어디가?>(시즌 1~2·2013~2015)가 텄다고 봐야 한다. 연예인 아버지와 자녀가 주말 동안 여행을 떠나는 포맷은 2013년 연예대상에서 프로그램으로 대상을 받을 만큼 인기를 얻었다. 혈연 대신 시청을 통한 내적 친밀감으로 이어진 ‘랜선 이모’ ‘랜선 삼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아빠! 어디가?>의 성공 이후,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2013~현재), SBS <오 마이 베이비>(2014~2016) 등 육아 예능이 쏟아지며 아동이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했다. 주말의 오락 요소가 된 이상, 아동은 시청자의 비위를 거스르거나 피곤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아무리 어리거나 힘들어도 부정적인 감정 표출은 ‘적당히’ 해야 한다. <아빠! 어디가?> 시즌 1에서 열 살이었던 출연자는 떼쓰며 울었다가 거의 전 국민적인 비난을 받았으며 내내 울보 이미지를 달고 다녔다. 편집하거나, 아동은 그럴 수 있다는 정보를 충분히 줬다면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떤 책임도 질 필요 없는 타인에게, 화면 속 아동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평가할 권리를 쥐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시에 시청자가 어떤 아동을 보고 싶어 하는지도 드러났다.
육아 예능 속에서 아동은 편집과 내레이션과 자막을 거쳐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가공된다. 촬영에 익숙해진 아동은 카메라와 어른의 평가를 의식해서 행동한다. 시청자 즉 어른이 보기에 귀엽고 착하지 않으면 나쁜 평가를 받는다. 방송은 아동을 기획된 아이돌그룹처럼 연출하고, 시청자는 그 이미지를 소비하며, 아동은 반응을 내면화하는 순환 구조를 띤다. 이 구조 속에서 아동은 실존하는 개인이 아니라 파편화된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아동의 감정이나 행동을 소비할 때 정작 당사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깜짝 카메라라는 구실로 아동의 난처한 반응을 끌어냈다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으로 아동을 몰아간다. 현재 방영 중인 TV조선 <미스 트롯2>는 성인 출연자도 힘들어하는 진행 방식을 초등부 경연에도 적용한다. 아동 참가자는 과도하게 경쟁하고 경쟁자를 도발하는 말을 하도록 권유받으며, 지나치게 불안해한다. 경연 제목은 ‘데스 매치’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실력을 증명하되 나이에 어울리는 외모나 귀여움을 어필해야 한다. 한 명 한 명 합격자가 발표될 때마다 10세 내외의 참가자들은 오열하고, 마지막 한 명의 발표를 앞두고는 안절부절못한다. 한 참가자는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한다. 어른보다 극적이라는 이유로 아동의 감정과 반응을 볼거리로 만든다면 그 쇼는 아동학대에 불과하다.
텔레비전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대부분 폐지된 후, 아동 소비 열풍은 자연스럽게 개인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갔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일상을 촬영하고 공유하기 쉬워지고, 아동 콘텐츠 수요가 늘어난 환경도 뒷받침했다. 아동은 연예인의 자녀가 아니라도 스스로 드러내서 인기를 얻을 수도 있고, 또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되기도 한다. 언제든 원하는 플랫폼에서 귀여운 아동의 사진이나 영상을 검색할 수 있다. 이것은 기회일까, 아니면 새로운 방식의 착취일까. 아직 무엇도 단언할 수 없지만 아동이라는 이유로 자주 멈추곤 하는 우리의 ‘상식’을 작동시킬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보통은’ 만난 적 없는 타인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말을 놓으며 애정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건 좀 이상하니까. 그런데 상대가 아동이면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이 기준이 허물어진다. 이건 좀 많이 이상하다.
아동은 배우나 아이돌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결정권이 없는 이를 ‘덕질’의 대상으로 삼으며 몰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앞서 말했던 키즈 유튜버 띠예는 성인 구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빠르게 구독자가 늘었다. 그러나 아동에게 성인 구독자들이 과도하게 자신의 나이를 드러내고, 아동이 이해하기 힘든 어른의 단어나 표현으로 장문의 댓글을 다는 행동이 일부 누리꾼에게 비판받기도 했다. 잘못된 애정 표현이나 무분별한 소비는, 악성 댓글과 비슷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무심코 저장하던 아동의 사진이나 영상 앞에서 한 박자 쉬어가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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