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 '아리스 인 보더랜드', 판타지 외피 뚫고 배어나는 처절한 현실 묘사

한겨레 2021. 1. 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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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덕후들의 OTT 충전소]

세상만 양극단으로 치닫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콘텐츠도 양극화의 시대다. 극단적으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 찬사를 받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좀비와 괴물, 초능력자가 나오는 작품을 두고 난리법석이다. 그러나 성공한 콘텐츠를 보면 양극단은 맞닿아 있다. 북한 사람들의 삶을 잘 묘사했다고 평가받은 한국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속 정혁과 세리의 사랑은 판타지물에 가깝다. 반면 괴물들이 쏟아지는 한국드라마 <스위트 홈> 속 주인공들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시공을 초월한 공상과학(SF) 작품도 현실 사회의 권력 구조, 억압과 저항을 은유할 때 더 큰 찬사를 받는다. 오늘 소개할 드라마도 가상세계의 판타지와 사실적인 현실 묘사가 공존한다. 지난해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일본드라마 <아리스 인 보더랜드>다.

넷플릭스 제공

집에서 게임만 하는 백수인 아리스는 역시 사회에서 주류가 되지 못한 친구 2명과 함께 무작정 거리로 나온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시부야 교차로에 서 있지만, 딱히 갈 곳이 없다. ‘쫓겨난 놈들이 갈 곳은 없을까?’ ‘아무도 모르는 나라로 가고 싶다’. ‘좀비가 나타나면 어떨까?’ 이런 실없는 말을 하며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고 밖으로 나와보니 거리의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이 장면은 여러 번 봐도 정말 충격적이다. 자신들만 남은 세상에서 그저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밤이 되자 이들은 이상한 게임에 초대된다. 그곳에서 자신들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규칙에 따라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며칠씩 더 살 수 있는 비자가 주어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 같은 게임. 아리스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잔혹한 게임을 설계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쯤에서 몇 개의 작품이 생각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본드라마 <라이어 게임>이다. 누군가 설계한 알 수 없는 게임에 초대되기 때문이다. 생존 게임이란 점에서는 일본 영화 <배틀로얄>이나 미국 영화 <헝거 게임>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극단의 상황에서 주인공이 성장하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일본판 <스위트 홈>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실제로 <스위트 홈>과는 일주일 차이로 공개됐으며, <스위트 홈>처럼 <아리스 인 보더랜드>도 세계 40여개국에서 시청 순위 10위 안에 들었고 전세계 인기 순위 7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제공

이 드라마는 만화 <임종의 나라 앨리스>가 원작이다. 만화 특유의 과장된 감정표현이 살짝 거슬리기도 하지만 복잡한 추리나 초현실적인 게임은 일본 만화의 강점이기도 하다. 아리스 역의 야마자키 겐토와 우사기 역의 쓰치야 다오는 드라마에서 네번이나 상대역으로 만났고, 그래서인지 열애설도 있었다. 일본 영화 <오렌지>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두 사람을 다시 보는 재미도 있다.

지구에서 가장 분주한 곳 중 하나인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가 텅 빈 모습은 어떻게 찍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도로를 전면통제했나? 모두 컴퓨터그래픽일까? 정답은 도쿄가 아닌 도치기현의 거대한 야외세트장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특히 화장실에 뛰어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텅 빈 거리를 확인하는 4분 정도의 장면을 원테이크로 컷 없이 한번에 길게 보여주는데, 그래서인지 단번에 몰입된다.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잔인한 게임이 펼쳐지지만 한발 떨어져서 보면 사회 부적응자의 성장 드라마다. 아리스는 멈추기 전의 세상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었지만, 게임을 통해 매 순간 옳고 현명한 선택을 한다. 유흥가 호스트, 트랜스젠더, 왕따 학생같이 세상이 멈추기 전 약자였던 사람들이 바뀐 사회의 규칙 아래에서는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드라마 속 게임은 각각 카드로 표현되는데, 스페이드는 힘쓰는 게임, 다이아몬드는 두뇌 게임, 클로버는 단체전, 마지막으로 하트는 가장 어려운 배신 게임이다. 이기기 위해선 힘과 머리를 쓰고 협동하지만, 최종적으로 배신을 해야만 성공한다. 이쯤 되면 살아남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아리스의 모습은 하루하루 버티며 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의 모든 판타지는 사실 현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거울일 뿐이니까.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예능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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