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포스트 아메리카' 시작된다

이본영 2021. 1. 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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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토요판] 커버스토리
'미국의 분열' 근본적 배경과 파장
산산이 깨진 미 의사당 유리창
'미국판 크리스탈나흐트' 탄식
나치의 준동 시절 떠올리기도
백인민족주의 괴력 입증한 사건
정치·사회 양극화 심화한 결과
남북전쟁 이래의 분열 도진 것
오바마가 '백인 대각성' 계기로
극우 손잡은 공화당은 일방 질주
지난 1월6일 워싱턴 의사당 난입자가 2층 상원 입구에서 남부연합군기를 메고 활보하고 있다. 정면 벽에는 열렬한 노예제 폐지론자 찰스 섬너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일 길지 않은 취임 연설에서 ‘통합’이라는 말을 10번이나 썼다. 자신이 당선한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이들이 불과 2주 전 쑥대밭으로 만든 자리에서 행한 연설이다. 마치 그 말을 많이 쓸수록 통합이 앞당겨진다고 믿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민주주의는 취약하다”고 인정했다. 미국인들은 가장 오래된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해왔다. 이제 양극화된 미국 정치와 사회는 민주주의의 자기파괴적 속성을 실증하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난동으로 표면화된 갈등의 뿌리에는 이 나라의 생성·발전 과정에서 해소되지 않은 모순이 있다. 이런 내분의 심화 가능성은 미국은 물론 세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섬너, 당신 연설문을 두 번이나 꼼꼼히 읽어봤어. 이건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내 친척 버틀러에 대한 모독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굵은 지팡이가 상대의 온몸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의 피가 상원 회의장 바닥을 물들였다. 가해자는 민주당 하원의원 프레스턴 브룩스, 피해자는 공화당 상원의원 찰스 섬너였다. 동료 의원들이 말리려 했지만 브룩스와 동행한 민주당 의원들이 권총을 휘두르며 막았다. 자유주인 북부 매사추세츠 출신인 섬너가 이틀 전 연설에서 개척지 캔자스를 남부처럼 노예주로 만들려는 시도를 ‘처녀지 겁탈’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다. 브룩스의 사촌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민주당 상원의원 앤드루 버틀러를 위한 분풀이이기도 했다. 섬너가 같은 연설에서 버틀러를 제 눈에만 순결한 성노예를 거느린 돈키호테라고 조롱했기 때문이다. 1856년 5월22일 발생한 이 사건은 미국 역사책에 단골로 등장한다. 충격적 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북부와 남부, 자유주와 노예주, 공화당과 민주당의 극단적 대립을 상징하며 5년 뒤 내전을 예고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남북전쟁 발발로부터 160년 뒤, 미국 의사당이 난입자들에게 점령당했다. 6명이 숨진 1월6일 난동 사건 직후 미국인들의 눈길을 먼저 끈 것은 음모론 추종자들인 ‘큐(Q)어논’의 샤먼이라는 사람이 반라에 털가죽을 걸치고 머리에 뿔을 단 괴이한 모습이었다. 이후 의사당 안에서 남부연합군 깃발을 든 이의 모습이 강조됐다. 이 장면이야말로 악몽이라는 이들이 많다. 그들 눈에 무엇이 겹쳐 보이는 것일까?

섬너의 탄식

델라웨어주에 사는 케빈 시프리드도 의사당을 점거한 ‘애국자들’ 중 하나였다. 아들 헌터도 아버지 곁에서 의사당을 누볐다. 헌터가 자기도 그곳에 있었다고 자랑하고 다닌 게 화근이었다. 헌터의 직장 동료한테 신고를 받은 연방수사국(FBI)은 현장 사진과 운전면허 등록 사진을 대조해 이 부자를 붙잡았다.

난입자 수천명 가운데 한명일 뿐이었지만 시프리드는 전국적 인물로 떠올랐다. X자 줄에 별을 그려넣은 남부연합군기 때문이다. 시프리드는 평소 집 앞에 내걸어온 깃발을 뽑아 왔고, 워싱턴기념탑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집회에 참여한 뒤 의사당으로 행진했다고 진술했다. 미국인들은 시프리드가 찍힌 사진을 보고 남북전쟁 때도 없었던 일이라며 충격을 표현하고 있다. 남부연합군은 1864년 7월 의사당 돔을 약 10㎞ 거리에서 바라볼 정도로 워싱턴을 위협한 적이 있다. 워싱턴 아래를 흐르는 포토맥강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비상탈출용 배가 대기할 정도로 급박했다. 그러나 기습은 저지당했고, 의사당에 남부연합 깃발이 휘날릴 일은 없었다. 시프리드가 비로소 그것을 해냈다.

6일 남부연합군 깃발과 성조기를 든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의회 경찰대와 대치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집회에서 남부연합기를 흔든 사람은 시프리드만이 아니었지만 배경으로 찍힌 초상화가 장면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초상화 주인공은 1856년 의사당 폭력사건 피해자로 유명한 섬너였다. 심각한 후유증으로 3년이나 상원에 나오지 못했던 섬너는 노예제 폐지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링컨을 몰아붙인 가장 급진적인 평등론자였다. 1874년 사망하자 의사당 돔 아래 로턴다에 주검이 안치됐을 정도로 예우를 받았다. 그때까지 의사당 로턴다에서 안치식을 치른 사람은 1865년 암살된 링컨 등 3명뿐이었다. 섬너는 폭행 현장인 상원 회의장 건너편에 초상화로도 남아 의회민주주의를 지켜봐왔다. 미국 언론 등은 ‘섬너는 자기 눈앞에서 남부연합군 깃발이 휘날릴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시프리드의 행동 배경에는 최근 몇년간 전개된 치열한 ‘상징 투쟁’이 있다. 과거에는 남부 지역 일부 민가에 내걸린 남부연합기를 괴짜 짓으로 여겼다.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의 동상 등은 어떤 면에서는 역사가 길지 않은 이 나라의 역사교육용 소재로도 인식됐다. 하지만 트럼프 취임 첫해인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백인민족주의자 연합집회 전후로 사정이 변했다. 그로부터 2년 전 사우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백인우월주의자가 흑인 교회에서 9명을 살해한 게 발단이었다. 분열의 상징인 남부연합 상징물 철거 운동이 시작됐다. 이에 발맞춰 샬러츠빌 시 당국이 리 장군 이름을 딴 공원 이름을 ‘해방 공원’으로 바꾸고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려고 하자 2만명이 반대 시위에 나섰다. 전국에서 몰려든 대안 우파, 신남부연합주의자, 신나치, 네오파시스트 등 극우 백인민족주의자들이 난동을 부렸다. 지리멸렬해 보이던 극우의 힘과 단결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의사당 난동은 상처와 분열을 다시 자극했다. 이달 25일 버지니아주 주도이자 남부연합 수도였던 리치먼드 중심가에 있는 리 장군의 대형 동상 주위에 펜스가 설치됐다. 의사당 난동 직후 동상이 다시금 뜨거운 논란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흑인들이 몰려들어 철거를 요구했고, 총기 소유 지지 단체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주도 찰스턴에 있는 남부연합의 다른 군사 영웅 스톤월 잭슨의 동상을 둘러싼 시비도 재점화됐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자동차 번호판에 남부연합 깃발을 새기는 것을 금지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다.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의 수도였으며 현재 버지니아주 주도인 리치먼드 중심가에 있는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의 동상 앞에서 18일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대가 동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리치먼드/AFP 연합뉴스

크리스탈나흐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자유의 성채”라고 부른 의사당에서 벌어진 일은 샬러츠빌 사건의 속편이자 확장판이다. 백인민족주의자들은 트럼프의 집권에 고무돼 샬러츠빌로 몰려갔고, 그의 실권에 절망해 의사당으로 쳐들어갔다. 사건의 충격을 대변한 사람은 배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아널드 슈워제네거다. 깨진 의사당 유리창을 보고 크리스탈나흐트(깨진 유리의 밤)를 떠올렸다고 했다. 크리스탈나흐트는 나치 돌격대 등이 1938년 11월 독일 전역에서 유대교 회당과 유대인 상점들을 파괴하고 유대인 3만명을 체포한 사건이다. 나치즘의 광란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사건 발생 3주가 지나도록 새로 드러난 사실을 크게 다루고 있다.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된 장면도 놀랍지만 카메라 렌즈 밖에서 일어난 일들도 그 못지않게 오싹하다. 친위쿠데타, 유혈혁명, 길거리 숙청의 풍경이다. 그중 <워싱턴 포스트>가 공화당 의원들과 백악관 인사들을 취재해 전한 내용은 겉보기보다 훨씬 공포스러웠던 상황을 묘사했다.

당시 방독면을 챙겨 의사당 내 은신처로 대피한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딸 이방카 등 선이 닿는 누구에게든 전화해 대통령을 말려달라고 애원했다. ‘우리는 트럼프에게 충성해왔다. 선거인단 투표 인증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며 살려달라고 했다. 특히 상원의장이었던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은 간발의 차이로 화를 면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펜스와 부인, 딸은 난입자들이 상원 구역 입구로 들이닥치기 1분 전에야 대피했다. 최초 은신처는 난입자들과 30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난입자들은 “펜스 어딨나”, “펜스를 목매달자”고 외쳤다. 트럼프가 이들이 행진하는 도중 트위터로 “펜스는 우리 나라와 헌법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용기가 없다”고 비난한 게 자극제였다. 3㎞도 안 떨어진 곳에서 측근들이 목숨을 구걸하는데도 트럼프는 소극적이었다. 직접 전화 연결도 안 됐다. 그는 의사당 현장 중계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한 측근은 트럼프가 자신이 터뜨린 ‘화염과 분노’의 결과를 보며 들뜬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권력을 잃자 홍위병을 부추겨 동지들을 숙청한 마오쩌둥 같은 모습이었다.

전날 대선 결과 무효화를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난입하는 과정에서 깨진 워싱턴 의사당 동쪽 계단 유리창 너머로 7일 건물 열주가 휑하게 서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트럼프는 난동자들을 “특별한 사람들”, “위대한 애국자들”이라고 불렀다. 정말 특별한 사람들도 끼여 있었다. 뿔을 단 인물 때문에 눈길을 끈 큐어논은 난동 참여 집단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이들이지만 추종자가 수백만으로 추정된다. 2017년 ‘Q’라는 익명의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민주당의 소아성애 인신매매 집단이 미국을 지배한다는 주장을 믿는 이들이다. “김정은은 중앙정보국(CIA) 꼭두각시”라는 등 황당한 주장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현장에서는 ‘Q’ 마크를 옷에 단 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프라우드 보이스’라는 단체는 네오파시스트 계열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백인 남자만 가입 자격이 있다. 이들은 지난달에도 워싱턴에서 대규모 시위를 하면서 흑인 교회들을 파손했다. 특히 난동에 가담한 민병 세력이야말로 직접적 위협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경찰관들을 살해한 혐의로 조직원들이 기소된 ‘부걸루’는 연방정부와의 2차 내전을 부르짖는 단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주 주지사를 납치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휘트머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악관의 대응을 비판하며 강화된 방역 조처에 나선 것에 화가 난 트럼프가 “미시간을 해방시키자”고 선동한 직후였다. ‘오스(서약) 키퍼스’와 ‘스리 퍼센터스’도 전직 군인과 경찰관들을 회원으로 둔 민병 조직이다. 의사당 난동 현장에서도 눈에 띈 티셔츠 문구 ‘6MWE’는 이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지를 증명한다. 6MWE는 ‘600만명도 충분치 않다’(6 Million Wasn’t Enough)는 뜻으로, 나치의 유대인 학살 규모에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공공연히 소총을 들고 공공기관을 위협하는 행태는 의사당 난동 전후로 흔한 풍경이 됐다. 연방 의사당이 공격받은 당일인 1월6일 조지아주 주도 애틀랜타의 주의회 의사당에서 브래드 래펀스퍼거 주 국무장관이 경찰 호위 속에 대피했다. 총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그를 잡겠다며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래펀스퍼거 장관과 한 통화에서 자신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조지아주 표차를 언급하며 “내 1만1780표를 찾아내라”는 요구를 했다고 보도된 뒤다. 그 뒤로도 무장한 사람들이 오하이오·텍사스·미시간·버지니아 등의 주의회 의사당 주변에서 시위했다.

난동자들은 주변화된 극렬분자들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하나를 보면 교사, 전직 장교, 예비군, 전직 경찰관, 현역 주의원 등 ‘보통 시민들’이다. 난동자들을 응원하다 직무정지된 의회 경찰관들도 있다. 그들은 점점 공통의 정서와 이데올로기로 무장해가고 있다. 이민족에 대한 복수심이 독일의 크리스탈나흐트로 이어진 것처럼 백인민족주의자들의 달래기 힘든 패배감이 워싱턴 의사당 유리창을 깨트렸다.

잃어버린 대의

난동자들의 집회 제목은 “도둑질을 멈추라”였다. 잡다한 집단을 집결시킨 것은 부정선거 결과를 뒤집으라는 트럼프의 호소였다. 무언가를 도둑맞고 잃어버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봉기를 촉발했다. 그런 감정의 뿌리는 가깝게는 트럼프의 선동에서 찾을 수 있다. 멀게는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정치·경제적 양극화, 더 멀게는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워싱턴의 부패한 엘리트’라는 전통적인 혐오성 구호와 ‘딥 스테이트’ 음모론도 이들의 사상적 기반이다.

강박관념은 더 깊은 뿌리를 찾아가고 있다. 시프리드의 남부연합군 깃발이 그것을 상징한다. 남부 백인들은 내전에서 패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굴복하지 않고 ‘잃어버린 대의’(Lost Cause)라는 이름으로 한과 이상을 간직해왔다. 데이비드 블라이트 예일대 교수는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남부연합의 잃어버린 대의’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뿌리 깊은 신화들 중 하나”라고 했다. 기사도적이었다는 남부 제도와 문화를 고결한 이상으로 여기는 ‘잃어버린 대의’는 흑백 및 남녀 구분과 차별은 필요하며, 노예제가 흑인들 복지에 더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패배감 극복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큰 힘을 발휘했다. 60만이 넘게 사망한 전쟁이 끝나고 12년 뒤 ‘1877년 타협’이 ‘남부의 이상’을 보전하는 기회가 됐다. 대선 일반투표에서 민주당에 거의 30만표 뒤진 공화당이 대통령 자리와 남부의 ‘자립’을 맞바꾼 것이다. 남부를 장악하고 있던 민주당 쪽은 백악관을 공화당에 내주는 대신 연방정부 주도의 남부 재건을 중단시키고 연방군을 철수시켰다.

2013년 7월4일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남북전쟁의 전환점이 된 게티즈버그 전투 150돌을 기념하는 재연 행사가 열리고 있다. 게티즈버그/EPA 연합뉴스

이렇게 악명 높은 ‘짐 크로법’의 시대가 열렸다. 남부는 흑인의 권리를 존중한다고 약속했지만 시간은 거꾸로 돌아갔다. 흑백 분리와 차별이 법으로 규정됐다. 문맹이라는 이유로, 조상 때부터 투표권이 없었다는 황당한 이유로 흑인들의 참정권이 부정됐다. 간신히 투표소를 찾은 흑인에게는 폭행과 살해 협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흑인 학생 2명이 앨라배마대 입학을 차단당하자 “도덕적 위기” 극복을 위한 민권법 제정을 촉구하며 한 연설은 이런 상황을 압축했다. 케네디는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한 지 100년이나 지났지만 그 후계자와 손자들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며 “이 나라는 그 모든 희망과 자랑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민이 자유로울 때까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민권운동 결과로 남부에서도 흑인의 시민권이 보장된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큰 진전이었다. 동시에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는 고통이었다. 게다가 아시아인, 히스패닉, 유대인들까지 백인의 지위를 잠식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에게는 나라를 도둑맞은 것이었다. ‘나라를 되찾자’가 백인민족주의자들의 구호가 됐다.

이런 점에서 ‘도둑맞은 선거’는 트럼프의 독창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선거 관리 당국이 개표 조작을 한다는 구체적 의혹이 아니라 무자격자들의 참정권 행사가 문제라는 인식에 뿌리가 있다.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미국 정치를 좌우한다는 두려움은 공화당의 전략과 맞물려 선거제도에 대한 불신을 키워왔다. 공화당은 자신들이 장악한 주에서 선거인 자격을 강화해 흑인과 이민자 투표율을 낮추려고 노력해왔다. 짐 크로법 시대와 닮은 행태였다.

특히 백인민족주의자들은 2008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을 말세로 받아들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으로 남북전쟁 전 부통령과 상원의원을 한 존 캘훈은 노예해방이 되면 “흑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는 백인보다 높아질 것”이라며 “나라는 노예들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의 당선으로 캘훈의 ‘예언’은 더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오바마의 인기를 꺾기 힘드니까 당시에도 ‘도둑맞은 선거’ 프레임이 동원됐다. ‘버서(birther) 운동’이 그것이다. 오바마가 하와이 태생이라는 출생증명서는 조작된 것이며, 사실은 그 아버지의 모국인 케냐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2008년 대선은 적법한 피선거권이 없는 흑인한테 도둑맞은 선거였다. 트럼프도 버서 운동에 앞장섰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이겼으나 수백만표를 도둑맞는 바람에 일반투표 총수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뒤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재선에 실패한 2020년 대선은 그와 지지자들에게 더 크게 도둑맞은 선거다.

공화당의 극우정당화

인종주의와 억지 주장이 특징인 극우정치의 부상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에서도 극우정당들이 세를 키워왔다. 하지만 유럽 극우정당들은 비록 일부가 연립정부에 발을 담근 적은 있어도 국정 전반을 장악할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는 극우정당이라고 명확히 규정할 만한 정당이 없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극우정치의 위험은 덜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양당정치의 표본인 미국에서 민주당과 번갈아 정권을 잡아온 공화당이 극우정당화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공화당의 극우 색채 강화는 민주당과의 깊어지는 대립 및 정치·사회적 양극화가 바탕에 있다. 의회에서 교차투표는 사라지고, 양당 의원들은 당론만을 따르는 거수기가 됐다. 상대의 입법을 저지하려는 필리버스터가 남발되고 감정 대립도 심화됐다. 수십년에 걸쳐 양당 지지층이 뚜렷이 갈라져 공통의 이해와 가치관이 약화된 것과 맞물린 현상이다. 공화당은 남부 등의 보수적 백인들과 개신교도들을 끌어들였고, 민주당은 동서 연안 주들과 소수인종의 지지를 공고화했다. 결정적 분기점은 1960년대 공화당의 ‘남부 전략’이었다. 민권법(1964)과 선거권법(1965) 제정으로 흑인 인권이 향상되는 시기에 과거 링컨의 당이었던 공화당은 남부 민주당원들을 끌어안으며 인종주의적 색채를 띠게 됐다.

문제는 오른쪽으로 너무 내달렸다는 점이다. 그것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의사당 난동을 불렀다. 트럼프 집권 뒤로 각국 전문가 2천여명이 참여하는 ‘글로벌 정당 조사’를 비롯한 조사에서 공화당은 유럽 극우정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죽는가>에서 이민자 증가와 자유주의 문화 확산이 야기한 초조함이 공화당을 전투적 극우정당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1992년 이래 여덟차례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일반투표에서 앞선 것은 2004년뿐이다. 공화당은 선거구 게리맨더링, 선거법 개정, 백인민족주의에 대한 호소로 불리한 구조를 타개하려 한다.

공화당 쪽의 정치적 극단화가 얼마나 심한지는 의사당 난동 전후의 여론조사 등으로도 알 수 있다. 사건 직전인 3~5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 조사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줬다는 이들의 75%가 그가 승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88%는 결과를 바꿀 정도의 선거부정이 있었다고 했고, 64%는 의회가 선거 결과를 부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난동 직후 유고브 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자의 45%가 의사당 점거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단지 27%만이 이 사건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반응했다. 그 사태를 겪은 직후 대선 선거인단 투표 인증에서는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3분의 2가 반대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퇴임 하루 전 트위터로 공화당 주요 인사들의 인식과 정서가 얼마나 ‘백인 근본주의’에 빠져 있는지를 재확인했다. 그는 “워키즘(인종적·사회적 불평등을 자각하고 감시하자는 주장), 다문화주의, 이런 모든 주의들은 아메리카가 아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건국과 우리 나라를 만든 모든 것을 왜곡한다. 적들은 우리를 약화시키려고 이런 분열을 부추긴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미 기름에 젖은 섶에 불씨를 던졌을 뿐이다. 국제 연구 프로그램인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의회나 선거에 신경쓰지 않는 강력한 지도자”를 선호한다는 미국인 응답자 비율은 1995년 25%에서 2017년 38%로 늘었다. 트럼프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극우화된 공화당 지지자들과 백인민족주의자들은 또 다른 메시아를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깨진 환상

“세계 어디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자기가 태어난 나라와 미국이라는 두 개의 조국이 있었다.”

영국 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자서전 <미완의 시대>에서 미국 문화의 지배력을 묘사한 말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비슷한 맥락에서 ‘소프트 파워’ 개념을 유행시켰다. 나이는 “매력은 언제나 강제보다 효과적이며, 민주주의, 인권, 개인의 기회 같은 많은 가치들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라며 미국의 ‘세계 경영’에서 소프트 파워를 강조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은 세계의 경찰관일 뿐만 아니라 교사였다. 실상이 어떤가와 관계없이 많은 미국인들은 가장 오래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서 문화와 정신적 가치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고 자부했다. 대소련 봉쇄를 주창해 ‘냉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케넌은 “우리 미국인들은 다른 이들이 우리를 닮으려고 애쓰는 정도에 따라 그들을 판단”하려는 고질적 경향이 있다는 식으로 그런 자부심을 표현했다. 많은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행동했다.

‘뭐든 우리가 최고’ 자부심 붕괴
세계인들 미국관에도 큰 영향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심화 속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 재촉

경찰 폭력 문제로 지난해 불타오른 ‘블랙 라이브스 매터’(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이어 발생한 이번 사건은 의사당 유리창뿐 아니라 이런 환상에도 금을 냈다. 스스로도 인권 탄압 문제로 비난받아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워싱턴 의사당 난동이 “민주주의의 치욕”이라고 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가장 큰 선물”을 안겼다고 했다.

‘도덕적 권위’의 실추는 소프트 파워를 약화시키고, 미국의 영향력 감퇴를 재촉할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은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민주주의와 법치를 강조해온 미국의 능력이 약화될 것”이라며 “이제 특정국 정부를 가르치거나 제재하려 한다면 위선이라고 소리치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트럼프의 마지막 행동은 포스트 아메리카 세계의 시작을 가속화했다”며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는 다른 국가들의 필연적 부상보다는 미국이 스스로에 한 행위 탓에 일반적 예상보다 일찍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주요 7개국(G7)에 한국·인도·오스트레일리아를 추가해 10개 민주주의 국가로 중국에 대응하겠다는 ‘D-10’ 구상에 앞서 국내 민주주의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건 직후 “품위, 존중, 관용, 이게 우리 모습이며, 우리는 항상 그래왔다”고 한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안팎에서 ‘그런 나라는 없어졌다’는 냉소를 만났다. 미국의 핵 비확산 노력의 명분은 불안정한 정권이 핵무기를 갖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그런 명분도 퇴색했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달아오르는 국면에서 미국의 내분이 심각해진 것은 예사롭지 않다. 미국은 갈수록 동맹을 강조하지만, 전통적이고 강력한 동맹인 유럽이 박자를 맞추지 않는 모습이다. 유럽연합(EU)과 중국은 지난해 12월30일 ‘포괄적 투자 협정’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중국 경제와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추구해온 미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특히 그때 시점에서 21일밖에 안 남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기다리지 않고 유럽연합이 이를 발표한 데에 미국 쪽에서는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트럼프 집권 이후 소원해진 관계와 유럽인들의 태도 변화가 배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지난해 말 유럽외교협회가 유럽 11개국 1만5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0%가 미-중 갈등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는 응답은 22%에 그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5일 다보스포럼 화상 개막연설에서 “모든 나라는 각기 고유한 역사, 문화, 사회 체제를 지녔으며, 누구도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미국을 겨냥한 듯 신냉전 조장 행위를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미국 의사당 난동을 머릿속에 떠올렸을지 모른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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