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국문화재를 만나다] 독일인 신부가 수집한 겸재화첩, 50억 거절하고 한국 오기까지
편집자주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 동안 잘 몰랐던 국외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소재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몰락 위기에 처한 문화적 가치들을 마지막 순간에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닐지는 장차 친애하는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독일의 신부인 노르베르트 베버가 1911년 한국 여행기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 서문에서 한 말이다.
독일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의 총아빠스(수도원장)였던 그는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에 걸쳐 도합 약 8개월 간 한국의 곳곳을 주유(周遊)했다. 그는 이 선교 여행을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풍습이 일제의 병합으로 소멸할 위기에 처한 것을 탄식하며, 글과 그림뿐 아니라 사진과 영상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독일인에게 소개했다. 베버가 수집한 한국컬렉션은 일제강점기에 사라져간 우리 역사와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보고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해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를 발간했다. 이는 2016년과 2017년에 걸친 1,021건(1,825점)의 한국 소장품에 대한 조사와 연구의 결과물이자, 베버의 저작물과 영상물에 등장하는 유물을 분석한 학술적 성과다.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 한국컬렉션의 중심적 기반인 베버의 수집품과 입수 경위의 일면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수집된 유물 위주로 운영됐던 선교박물관은 1909년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이 서울에 성 베네딕도수도원을 세우게 되면서 이곳에 파견된 수도자들을 통해 한국 유물을 수집할 수 있었다. 장차 한국으로 파견될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와 역사를 교육할 목적으로 선교박물관에 수집품을 채웠다.
베버 역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높은 예술적 안목을 가지고 유물을 수집했다. 베버가 수집한 한국컬렉션 중 일부는 분실됐지만, 현재 191건(373점)이 전해지고 있다. 신앙, 혼인, 장례, 일상생활 등 20세기 초 사회문화상을 반영하는 민속유물들이 대부분이다. 도자기, 불상, 회화 등 미술사적으로 조명될 수 있는 고미술품도 일부 포함 돼 있다.
베버 컬렉션의 입수 경위에 대한 궁금증은 그의 여행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베버의 1911년 여행기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1915)’와 1925년 금강산 유람기인 ‘한국의 금강산에서(1927)’, 무성 기록영화인 ‘한국의 결혼식(1925)’과 ‘고요한 아침의 나라(1927)’ 등은 선교박물관에 소장된 한국유물의 쓰임새나 구매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비단 관복과 사모, 나무를 구부려 만든 빳빳한 허리띠(각대), 그리고 관복을 온전히 갖추는 데 빠져서는 안 될 괴상한 모양의 펠트 장화(목화)까지 모두 몇 마르크만 주면 구할 수 있다. (중략) 거친 말총으로 짠 둥근 펠트 군모(전립) 꼭대기에서 붉고 노란 술이 아래로 드리워지고, 앞쪽에는 부채꼴의 공작 깃털 다발이 이마를 가렸다. 턱 끈은 진주(밀화영)로 장식되었다. 민족학적으로 흥미 있는 물건 몇 개를 샀다. 고향의 우리 박물관(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 소장할 요량이었다. (중략) 돈을 내자 영수증에 사각형 도장 몇 개를 찍어 주었다. 이 영수증은 구매한 골동품과 함께 박물관에 보내질 것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내용 중
이는 베버가 1911년 3월에 경복궁(베버는 호랑이궁으로 표현) 근처 고미술 상점에서 청동 제품, 비녀, 벼루, 동전, 은장도, 단추, 담뱃대, 투구, 관복과 사모, 각대, 목화, 찻주전자, 전립 등 민속품을 구경하고 수십 점을 구매한 과정을 기술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 내용의 일부이다. 구매 당시의 영수증은 아쉽게도 현전하지 않지만, 선교박물관에는 그곳에서 샀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관의 관모인 전립과 은장도 등 다양한 민속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베버의 1911년 수집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에서 쓰였던 목가구의 진수를 보여준 ‘나전이층농’이다. 1911년 여행기에 청계천 근처의 목공예점에서 발견한 오래된 나전장을 소개한 부분에 이 유물 사진이 실린 것을 고려하면, 베버는 이 자개농을 그 곳에서 산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여성이 안방에 두고 옷 보관용으로 사용했던 이 자개농은 시부모가 새로 맞은 며느리에게 유교적 윤리를 실천하기를 바라면서 마련해 주던 풍습을 알 수 있는 귀한 작품이다. 문판에는 ‘오륜행실도’의 삽화에 출처를 둔 청상과부의 수절, 시부모 공경, 지아비 봉양, 전처 자식을 잘 키운 부인의 덕성 등 양반가 여성들에게 강조된 열녀의 이야기가 자개로 묘사되어 있다. 베버는 “조화롭게 어우러져 눈에 거슬리는 획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오색영롱한 자개가 유약(옻칠)을 만나 더욱 오묘하다”고 말한다.
베버는 55세 때인 1925년 두 번째 여행에서도 토기, 동경, 도자기, 불상, 회화 등 여러 시대를 아우르며 수집 활동을 했다. 그 가운데 최고의 보물은 21점의 작품이 담겨 있는 ‘겸재정선화첩’이다. 베버는 이 화첩의 입수 경위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지만, ‘한국의 금강산에서’의 ‘겸재정선화첩’ 에 ‘금강내산전도’, ‘구룡폭도’, ‘화표주도’ 등 세 폭의 흑백 사진이 실려 있는 것을 볼 때, 1925년에 구입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에 유학 중이던 유준영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 책에 실린 조선시대 명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 사진을 보고, 1975년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을 찾아가 확인한 후 국내 학계에 처음으로 이를 소개했다. 2000년 미국 덴버미술관의 케이 E. 블랙과 독일 킬대 에카르트 데게 교수가 이 화첩에 관한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해외 미술시장에서도 그 존재가 알려졌다. 경매회사인 뉴욕 크리스티사가 한화 50억 원을 제시하면서 이 화첩의 매매를 권했으나, 수도원 측은 제안을 거절하고 2005년에 한국의 왜관수도원(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영구 대여 형식으로 돌려줬다. 이 화첩은 안전을 위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 보관중이다.
베버는 1925년 한국 방문 동안 함경남도 안변군 내평본당에서 한국의 전통혼례 과정을 재현한 무성 기록영화 ‘한국의 결혼식’을 제작했다. 이 영화 필름은 1978년 선교박물관 옛 수장고 깊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재단은 선교박물관 실태조사에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신랑과 신부가 입었던 혼례복과 혼례용품을 수장고에서 발견, 최초로 보고서에 공개하기도 했다.
선교박물관 한국실 단독장에 전시 중인 ‘목조아미타불상’은 베버가 2차 여행 때 수집한 것으로 가톨릭 수도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에 대한 열린 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선시대 16~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이 불상은 바닥에 복장(불상을 제작할 때 봉안한 여러 가지 유물)을 넣기 위해 뚫은 구멍이 있다. 남겨진 기록에 의하면 불상 내부에서 복장물로 추정되는 목제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2017년 조사 과정에서 이 불상의 복장물로 추정되는 발원문이 발견 돼 이 불상이 1759년에 다시 금칠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여행하는 동안 서울의 흥천사와 옥천암, 안성의 석남사, 수원 용주사, 금강산에 소재한 여러 사찰, 해주 신광사 등 전국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을 방문하여 불교 유물들을 관찰한 내용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이 자료들은 일제에 의해 훼손당했거나, 분단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북한지역 사찰과 불교 유물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어 미술사학자의 중요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베버가 싹 틔운 한국문화에 대한 존중과 사랑은 상트 오틸리엔수도원과 대한민국과의 문화적 교류와 문화재 반환으로 이어졌다. 수도원 측은 고국에서 더 많이 사랑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겸재정선화첩’, ‘식물표본’, ‘익산 호적’을 국내로 돌려보냈다. 이어서 재단과의 돈독한 협력관계를 지속하면서 조선시대 ‘면피갑’과 ‘혼례용 단령’을 기증했다. 재단은 2015년 한국실 재개관에 맞춘 진열장과 소책자 지원을 시작으로, 손상이 심한 회화 유물 4점과 복식 유물 2점에 대한 보존처리를 지원했다. 지난해 방문객들이 한국문화재의 가치를 향유할 수 있도록 독일어, 영어,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제작을 지원하여 고마움의 뜻을 전했다.
재단은 올해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실에 소장된 20세기 초 한국에 온 베버와 수도자들이 촬영한 약 2,000 점의 유리건판 등 사진 자료를 조사할 예정이다. 미공개 된 유리건판이 연구되고 공개되면 우리 국민이 한국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자료들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차미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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