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와서 탄핵을?" "사법농단 잊었나" 술렁이는 법원

윤주영 2021. 1. 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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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재판 개입, 임성근 부장판사 대상
"갑자기 왜 이 시점인지 뜬금없다" 반응 많지만
"사법농단 집단망각했다는 방증" 자조적 의견도
임성근 측 "탄핵제도 목적에 반해.. 실익도 없어"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해 탄핵소추를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판사 출신 이탄희 의원이 이르면 29일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 자유표결에 부치겠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임성근 부장판사. 연합뉴스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임성근(58)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여권의 사상 초유 ‘법관 탄핵’ 추진으로 법원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다만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표면적으로는 “우리는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많지만, 속으로는 “(4년 전 일인데) 왜 이제 탄핵이 거론되는지 뜬금없다”는 의문을 품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는 법원 내부의 불편해하는 분위기를 두고 “사법농단에 대한 집단적 망각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임 부장판사는 이미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재직 시절,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다룬 칼럼을 써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게 그의 혐의다. 검찰 수사 결과, 임 부장판사는 해당 사건 재판장이었던 이동근(56)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더라도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 행적에 대한 기사는 허위임이 입증됐다’는 점을 밝히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1심 법원은 지난해 2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와 관련, “수석부장판사의 직무권한 내에 있지 않아 직권남용죄의 법리상 죄를 물을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도 “지위 또는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였다고 강조했다.


여당 "위헌적 행위 판사, 명예로운 퇴직 안돼"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왼쪽 두번째)과 416가족협의회, 416연대가 지난달 23일 국회 분수대 앞에서 "'사법농단' 사태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임성근ㆍ이동근 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이 임 부장판사 탄핵 추진의 이유로 내세우는 건 바로 이 ‘위헌적 행위’라는 법원 판결문의 문구다. 그런 법관이 명예롭게 퇴직, 전관예우를 누리는 변호사가 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탄핵된 법관은 변호사 등록도 할 수 없고, 퇴직 연금 수령도 불가능하다. 이에 더해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ㆍ징계를 당한 고위 법관들 중 임 부장판사가 드물게 ‘현직’이라는 사실도 탄핵 대상으로 지목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ㆍ고영한 전 법원행정처 처장(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모두 법복을 벗은 상태다.

그러나 29일 한국일보가 취재한 결과, 법원 내부는 ‘사법농단 사태 수습 국면에서 국회의 탄핵 추진은 좀 갑작스럽다’며 갸우뚱해하는 분위기다. 4년 전 당시 판사였던 이탄희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사법농단 사태가 처음 촉발됐을 때, 아니면 2018년 법관대표회의가 “탄핵소추 절차가 검토돼야 한다”고 의결했을 땐 왜 정치권이 가만히 있었느냐는 얘기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사법농단의 진짜 윗선을 두고 임 부장판사를 탄핵하겠다는 건 의원들이 정치적 책임을 덜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최근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자, ‘법원 길들이기’를 위한 정치적 메시지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온다.

탄핵의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임 부장판사는 연임을 포기, 3월 1일 부로 민간인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탄핵소추안이 가결된다 해도, 현실적으로 헌법재판소가 2월 중 심판 결론을 내기는 힘들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의 경우, 헌재 심리에는 3개월이 소요됐다.


"중징계 마땅한 분... 겸허히 논의 지켜봐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 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렇다고 임 부장판사를 ‘현직’으로 계속 잡아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임기 만료(10년)로 법원을 떠나는 것이고, 현재 진행 중인 징계 절차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변호사 개업을 막을 방법도 현재로선 딱히 없다. 임 부장판사는 1심 무죄에 이어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인데, 아직 1심 판결도 내려지지 않은 박병대ㆍ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변호사 개업을 승인해 줬다. 임 부장판사 측도 이날 “변호사 개업을 막을 목적으로 탄핵을 발의하는 건 공직자를 공직에서 배제한다는 탄핵제도의 근본목적에 배치될뿐더러 실익도 없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이 같은 ‘부정적 반응’을 두고 “사법농단이 집단적으로 잊혀져 가고 있는 것으로, 부끄럽다”는 의견도 법원 내부에서 나온다. 일선 법원의 한 판사는 “임 부장판사는 중징계를 받았어야 하는 분인데, 법원 내에서 아무 징계도 안 이뤄졌다”며 “(탄핵 이야기가) 반가운 건 아니고, 국회 움직임이 늦은 감도 있지만,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진행 과정을 지켜보는 게 옳다”고 말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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